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

[에세이] 나는 마흔에도 우왕좌왕했다

답을 찾지 못해 불안한 당신에게 호빵맨 작가가 전하는 말

by 암시랑
"당신은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놀이를 하고 있나요?"


아흔 살 노구의 작가가 던지는 질문에 생각을 할 수 없을 만큼 아팠다. 사실 다른 사람은 고사하고 나 스스로 기쁘게 하는 놀이도 하지 않고 산다. 그러고 보니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한 질문이 돼버렸다. 시시각각 아니 초 단위로 변하는 내 감정선에 아내가 내려준 진단은 다름 아닌 갱년기다. 갱년기라니! 나는 오춘기 정도로 우겨본다.


용감한 어린이의 친구
우리 우리 호빵맨
세균맨 혼내주는 우리 호빵맨


이 책은 한 번 들으면 계속 흥얼흥얼 거리게 만드는 이 호빵맨을 만든 야나세 다카시 만화가의 자전적 이야기로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불안한 인생을 살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나 미래를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이기도 하다. 한데 스스로는 그다지 불안하다고 느껴지지 않다는 게 함정이다. 오히려 이 정도면 '잘 풀린 인생'이라고 할 정도 아닌가?


호빵맨에는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호빵, 식빵, 카레빵, 메론빵, 롤빵에 악당 세균맨까지.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세균맨이다. 악당 주제에 때때로 나쁜 짓을 벌이다가 인간적인 흔들림을 보여주기도 하고, 계획한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허당끼도 보여주며 측은지심을 유발하기도 한다. 얼마나 인간적인 캐릭터인지. 어쨌거나 '인생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야'라는 진리를 세균맨이 보여준달까. 그러면서 '다시 돌아오겠다!'라는 다짐을 남기며 좌절하거나 포기하거나 하지도 않는 세균맨 역시 그러고 보면 언제나 도전 중이다.

"서정시도 그렇고, 동화도 그렇고, 인간만이 지닌 '심금'을 울려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그런 미묘한 감정의 떨림을 즐기는 생물이니까요." p40


'떨림을 즐기는 생물'이라니 사람에게 생물이라는 표현이 이리 절묘하면서 살아 있다는 생동감을 줄 수 있을까. 인생에서 이런 떨림을 발견하거나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한다.


"포기하지 않고 한 가지 일에 마음을 담아 몰두한다면, 분명 어느 순간 눈앞의 자리가 빈다. 내 순서가 찾아온다." p49


현대는 21세기, 4차 산명 혁명, 인공지능의 시대라 불린다. 눈만 떴다 감아도 뭔가 새로운 것들이 화수분처럼 솟아나는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한 우물을 진득하게 파라신다. 살짝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신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맞다 틀리다를 논하기에는 어렵겠지만 이 시대는 한 우물만 깊게 파는 스페셜리스트 보다 여러 우물을 적당히 많이 파는 제너럴리스트가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고 경제 관련 자기계발서들은 주장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는 한 우물을 파다 보면 우물이 나오는 게 아니라 결국 내 무덤을 파는 거라는 얘기다.


근데 이 어르신은 한 우물을 팠다. 그것도 아주 즐겁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40세에도 우왕좌왕하면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그랬다. 그렇게 더디지만 줄곧 파다가 70세에 호빵맨이 날아올랐다. 힘차게.


솔직히 개인적으로 이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은 로또 맞을 확률이 아닐까? 단지 '그'니까 일어 날 수 있었던 일일지도 모른다. 한 우물을 파면서도 그렇게 힘든 삽질을 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틈틈이 다른 삽질을 할 수 있던 능력이 있었으니까 가능한 거다. 잡지 일이나 시집이나 편집자 등. 어르신 역시 제너럴리스트였다.

이 책은 우리를 지키려 애쓰는 영웅이 아닌 도와주려 애쓰는 친구 호빵맨 작가의 잔소리가 아닌 토닥거리는 잔잔한 위로다. 좌절하고 아프고 상처받고 힘겹고 불안한 모든 이에게 자신을 희생하는(오죽하면 얼굴을 뜯어줄까) 호빵맨을 통해 인생에서 뭣이 중요한지 잊지 말라는 위로다.

아흔하고도 세 살이나 더 많은 작가는 그 나이에도 사는 게 바쁘고 재미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루하루, 그저 살아가는 것뿐이라고 한다. 불현듯 찾아올지 모르는 아련한 사랑을 위해 팔굽혀펴기를 하며 대비한다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역시 남자는 나이를 먹어도 기능은 떨어질지언정 욕구는 떨어지지 않는 존재인가 보다.


동그란 얼굴에 볼록한 배로 빨간 망토를 휘날리던 호빵맨은 우리 두 아이들 머리맡도 지켜주었다. 작가의 따뜻한 위로에 이 추운 겨울, 따뜻함을 넘어 더워질 정도다. 선물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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