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의 틈, 두 개의 영혼
작가의 이력이 남달랐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독일로 건너가 지금도 그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그는 독일어와 일본어로 글을 쓴다. 그래서 영혼이 없다고 했을까.
일본어로 쓴 <네가 있는 곳에만 아무것도 없다>로 일본 문학계에 등단했고, 독일어로 쓴 <유럽이 시작하는 곳>으로 독일 문학계에 등단했다. 이후 여러 도서상을 수상했으며 <목욕탕>, <용의자의 야간열차>, <여행하는 말들>, <변신> 등을 썼다. 그리고 이 책은 출판사 엘리에서 이미 절판된 작품에 그가 낯설게 감각한 9개의 단편을 추가한 초판 증보판이다.
책장을 넘기는 순간, 궁금했다. 일본 사람들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과 달리 뱀은 어떤 존재로 감각하길래 시작 문장 곳곳에 그것도 총천연색으로 등장할까. 그에게 뱀은 길조인가 흉조인가 싶은 것 같은. 번역 때문인가? 늘 접하는 언어로 되어 있는데 그 언어는 분명 낯설고 묘하다. 마치 익숙하지만 다른 풍경을 보고 있달까.
"유럽행 시베리아 횡단 열차 여행을 홍보하는 포스터는 유럽으로 가는 그 한없는 거리를 금액으로 바꾸어 놓았다." 14쪽
감각적이라더니 단문 속에서 갑툭튀하는 것처럼 정말 감각적인 문장들에 빨려 들었다. 또 궁금했다. 이런 감각적인 독특한 글을 지어낼 때 그의 사유는 어떤 언어로 작동되는지. 풀어 내는 것이야 선택한다고 쳐도 머릿속에서 중구난방 터지는 생각과 감각은 어떤 언어일까.
"문학의 단어들은 그저 하나의 그물망을 만들고 이 망은 떨림의 쓰레기들을 잡아낸다. 쓰레기-단어들은 마치 유성처럼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진다. 유성들은 일단 떨어지면 더 이상 별자리에 속하지 않는다. 이제는 그저 파편들, 단편들, 조각들일 뿐이다. 한 그물망 안에 있는 조각들 사이에는 부조화가 지배한다. 사실 나는 이전에 별자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모르지만 이 망 안에서 스스로 새로운 선을 긋고 새로운 별자리를 그려 넣는다." 181쪽, 귀신들의 소리
이 책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몸을 싣고, 유럽으로 향하던 여정에서 비롯된 글로 연필과 타자기, 통조림, 중세의 도시, 그리고 파울 첼란까지. 23편의 단편에서 그가 붙잡아낸 사물과 풍경은 그의 언어 속에서 기묘한 울림을 만들어 낸다.
두 개의 언어를 오가며 살아온 여정은 어느 한쪽에 머무르지 않고 경계에서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원문의 감각을 그대로 느낄 수는 어렵겠지만 매끄러운 번역은 익숙한 언어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독특하고 파격적인데 감각적이기까지 해서 매력적인 책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책은 그냥 엘리의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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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솔직하게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