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버스 데이 투 미

by 암시랑

생일, 딱히 생색내는 걸 좋아하지 않는데 아침부터 아내가 부산하다. 뭘 어떻게 장만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여기저기 어지럽게 나뒹구는 아내 고생의 흔적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다가 "나도 뭘 좀 줘바. 앉아서 하는 건 할 수 있잖아."라며 미안함을 내비쳤다.


"뭐 하는 것도 없는데, 뭘. 그냥 혼자 해도 돼요."


아니다. 전혀 안 편해 보인다. 선풍기를 몇 개를 틀어 돌려도 불 앞에서 덤벙거리는 아내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하다. 결국 외출 준비하는 딸아이를 불러 앉혔다. 덕분에 가만히 앉아서 나는 커피 한잔 옆에 놓고 책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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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아들 삼 형제의 생일 상을 자식들의 집에서 함께 하고 싶어 하셨다. 생일 핑계로나 아들들 집을 방문할 핑계로 삼으신다고 하셨다. 자식들이 성장하고 그들만의 가정을 꾸리자 더 이상 자식들의 삶 안으로 들어오시는 게 불편해지신 거다.


그런 이유로 생일 날도 아닌데 가족 모두가 모일 수 있는 주말에 미리 챙기는 게 가족 행사처럼 됐다. 그렇다고 부모님을 일 년에 생일에 딱 한번 뵙는 것은 아니다. 자식들이 한달음에 달려올 만한 거리에 사는지라 한 달이면 못해도 두세 번은 찾아뵙는다. 그럼에도 자식들의 사는 모습을 보는 거와는 다른 일일 게다.


쉰. 이따금 나도 깜짝깜짝 놀라는 나이지만 케이크에 올려진 초를 보시던 어머니는 "내 새끼가 벌써 오십이네."라며 혼잣말을 하시며 눈물을 적시신다. 못 들은 척, 못 본 척 그냥 초를 황급히 불며 당황스러운 마음을 날렸다.


내 나이가 어머니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살아오신 세월의 흔적이었을지,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게 대한 불안함이셨을지. 늘 가슴에 커다란 바위가 얹힌 것처럼 짓누르는 "불쌍한 큰 아들"이셨을지 모르겠다.


큰 기대는 아니었지만 말끔히 잘 낳아 논 큰 아들이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되었으니 어머니의 상실감이나 절망스러웠던 세월이 고스란히 초의 수만큼 켜켜이 쌓였으리라 짐작하고도 남는다. 나는 사실 생일이 그다지 즐거운 날만은 아니다.


돌아가시는 길, 아내의 거칠해진 손을 잡으시며 "고맙다."라고 읇조리시며 고개도 들지 않으시는 어머니의 모습에 서른 번의 생일이 매번 이렇게 가슴 한편이 먹먹하고 쓰리셨을까 싶어 울컥했다. 어머니의 얼굴이 유난히 깊게 파였다.


앞으로 얼마나 더 착잡한 생일 상을 더 차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남은 내 생일을 전부 더해도 다치기 전 스무 번의 생일만큼 즐겁지는 않을 것 같다. 아픈 손가락이 때만 되면 욱신거리듯 내가 어머니에게 그런 존재라는 게 마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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