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

[소설] 소원을 말해줘

by 암시랑



"차라리 죽어"


숨이 멎는다. 오래전 기억 밑에 눌러 두었던 감정이 솟구쳤다. 우물안에서 처참한 몰골로 바둥거리는 뱀을 보고 그녀가 던지는 바람이었다. 뱀은 살고 싶었을까?


나 역시 하루 아침에 내 몸에서 '움직임'이 사라졌다. 점점 무뎌지는 감각에 더해 감정도 무뎌지는 게 고통스러웠다. 살아 있으되 기능하지 못하는, 생각은 하되 죽음만 떠올리는 날들.


움직이지도 못하는 내게 사람들은 '맛있는 거 사먹어'라며 용돈을 주머니 가득 찔러 주곤 했다. 그들은 친절한 마음이었으리라 하지만 내겐 잔인한 일이었다. 목이부러지기 전에 그럴 것이지.


죽을 줄 알았다. 침대에서 떨어지면, 그리되는 일은 참 간단한 일이라 생각했다. 한데 침대에 뉘어지니 혼자는 꿈틀 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런 일은 아무리 이를 악물어도 되는 일이 아니라는걸 미처몰랐다. 지렁이도 하는 그걸 나는 못했다.


엄마가 무표정한 얼굴로 내려다 본다. 차마 눈을 마주보기 어려워 눈을 감았다. 엄마는 나를 휠체어에 태우고 복도 끝 인적드문 비상구 앞에 섰다.


"죽고 싶니? 엄마도 힘든데… 우리 차라리 죽자"


놀랍도록 서늘한 이야기다. 온 몸을 덮은 두터운 허물은 생각만으로도 갑갑하고 두렵다. 음산함과는 다른, 그렇지만 다르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서늘하고 축축한 감정이 계속된다. 기계로 뒤덮인 미래 이야기도 아닌데 정체모를 바이러스에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격리된다는 이야기는 흔하지만 이 소설에서 전해지는 불안은 꽤나 현실감이 넘친다.


근데 더 놀라운 건 사실 허물을 벗기위해 들어간 방역소에 성별이 다른 남녀를 한방에서 지내게 할 수 있지? 요즘 세상에 큰 일 날 소리 아닌가? 이건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말하는 건 객적은 소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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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영업이란 게 말입니다, 실은 불안을 퍼뜨리는 일입니다. 허물에 대한 불안을 수치로 증명하고, 만일에 대비해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고 고객을 설득하죠. 허물이야말로 이 도시에 존재하는 제일 큰 불안이지 뭐겠습니까." p179



'허물'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아 인간이 벌이는 탐욕에 대한 대한 쓴소리를 녹여 내다니 작가의 힘이 느껴지기도 했다. 보험사와 거대 제약사의 탐욕에 이용되는 IT의 정보수집 이야기는 '인간의 질병치료를 위해'라는 포장에 정보수집의 위험을 이야기하던 영화 서클을 생각난다. 많은 이들의 손목 위에서 걷는 것만으로도 심박수같은 건강 정보는 누구에게 전해지는 것일까?


뭐랄까. 바이러스로 인해 정체불명의 허물이 생기고 그 허물을 없애준다는 제약사는 오히려 허물을 벗기기는 커녕 더욱 밀착시키는 치료제를 만들고 자신들의 배를 불린다는 생각이 불쾌해지는 이유는 대중들은 제약사의 이야기를 믿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 얼마나 무서운 이야긴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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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치자면 블록버스터급 이야기다. 촘촘하고 밀도 높은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서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로 몰입도가 높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롱롱의 판타지가 해결되는 과정에서 긴장감이 떨어지는 게 좀 아쉽다. 영화가 아니다보니 활자와 상상에만 의지해야 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상상력이 워낙 빈약하다.


어쨌거나 인간 탐욕을 벗겨내는 흥미로운 소설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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