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다 그럴까? 3

합리적 개인주의자가 되고프다는 건

by 암시랑

"야, 이제는 받아들여야 하냐? 아 진짜 그래야 하냐? 이제 오십인데?"


혀가 꼬부라져 발음도 알아듣지도 못할 정도여서 거친 숨소리와 함께 전화기 넘어 술 냄새가 날 지경으로 잔뜩 취해 L이 전화를 했다. 교모세포종으로 죽어가는 친구 J의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반백살에 새 인생 살아 보겠다고 결혼했던 친구다.


병상에 있는 친구는 종양이 생각보다 빨리 커져 얼마 전 일부를 제거 수술을 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착잡한 마음에 친구들 밴드에 올렸는데 가보지 못한 L이 마음에 걸렸나 보다.


비틀거리는 L을 보며 친구의 죽음이 도대체 어떤 의미로 다가왔길래 본인 삶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저리 힘겨워할까 싶었다. 그에 비해 나는 그저 밋밋하게 옆 동네 불구경하듯 냉정함을 유지한 채 지낸다.

친구의 죽음은 끔찍하게 슬프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선을 긋고 있달까.

내가 무슨 노력을 한대도 친구는 나아질 수 없는 건 사실이고 그런 허망한 마음을 내 삶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 온다 해도 바뀌는 건 없다. 그런데 내가 아파하고 우울해하는 게 친구를 위하는 일일까.


저리 아파하는 친구를 보며 나는 참 개인적인 인간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한참을 횡설수설하며 병상에 누워있는 친구에게 미안해하는 L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물었다.


"신혼 생활이 팍팍하니? 요즘 힘들어?"


가려운 곳을 긁어 준 것일까. L은 하소연을 쏟아 낸다. 아무래도 50년을 혼자 신나게 살다가 누군가와 한 공간에서 밀착되어 살아야 한다는 건 분명 여러모로 감정 소모가 필요한 일일 테니 마음고생이 좀 되나 보다 싶어 조용히 들었다.


L은 웬만한 신입사원의 월급 정도를 그동안 팔순 노모께 생활비로 드리고 있었다. 거기에 아파트 대출금을 갚아 나가고 있고 건축일을 하는 본인 역시 적지 않은 지출이 있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나서도 합가를 못하고 사정상 두 집 살림을 해야 하는 L은 그동안의 씀씀이에 아내에게 갖다 바칠 월급이 남아나질 않아 어쩔 수 없이 벙어리 냉가슴에 빚을 내서 돌려 막고 있었다. 아무리 30년 넘은 부랄 친구 사이라지만 감 놔라 배 놔라 할 순 없어 잠자코 듣다가 결국 한마디 했다.


"니 처는 이해하니?"


혼자 벌어 노모와 둘이 살 때야 팔순 노모께 월급을 통째로 드리던 말든 무슨 관계가 있겠냐만은 이제 한 가정을 꾸렸는데 신랑의 수입과 씀씀이에 관심을 갖지 않을 아내가 어디 있겠냐며 노모의 생활비를 좀 줄여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슬쩍 떠봤다.


L은 팔순 노모가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냐며 손사래 치듯 펄쩍 뛴다. 한데 그 소리를 듣는 나는 팔순 노모가 사시면 얼마나 사신다고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실까를 생각한다. 또 내가 참 못된 놈일까 싶었다.


우여곡절을 겪고 50년 만에 가족을 만 틀었는데 참 피곤해 보인다. 팔순 노모도 L도 L의 처도.

사는데야 정답은 없겠지만 현명하게 잘 해결되어 모두 웃을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친구의 병듦이 자신의 병듦으로 여기질 말고 사는 동안 적당하고 합리적인 개인주의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살짝 가져본다. 우리에겐 1.2미터의 공간이 서로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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