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 분명.

[영화] 어쩔 수가 없다, 박찬욱

by 암시랑

한국 가장의 무게감을 잔뜩 얹은 이 코미디는 실직과 재취업 분투를 겪는 혹은 앞둔 50대라면 분명 어쩔 수 없는 감정이 들끓는다.


어쩔 수가 없다, 어쩔 도리가 없다, 어쩔 방법이 없다 등등의 해결책이 도통 떠오르지 않을 때 쓰는 이 모호함이 마지막에 가서야 선명해졌다.


25년 몸 바친 회사에서 토사구팽을 당하고 이것 말고는 다른 일은 생각할 수도, 할 수도 없는 딱 그 연배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중 라이벌을 제거해야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만수(이병헌)의 위기감은 인간적 윤리선을 넘나들더니 어느새 욕망으로 변질된다.


어쨌거나 결국 만수는 모두 제거하고 혼자 살아남지만, 고된 일을 끝내고 술잔을 기울일 동료 하나 없는 AI 시대의 완전 자동화는 정녕 어쩔 수가 없는 흐름인가.


피가 튀는 잔인함보다 '다 이뤘다'라고 생각한 것들을 잃어가는 데서 오는 가장의 절실함이 불러오는 참혹함이 더 잔인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치통, 첼로, 사교댄스, 구두, 위스키 같은 장치와 어울려지는 유머는 웃음을 빵빵 터트리게 만든다. 특히 살인을 위한 장치였던 음악은 오히려 살인을 실패하게 만들고, 살벌해야 할 공간에 울려 퍼지는 경쾌한 고추잠자리라니.


영화는 재취업에 성공한 만수의 모습에 첼로 연주곡에 부분 마디만 들려주던 딸 리원(최소율)이 완주하는 전곡을 배경으로 끝을 맺는다.


아무튼 만수는 단지 일이 필요하고, 하고 싶던 평범한 중년 가장의 대표적인 모습인 데다 내 모습 같아서 더 웃펐다.


IE003499676_STD.jpg ⓒ CJ ENM 스튜디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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