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춰진 그림자
"조만간 얼굴 한번 봐요!"
혹시?라는 단어가 궁금증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의심이나 두려움으로 여겨질 때가 종종 있다.
'언제 밥 한번 먹자'라든가 '시간 되면 한번 보자'라던가.
서로 합의되지 않고 자신만의 일방적인 그것도 정해지지 않은 기약은 때때로 뜻을 이해하려 애써야 한다.
생각 없이 한 말에 너무 소심한 거 아니냐고?
아니다. 그건 소심한 게 아니라 관계에 목말랐거나 피로해진 사람이라 그렇다.
목마른 사람은 만나자는 말에 '언제'라는 시간을 기다리고
피로한 사람은 만나자는 말에 '왜?'라는 짜증이 밀려 올 수도 있다.
내가 그렇다. 난 아주 많이 관계가 피로하다.
모 기관에서 교육을 했다. 교육이라기보다 강의와 강연의 중간쯤 되는 시간이다.
나름 열과 성의를 다해 준비하고 웃음 코드를 입혀 이해와 공감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만든다.
그 어려운 걸 내가 해낸다. 그것도 매번.
어쨌거나 이 교육에 다른 센터장들과는 달리 모 기관 센터장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게다가 끝까지 들었다. 할 일이 없거나 교육이 너무 재미있거나 둘 중에 하나겠지.
끝나고 뒤도 안 돌아보고 집에 가려는 나를 붙잡고 '잘 들었다'란다.
인상 깊었지만 뒤도 안 돌아보고 집에 왔다.
그리고 며칠 후 인상 깊었지만 얼굴이 기억도 안나는 그 센터장에게 전화가 왔다.
교육이 너무 좋아서 아는 기관에 강사로 추천해줘도 되겠냐고 묻는다.
'당근 땡큐지 뭘 그런 걸 물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말끝에 '조만간 얼굴 보자'는 말을 남긴다.
얼떨결에 그러마 하고 대답은 했지만 '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의와 강연 그 중간쯤인 것을 하다 보니 입소문 났으면 싶다가도
이렇게 직설적으로 소개했다고 얼굴 한번 보자시면 참 거시기 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