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서평

[에세이] 최소한에서 최대한으로 시현하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나만의 콘텐츠를 최고의 브랜드로 키우는 생각의 힘

by 암시랑

붉은 표지, 붉은 머리. 열정이 불타는 듯한 붉은 머리는 슬램덩크의 강백호 이후 이리 잘 어울리는 사람은 내 기억에 없지 싶다. 나만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게다가 '삐에로는 우릴 보며 웃지'라는 노래를 열창을 한 후 무심히 카메라를 향해 던지는 눈빛처럼 전방을 응시하는 그녀의 눈빛이 김완선을 닮았다. 멋지다.


개인적으로 몰랐던 두 가지는 '시현하다'라는 사진관이 있는지 몰랐고(알았다면 이 멋진 증명사진으로 다른 직장엘 다니고 있을지도), 또 하나는 증명사진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대한민국은 얼마나 많은 제약과 규범으로 우릴 옥죄어 왔던 걸까.


'시현하다'라는 말이 자신의 '당당함을 표현한다'라는 작가의 말은 울림이 있다. 왠지 이제는 '구현하다'라는 말이 무엇을 포장하고 꾸며내는 의미처럼 느껴질 정도다. 부러움을 넘어 좀 억울하달까. 인생을 대하는 자세는 나보다 훨씬 어른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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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것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하고,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 그리고 어느 결정이든 자신의 판단에 확신을 갖고 스스로 당당한 것이 중요하다. 나의 길을 스스로 찾아야 하고, 내가 찾은 답만이 온전히 나의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우린 대체로 우리를 판단하려는 사람들에게 가로 2.5cm, 세로 3cm의 조그만 프레임, 증명사진에 나를 담아 증명해야 했다. 담는다기보다 욱여넣는 걸지도. 그저 그런 사진 속 배경이 그저 그렇게 살아온 내 삶의 배경인 것처럼 우린 그 안에서 우울하거나 때론 화가 나 있거나 지쳐있다. 심지어 웃으면 경박하다고 면박을 받기도 한다.


대체로 우린 삶이 재미없는 것처럼 그 안에서 최대한 궁서체 자세로 진지해야 한다.


이런 어렵디 어려운 작은 공간 안에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를 표현하는 '색'을 찾아 주는 작가의 섬세함에 나도 모르게 물든다. 나의 '색'을 찾아야겠다는 다짐도 함께.


"주책이다. 정말"


밀리는 시간을 피해 일찍 출근해서 습관처럼 책을 읽는데 정말 오랜만에 울컥이 아닌 눈물을 질질 흘렸다. 그 모습을 동료 직원에게 들켰다. "뭔 책이길래 그래요?"라고 묻는 그에게 망설이지 않고 "응, 내 얘기"라고 했다.


'시현하다'의 이야기는 여기저기 내 이야기가 있다. 그중 '나나' 언니가 가진 삶의 색이 나에게 물들었다. '시현하다'를 보는 동안 얼마나 많은 내 이야기에 눈물 흘릴지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이 흉터가 진짜 좋아요!"


입에서부터 귀까지 이어진 흉터가 '자신을 표현한다'던 그 역시 나를 물들이고 있었다. 21살 목이 부러지고 수차례 수술을 받아야 했던 나는 여기저기 큼지막한 흉터가 남았다.


산소호흡기 착용을 위해 뚫어야 했던 숨구멍과 머릿속부터 목뒤까지 길고 깊게 패인 수술 자국, 같은 자릴 한 번 더 째고 더는 안 된다며 목젖부터 귀밑까지 다시 한번 길고 깊은 흉터를 남겼다. 살아남은 흔적이랄까.


목에 난 구멍은 한 여름 숨 막히는 찜통더위에도 온 목을 덮는 폴라 티로 가려야 했고, 목뒤로 깊게 패인 수술 자국은 덥수룩한 긴 머리로 감췄다. 그렇다고 뒤뚱거리는 걸음걸이와 불편한 몸은 가려지지 않았음에도 내 삶의 흔적은, 증명되기도 전에 가려야 했다.


미용실에서 부스스해진 머리를 다듬는 날은 매번 미용사의 "목뒤에 흉터는 보여도 돼요?"라는 질문부터 받는다. 이제는 별 상관 없어졌지만 한때는 "가려주세요"라고 했던 날들이 있었다. 장애는 극복하는 것 따위가 아니라고 생각해 왔는데 나나 언니의 이야기에 그럴 수도 있음이 격하게 공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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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나의 색은 무엇일까"


작가가 자신의 가치가 얼마인지 스스로 묻는다. 한데 그 물음이 "나는 내 얼굴과 내 이야기를 담는데 얼마를 지급할 수 있을까."라고 내게 던지는 질문처럼 느껴진다. 당혹스럽다.


"꼭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을 취미로 남겨두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해요." p214


27살, 여기에 딱 23살을 더한 나는 '시현하다'의 작가이자 대표에게서 자기 정체성을 배운다. 수능을 1년여 남은 딸에게 앞으로의 삶을 고민할 때 직업은 꽤나 중요하고, 방향을 결정할 때는 좋아하는 것에 대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왔다.


한데 그 모두가 자신이 없어졌다. 그저 '시현하다'가 시현할 수 있는 것을 한 것처럼 딸도 그러하기를 바란다.


차마 이 글에서 작가의 찍은 사람들의 기록을 담지 못했다. 단순하게 핸드폰으로 쉽게 찍어 공유할 만한 작품들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시현하다의 아카이브 안에서 환하고 진지하고 당당한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자신감 넘쳤다. 단 한 명도 멋지지 않은 사람이 없고 어색한 작품은 단 한 컷도 없다.


당장 '시현하다'에서 모델이 될 수는 없겠지만 만약 그 자리에 선다면 작가는 20년을 비장애인으로, 그 이후 30년은 장애인으로 휠체어에 올라앉은 나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장애인인 아내와 몸이 불편한 아빠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고2의 딸과 초5의 아들과 살고 있는 나에게 과연 어떤 색을 말해줄지 궁금하다.


맑은 옥수수 파랑? 아니면 경쾌한 라임 오렌지? 그도 아니면 섹시한 오렌지 빨강?


나를 기억하여 기록하고 싶어졌다. 멋진 책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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