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라고,

아내에게 청혼할 때 이후로 이렇게 설레어 본 적이 있던가?

by 암시랑

카카오 브런치에 이런저런 글을 올리면서 '작가'라는 호칭이 처음에는 남부끄럽다가 이래저래 불리는 기분이 싫지 않았다. 그래서 글도 더 열심히, 잘 쓰려고 애쓰기도 하고.


그러다 <Creators Day 2019> 참가자 모집 안내 글을 보고 그중 낯익은 작가의 이름이 눈에 띄어 신청했다. 바로 행사 마지막 날 열리는 '나의 글감'이었다. 정문정 작가의 <무례한 사람들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란 책 표지에서 발견한 '인생 자체는 긍정적으로 개소리에는 단호하게'라는 카피였는데 너무 뼈에 금이 갈 정도로 뻑이 갔다. 완전 내 취향의 말투다.


게다가 단행본 출간에 45만 부가 팔렸다는 기사에 더 뻑이 갔는데, 그 작가가 글감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니 고맙기 그지없지 않은가. 날름 신청했는데 덜컥 당첨됐다. MC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대 일의 경쟁을 뚫은 운빨 좋은 사람이다.

Screenshot 2019-10-27 at 16.06.25.jpg ⓒ카카오 브런치 Creators Day 2019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일상에서 건져 올리는 닥치고 있자니 아쉬운 일들을 블로그에 열심히 쓰다 보니 점점 글 쓰는 이가 되고 싶어 졌다. 하지만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읽던지 쓰던지 글과 관련된 모임이 죄다 오르거나 내려가야 하는 계단 투성이 건물에서 하다 보니 휠체어를 타고는 마음뿐이지 참여하기가 어려웠었다.


침만 꼴깍꼴깍 삼키면서 혼자 노는 걸로 만족했는데 이렇게 덜컥 오라는 문자를 받으니 당황스럽다. 잽싸게 그러면서 간절함을 담아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가요?"라고 회신을 날렸다.


"당근 빠따죠!"라는 의미를 담은 친절한 문자에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한데 문자 끝에 '주차불가'라는 글자가 적색경보로 깜빡댄다. 이런 휠체어를 싣고 가는데 주차가 불가면 어쩌라는 얘기지. 다시 재 회신, "주차 불가라는데 휠체어를 싣고 가야 하는데 주차를 아예 못하나요?"


"노들섬은 원래 외부 차량은 주차 불가인데, 스텝 차량이 주차하는 곳에 자리를 마련해 놓을게요. 차량 번호 좀 알려 주세요."


노들섬이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몰랐는데 이런 고급진 친절함으로 아내와 근사한 데이트를 하게 됐다. 아내 역시 나만큼이나 들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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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반에 걸친 행사는 1부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정문정 작가가 '독자를 덕질할 때 나오는 글'에 대한 주제로 강연을 시작으로 <안 느끼한 산문집>의 강이슬 작가의 '등잔 밑은 글감'이란 주제로 강연을 이었다.


그리고 잠시의 휴식. 휴일이라고 살짝 늦잠에 가서 맛난 것을 먹어보자고 빈 속에 성남에서 노들섬까지 2시간가량 걸려 도착하자마자 친절한 에스코트에 행사장으로 직행한 터라 많이 허기졌다. 간식이 마련되어 있다는 2층 같은 1층으로 부랴부랴 휠체어를 달려 아내와 정말 후다닥 몇 개 집어 먹었다. 쉬는 시간이 이리 짧을 줄이야. 행사가 시작된다는 스텦들의 재촉에도 입에 욱여넣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체했다. 지금 들어 누웠다.


2부는 진행자 스스로 노잼의 연속이라던 브런치와 메거진 B의 토크 쇼와 <회사 체질이 아니라서요>의 서메리 작가의 '내가 쓰고 싶은 글을 남이 읽고 싶게 쓰기'란 주제로 마무리 강연이 있었다. 사실 브런치 톡은 노잼은 맞지만 꽤나 유익했으니 벽 잡고 울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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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찬 행사였다. 다 좋은 강연이었지만 특히 서메리 작가의 원포인트 레슨에 가까운 강연은 글을 쓰는데 많이 도움이 될 듯하다. 아니면 포기하거나? ㅋ


짜임새 있는 글의 중요성과 쓰는 입장이 아닌 읽는 이의 입장에서, 독자는 궁예도, 영구도 아니라는 말. 그리고 일기는 일기장에 쓰라는 조언에 뜨끔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세 작가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깨달았던 것은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고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충분히 고민하고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이 결국 내 이야기고 책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유익하고 설렘 설렘 한 행사였다. 정문정 작가에게 사인을 받아 보겠다고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사들고 갔는데, 이후 일정이 있었는지 1부 행사 후에 모습을 볼 수 없어 아쉽게도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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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행사 참여가 처음이라 부끄러움에 나서지 못했더니 작가들과 사진 한 장 못 찍고 그냥 와버린 게 지금에서야 후회된다. 내년에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참석하고 싶다.


행사가 모두 끝나고 근처 카페에서 아내와 커피 한잔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내는 MC의 진행이 제일 좋았다고 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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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과자는 행사에서 집어 가지고 온 거다. 이 카페에서 준 거 아니다. 커피 후회할 수 있는 맛이다. 그들의 친절함도. 그리고 행사 이야기에서 선물을 그득하게 받아 왔는데 빼먹었다. 집에 돌아와 풀어놨더니 초등생인 아들이 너무 좋아한다. 책 읽는걸 극도로 싫어하는데 보자마자 읽기 시작하더니 끝을 본다. 만화책이거나 어쨌거나 뭘 읽어서 끝을 보는 일이 너무 신기하다.


그래서 이 행사는 더욱 판타스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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