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활동지원사를 만났다.

by 암시랑
“어... 어... 싼다! 싼다!”
“어... 어... 안돼요! 안돼요!”


나는 보통 이른 아침, 새벽이슬까지는 아니지만 편도 26km를 달려야 하는 출근 길 차 막히는 게 끔찍해 서둘러 출근한다. 매번 1시간 30분 정도 일찍 도착해 주차장에서 느긋하게 독서를 하다 사무실에 들어서는 편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주차장에서 책을 읽는데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한 쪽은 싸겠다고 한쪽은 안 된다는 다급함이 묘하게 라임이 맞물리며 시선을 잡아끌었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었다. 발달장애인인 진태(박정민)가 형 조하(이병헌)와 버스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용변이 급해지자 버스에서 내림과 동시에 하의를 내리던 장면. 보던 관객 대부분은 웃었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8 아름다운 활동지원사를 만났다..jpg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 스틸컷, CJ 엔터테인먼트


그건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해서. 외부 현장 체험에서 돌아오던 버스에서 다짜고짜 “내려야 한다”라고 안절부절 못하는 발달장애인이 있었다. 도심 한복판이기도 했고 화장실을 찾는다는 보장도 없어 조금만 참아 보자고 했지만 점점 행동과 목소리 톤이 올랐다. 어쩔 수 없이 다급히 기사님께 부탁드리고 내리는 찰나에 하의를 벗고 도로에 주저앉았다. 그때의 난감함이란.


그때의 일이 피워 올려지며 자연스레 눈길이 머물렀다. 소변이 급해진 청년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지 못하고 주차장으로 달려 나왔고, 그 뒤를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 활동지원사가 뒤쫓아 나왔다.


그는 몇 번이고 안 된다고 말하면서도 팔을 잡아채거나 몸으로 막아서거나 소리를 지르거나 심지어 반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다급하지만 조용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르며 여기는 화장실이 아니니 소변을 보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미 생리적 욕구가 급해진 청년에겐 참기 어려운 일임을.


결국, 그는 한쪽 구석 배수로가 있는 곳에서 소변을 보게 했다.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나 역시 긴박뇨의 배뇨장애가 있는 터라 그 심정을 너무 잘 알아서 저리 다급한 상황에 짜증은커녕 목소리도 높이지 않는 활동지원사가 청년 옆에 있는 게 참 고마울 지경이다. 자신보다 어리고 약한데다 지적 장애까지 있는 청년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존중하는 태도에 그동안 봐왔던 활동지원사들과는 결이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가위바위보 게임을 계속 하자고 보채는 청년에게 귀찮고 지칠 만도 한데 짜증은커녕 웃는 얼굴로 존댓말을 써가며 계속 청년이 이겼다며 잘한다고 치켜 세워준다.


장애인 활동지원을 ‘일’ 혹은 ‘봉사’로 선을 긋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일이니 정해진 시간과 임금의 많고 적음, 일의 고된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이나 봉사로 한다는 사람들의 적당히 비위 맞춤이나 때론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며 내가 이렇게 해주는데 말을 안 듣느냐라는 사람들 사이에서 짧은 시간이지만 그를 보며 ‘저런 인성을 가진 활동지원사는 어딜 가나 빛이 나겠다’라는 생각에 감탄한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는 분명 봉사가 아니다. 정당하게 급여를 받고 일을 하는 게 맞다. 하지만 노동의 대부분을 사람을 케어하는 일이니만큼 인성이 바탕이 된 어느 정도의 자기검열이 필요하다 싶다.


말귀를 못 알아듣고 제멋대로 일 수 있고 게다가 신도 어쩌지 못할 정도의 고집불통일 수 있다. 근데 그게 그 사람의 불편함이고 장애다. 그래서 일상과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거다. 그런 그들이 겪는 어려움을 줄여주려 애쓰는 일, 그런 마음 씀이 필요한 일이 바로 활동지원이다.


어디 숨어 있었는지, 오늘 그런 아름다운 활동지원사를 만났다.

기회를 봐서 슬쩍 소변통을 두어야겠다.



이 글은 강원랜드복지재단 복지큐레이터로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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