우린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된다.
이미 몇 번 말했지만 친구가 죽었다.
어처구니없게 자기 병을 알자마자 3개월을 채 넘기지 않았다.
친구는 쉰 살이었다.
장례식장으로 친구 인생 궤적을 따라 다양한 친구들이 하나둘씩 얼굴을 내밀었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먹고살다가 만난 몇몇 친구들까지.
내가 좀 늦은 시간에 찾아와서 그랬을까. 생각보다 장례식장은 훨씬 한산했다.
복잡하고 시끄러운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썰렁한 장례식장은 마음 한편에서 서글픈 찬바람이 일었다.
장애가 생기고 절을 하지 못한다. 무릎 아래로 엉덩이를 내렸다간 자력으로 일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친구의 웃는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야! 인사했으면 일로 와!"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탓에 조용하던 곳이 일순간 시끄러워졌다.
어딜 가도 난 이렇게 티를 내게 된다.
고개를 돌려보니 한쪽에 반가운 얼굴들도 보인다.
학창 시절 각자의 추억을 공유한 친구들.
나는 친구와 학창 시절을 공유하지 않았다.
다만 한 동네에서 십 수년을 살다 보니 학교는 달라도 친구에 친구로 이리저리 친구의 친구가 되어 그냥 모두 친구가 되는 시절이었다.
친구의 중학교 친구들이 여럿 모였다.
그중에 나와 고등학교 친구도 섞여있다.
그렇게 학교는 다르지만 그냥 친구라 불려도 이상할 것이 없는 친구들.
그리고 이 정도 나이면 어색함 따위는 소주 한잔이면 대충 넘길 수 있지 않겠는가.
소주 한잔, 얼큰해진 얼굴로 서로 "너 얘 몰라?"라며 서로에게 아는 척을 떠넘기는 자연스러움이라니.
사실 난 운동한다고 친구들과 별로 어울리지 않아서 이렇게 비위 좋게 아는 척하는 친구들을 정작 나는 잘 모른다.
뻘쭘하지만 빼기는 좀 이상한 자리, 그저 어색한 웃음으로 넘길 수밖에.
내가 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엔 남녀공학이란 국민학교가 유일했다.
중고등학교는 남녀유별이었고 연애라도 할라치면 여학교 담벼락을 기웃대야 하는 남녀상열지사의 시절이었다.
한데 친구가 입학한 중학교는 학군 내에 유일한 남녀공학으로 문을 여는 신생 학교였다.
1회 졸업생, 친구들은 그렇게 엄청난 횡재를 누렸다.
나는 남중에 남고를 다녔다.
다시 조용해진 곳에 좁고 높은 구두굽 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여자 친구가 등장하고 다시 시끄러워진다.
그 친구도 어딜 가나 티를 내는 친구였을까?
쉰이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을 법하게 '예쁘장'하다.
영정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친구를 웃음기 없는 얼굴로 잠시 응시하던 여자 친구는 얼큰 해진 친구들 틈으로 스미듯 들어왔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술잔을 기울이던 친구들이, 터미네이터 3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놀라움을 줬던, 액체 물질로 분해된 T3가 하나로 합쳐지듯 그 '예쁘장한' 여자 친구 주변으로 빨려 들 듯 합쳐졌다.
영정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친구를 웃음기 없는 얼굴로 잠시 응시하던 여자 친구는 그제야 웃음을 되찾고 그런 여자 친구를 보며 헤벌쭉한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웃음이 났다.
살아온 사연이야 어떻든 반백의 나이에도 여자 친구 주변으로 모이는 녀석들을 보노라니 남자는 "숟가락 들 힘만 있어도 밝힌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너 그때 바지에 똥 쌌잖아"라는 예쁘장한 여자 친구를 향한 뜬금없는 폭로에도 웃을 수 있는 추억이라니.
그렇게 수 십 년을 눈 깜짝할 사이에 순간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이 부여되는 건 모두 같은 기억을 공유하기 때문이리라.
훅하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는 것과 사진 속에서 친구가 함께 웃는 듯하여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만 같은 추억을 공유할 수 없어 찬바람이나 맞으러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