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포르노에 대처해야 할 우리의 자세

by 암시랑

동영상 채널 <씨리얼>에서 코로나19로 인한 벌어질 대로 벌어지는 교육양극화에 대해 발언하는 소녀를 보면서 펑펑 울자 아내가 그런다.


그렇게 불쌍해?

순간 울음이 딱 멈췄다. 그러게 난 왜 그리 서러웠던 걸까? 아내 말처럼 그 소녀가 불쌍했나? 분명 그렇지 않았다. 솔직히 소녀의 현실은 충분히 우리가 공감할 만큼 형편이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소녀의 빈곤이 가슴을 울린 건 분명 아니다. 그런 사람은 내 주변이 너무도 흔해서 이젠 좀 무뎌졌다. 내가 서럽던 지점은 소녀의 불행이 아닌 ‘나는 제대로 하고 있는가?’였다.



3 감정 포르노에 대처해야 할 우리의 자세_2021.5.12..jpg 씨리얼(2021.01.25.), 교육 양극화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요. 화면 캡처


사회복지사라는 어쭙잖은 전문가적 입장에서 그들을 대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기초생활수급이라든지 저소득층이라며 무심결에 그들을 구분 짓고 때때로 그들을 위한다며 불편과 빈곤을 들춰내며 되레 편견과 차별의 시선을 행하지는 않았을까 싶은 죄책감이 들어 미안했다.


일명 감정 포르노라는 감정 팔이 미디어에 노출될수록 우리는 그들의 불쌍함을 통해 저들보다는 낫다는 위안을 느끼며 그 대가로 월2만원의 후원금을 기꺼이 지불한다. 한데 그걸로 충분한 걸까? 그들은 생존을 위해 얼마나 더 부끄럽게 불쌍해져야 할까? 도움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된다면 그들도 그렇지만 그들의 아이들이 성장하며 겪어야 할 감정의 무게가 얼마나 클지 상상이 안 된다.


<우리는 코다입니다>에서 이길보라는 그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받아야 했던 자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은 장애인이고 그래서 저는 어렵게 컸지만 그래도 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아요. 그러니 이 방송을 보고 있는 '정상인' 여러분들도 힘내세요! 이렇게 불쌍한 우리도 이렇게 살아내잖아요."라는 메시지를 주는 콘텐츠가 넘쳐나는 마당에 절대로 손을 보태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이다.


보여주기 식으로 생색내는 파티는 이제 멈출 때도 됐다. 자선은 분명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꼭 감정을 팔아야만 그런 것은 아니다. 주는 사람이 아닌 받은 사람의 감정이 불편하지 않는 자선 그리고 시혜가 아닌 나눔이 될 때 그런 평등의 마음 씀이 많아질 때 미디어에서 더 이상 감정포르노를 볼 일이 없어질 것이다. 부끄러워서 기초생활 대상자라는 걸 숨기고, 이유 없이 장학금을 받아도 친구들에게 최소한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세상이 어서 왔으면 싶다.


그렇다면 미디어를 통한 후원은 하지 말라고?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회보장만으로는 생존이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생존에 앞서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다. 그들이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가난이나 불편함을 극대화해야 더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돕는다고 뿌듯해 하는 건 도움을 받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 후에도 늦지 않다.



이 글은 <강원랜드 복지재단 아카이브> 복지큐레이터로 기고한 글입니다.

https://klf.or.kr/sub/04/board-view.php?board=board04&type=view&uid=25754&gopage=1&nickname1=d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저는 정상이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