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

[인문] 섹스하는 삶

여성의 몸, 욕망, 쾌락, 그리고 주체적으로 사랑하는 방식에 관하여​

by 암시랑

오해했다. 여성의 주체적인 성이라는 제시가 주는 확실하고 편협적인 페미니즘적 이야기이겠거니 했다. 욕망과 쾌락이 대다수의 남성 편력의 소산처럼 여겨지는 와중에 여성으로서의 몸과 욕망 나아가 쾌락하는 삶, 그것도 주체적인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너무 궁금했다.


미안하다. 그러는 한편, 조금 짙은 핑크빛의 책과 제목에서 느껴지는 에로티시즘적 느낌이 강하게 말초신경을 자극했다. 맞다. 욕망에 사로잡혀 이끌리듯 집어 들었다는 점을 고백한다. 인간의 순수한 욕망의 표현인지 극단적 페미니즘 이야기인지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읽다 보면 높은 하이힐을 신고 자신감 넘치는 당당한 발걸음으로 빙판 위를 걷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여성으로 당연하게 드러내야 하는 당당한 여성성을 남성적 지배 구조나 제도의 틀에 얽매인 상황에서 위태위태하게 걷고 있달까. 섹스나 성적 욕망을 드러내다는 것은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그저 부끄러운 게 현실 아닐까. 섹슈얼리티라는 의미로 두루뭉술하게 포장해도 부끄러운 건 부끄러운 거다.


이 책은 그동안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에 숨겨왔던 섹스라는 화두를 던지며 시작한다. 이어 문화적, 종교적 제도에 매몰된 당당함과 자신의 몸을 직접적으로 바라보고 느끼게 해주며 감정적인 풍부함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을 구성되어 있다. 단지 관계에서 불만스러운 욕구를 해결하기 위한 지침서는 단연코 아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신의 성에 대한 합리적 이해와 공감을 통한 자존감 회복이 필요함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성적 임파워먼트는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SOC152와 SOC152B. 충격이었다. 잠시 멍했다고나 할까. 성을 단순히 드러내고 숨기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일련의 아주 개인적인 행위에 대한 부분을 대학 수업에 개설을 하는 것도 신기한데 심화까지 있다니. 어쨌거나 단순한 여성의 입장에서 '우리는 수동적으로 만들어졌다'라는 주장에 가까운 논리를 드리대는 책이 전혀 아니다. 여성이건 남성이건 특히 유교주의(과연 이 유교주의의 가르침이 현대 우리가 당면한 여러 관계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 모르겠지만)에 물든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성이 단순한 쾌락을 위한 도구처럼 여겨지는 게 아니라 진정한 자아를 찾는데 아주 중요한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부끄럽지만 푹 빠져든다.


"낮에는 요조숙녀, 밤에는 요부가 돼라"라는 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횡행하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에게 요구하는 자세라는 점이 지금은 황당한 소리일지는 모르겠으나 개인에게 집중해 보면 성을 당당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주체적인 메시지라면 저자의 이야기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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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로서의 정체성은 벗어라'의 한 문단에서 많은 공감하게 한다.


"당신이 당신의 이야기를 희생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이용한다면, 이제는 다른 시각에서 이야기를 해야 할 때다. 아니면 아예 이야기를 꺼내지 말아야 할 때다. 평생에 걸쳐 자신이 희생자라는 의식에 머무른 채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중략) 희생자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은 결코 당신이 추구하는 임파워먼트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p63


나는 이 문단이 굳이 여성으로서의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걸로 들리지 않았다. '희생자의 정체성'이란 함의적 표현에는 모든 소수자가 포함된다. 성 정체성이 다르거나 장애인이거나 그밖에 세상이 규정해 놓은 모든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정체성을 포함한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이야기처럼 누군가 성폭력으로 트라우마를 겪는다면,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성폭력의 희생자'로 바라보기보다는 '성폭력을 경험한 어떤 사람'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성폭력은 사실 여성만 겪는 건 분명 아니다. 특히 강남 묻지 마 여성 살해 사건을 두고 모든 여성은 피해자고 모든 남성은 가해자라는 식의 대립된 여론이 떠오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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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문화로부터 습득한 사상은 실로 수천 가지가 넘으며, 그런 가치관들은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주입된 개념과 진정한 욕망을 구별하는 것은 어렵다. 이런 문화적 가치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지만, 그렇더라도 기존의 관념들을 잊어버리고 스스로의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것은 가능하다." p316


아무리 그렇더라도 문화적 규범이 나의 성적 섹슈얼리티를 억제하더라도, 그렇다 하더라도 섹스를 '놀이'처럼 여길 수 있다는 논리는 개인적으로 수용하기 어렵다. 여전히 성은 아름다운 것이거나 지켜져야 한다거나 조심해야 한다거나 그밖에 수백만 가지의 부정적 사회 이념을 지지하지 않으며, 스스로 만족해야 하는 성이라는 점에는 수긍하지만 그럼에도 놀이로 가볍게 여길 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이 책은 개인의 농밀한 부분이기도 한 성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솔직, 담백 그리고 과감하게 이야기하고 보여준다. 정말 화들짝 놀랄 만큼 과감한 그림도 있다. 주체적인 삶으로서의 성이 갖는 아주 중요한 점을 인식하기 충분한 논리적 이념을 제시한다. 또한 이를 토대로 당당하고 자신 있게 변화해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기도 하다.


여성의 성을 다루고 있지만 단편적인 어느 한 성에 대한 이야기는 확실히 아니다. 주체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여성이나 남성이나 그밖에 존재하는 모든 성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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