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철도 999를 찾아서

정해진 궤도를 벗어나야 하늘을 날 수 있으리.

by 암시랑

딸은 수능을 준비하던 선배들을 보며 바짝 긴장하곤 했다.

자신에게도 곧 닥칠 일이라 그랬을 거다. 딸은 고2다.

그 수능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오늘 수능 대비 모의고사를 봤다며 전화를 해왔다.

달뜨게 상기된 표정이 보이는 듯할 정도로 유선 넘어오는 딸아이의 목소리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아빠, 나 시험 잘 봤어! 정시로 갈까?"


하루에도 열두 번씩 수시에서 정시로 이 과에서 저 과로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딸을 보면서 답답해지곤 했었다.

나는 학력고사 세대다. 정시, 수시, 학종 같은 수능을 대비하는 복잡하고 난해한 대학입시를 보면서 성적에 맞춰 한방에 결정짓는 학력고사가 훨씬 더 좋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문득 학창 시절이 떠오른다. 뭐 공부를 그다지 열심히 하는 부류는 아니었기도 하지만 야자 시간에 담을 넘어 문방구 앞에 있는 오락기에 앉아 놀기도 하고 화창한 봄날, 아니 뜨거운 여름이었던가? 아무튼 어린이 대공원 앞 페스트 푸드점에서 4:4 미팅도 하고 때론 친구들과 집에 가는 길에서 헌팅을 벌려 보기도 하고, 독서실에 간다고 하고 호프집 아르바이트도 할 정도로 재미있던 것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추억들로 켜켜이 쌓여 있는데 요즘 아이들이 그렇게 추억들을 만들 수 있을까?


스치기만 해도 감성이 뚝뚝 흘러야 할 여고시절이 아닌가.

오죽하면 '여고 시절'이라는 노래가 있을까.


지나간 여고시절
조용히 생각하니
그것이 나에게는
첫사랑이었어요


첫사랑의 달콤함이나 징글징글한 우정을 키우며 미래를 그려보는 시절일 텐데 대입 하나만 보고 질주해야 하는 요즘 아이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대학이 인생의 결승점이 아닌데 말이다.


정해진 레일 위를 정해진 속도로 달리는 기차는 정해진 방향으로만 달릴 수 있지만

정해진 레일 위를 정해진 속도로 달리지 않고 자신의 속도로 달릴 수 있는

기차는 어느새 레일을 벗어나 허공을 달리는 은하철도 999가 된다.


인생은 정해진대로 살기 어렵다. 재미도 없고 즐겁지도 않다는 건 분명하다.

오죽하면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정해진대로'만' 살라 하고, 살려고 하는 순간 인생은 재미없어진다.


정해진 교과 방식대로 공부하고, 대학과 취업만을 바라보며

정해진 사회 제도와 규칙을 준수해야만 올바른 시민으로 인정되는 인생이 즐거울 턱이 없다.


인생은 돌고 도는 레일 위의 기차가 아니라 끝없는 우주를 달리는 은하철도 999 여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철이도 메텔도 역무원도 만날 수 있으니 분명 행복해질 거라 생각한다.


계획해서 계획대로 되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때로는 계획대로 안 되더라도

혹은 일부러 어긋나게 만들더라도


인생에 정해진 궤도를 만드는 일에 온 힘을 쏟지는 말았으면 한다.

온 힘을 다해 성취하는 목표를 꿈꿔 보기도 하고

때론 훌쩍 배낭을 메고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나가 보기도 하면서

스스로의 삶에 쉼표 하나쯤 만들며 살길 바란다.


내 아이들은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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