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에 대한 단상
'원래'라는 말은 원래 없겠지만, "사람은 나이가 더 많다고 해서, 경험이 더 많다고 해서 저절로 현명해지지 않는다."라는 지적을 정문정 작가는 자신의 책에서 하고 있다. 이 말, 백퍼 공감한다.
일을 하면서 이론과 실제의 차이를 느끼면 느낄수록 내 얕은 지식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누가 봐도 늦은, 은퇴를 얼마 남기지 않았음에도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한데 일과 병행하면서 공부를 한다는 건 엄청난 체력이 필요하다는 걸 미처 몰랐다. 게다가 몸이 불편한 나는 체력도 한참 후지다.
학기가 시작하면서 수강신청에 굉장히 신중하게 대처한다.
우선 시험을 보지 않는 과목일 것, 일하느라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시험공부까지 해야 하면 죽음의 다크서클만 있을 뿐이다. 또 조별 과제가 가급적 적을 것, 발표는 하라면 하겠지만 학부도 아니고 숟가락 얻는 얌체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서 개별과제가 차라리 낫다. 그리고 개별 과제가 적을 것, 핑계일 수 있겠으나 리포트 역시 학부 수준은 아니니 제법 힘겹다.
공부를 한다고 하면서 이것저것 다 힘들다고 하면 뭐하러 다니냐 하겠지만, 사실 내 마음도 그렇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짓을 시작했는지 통렬하게 후회 중이다.
일하면서 공부하는 사람들이니 '적당히'가 통할 줄 알았다. 출석도 짤 없다.
여기다 논문까지 쓰라고? 그게 말이냐 당나귀냐. 난 못한다.
어쨌거나 다들 너 나할 것 없이 이렇게 힘들게 다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정정 기간에 막차 타고 정정까지 한 수업의 첫날, 기관에 행사가 있어 빠졌다.
두둥. 두 번째 수업 날. 아마 재학 기수 중 최고령 학생이 아닐까 싶은 어르신이 앉아 계신다.
나이 오십에 힘들다며 어쩌지 못해 다니는 것처럼 툴툴 대고 있는데 내게 부끄러움을 선사하시는 저분은 어림잡아 칠십은 넘으셨으리라. 오오. 엄청 훌륭하신 분이 아니신가. 게다가 엄청난 학구열을 까지. 주교재를 비롯 부교재까지 책을 3권이나 들고 다니시다니.
수업이 시작!
어라. 교수와 말다툼이라니.
본인이 나이가 많은데 자기 말을 끊지 말라니.
나는 지정된 기관 방문일에 수업이 다 있으니 방문 수업은 못하겠다니.
교수권이 있으면 교습권도 있으니 강요하지 말라니.
수업 시간 내내 불편함을 만드신다.
8 주 내내 수업 시간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교수와 학생을 불편하게 만드셨다.
심지어 학생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자신이 대신 처리해준다는 오만까지 보이시며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고 교수나 학생들의 말에는 귀를 닫는다.
결국 9주 차 교수가 교체됐다.
학생들은 당황했고 어르신은 으스댔다.
심지어 자신이 자신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해맑다.
바뀐 교수는 성적처리에 관한 부분을 협의하자고 했다.
부당할 수 있을 수 있겠지만 이미 발표한 학생들의 발표를 본인이 보지 못했으니 발표 부분은 없던 걸로 하고 기말 시험으로 대체해도 되겠느냐고. 모두 동의했다. 딱 한 명만 빼고.
어르신은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먹이며,
어르신은 뇌출혈로 쓰러진 전력이 있어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경미한 경증 편마비다.
그럼에도 장애학생은 편의 보장을 위해 시험장도 별도로 봐야 하고 시험 시간도 1.5배의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말 그대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쓰셨다.
"어르신 지체 장애는 시험시간 1.5배는 해당사항 없어요."라는 내 말에 호통을 치며 입을 막았다.
교수가 1.5배의 시간을 주고 배려해주겠다고 했다.
자신 때문에 그렇게 번거로워지면 소문이 나서 다른 교수들도 자신을 미워할 테니 자신은 그러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거절한다. 모두 황당하고 어이없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교수는 어떻게 하고 싶느냐고 다시 물었다.
시험을 보지 말고 리포트로 대체하면 어떻겠느냐고 한다.
결국 성적이야 어떻든 시험으로 쉽게 끝날 일이 몇 날 며칠 고생하게 돼버렸다.
나이 든다는 건 지혜로워진다는 거나 인격이 깊어진다거나 하는 일과는 분명 다른 의미다.
그냥 고집스럽고 무차별적이고 막돼 먹게 늙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다음 학기는 이 분을 어떻게든 피해야 하는데.
휴학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