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nd Edition
첫인상. 딱딱한 하드커버 양장이 아닌 적당히 부드러운 하드커버라서 책을 집어 드는 느낌이 참 좋다. 완전 고급 지다.
고백하자면 난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더더구나 즐기지도 못한다. 체내 알코올 분해 효소가 턱없이 부족한 탓에 소주 1잔을 원샷 하면 숨이 거칠어지고 온몸이 붉고 흰 반점으로 뒤범벅된다. 2잔이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으리라.
그래서 부득이하게 술자리를 해야 하면 1잔을 1병처럼 8번에 홀짝이거나 아예 소주잔에 사이다를 채우고 원샷을 부르짖으며 동석한 사람들을 꽐라를 만드는데 앞장선다.
그렇다고 맥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내겐 주류는 알코올 도수와는 비례하지 않는 거기서 거기다. 캔 하나를 혼자 마시면 위 증상과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부창부수라고 아내도 나와 비슷한 주량을 자랑한다. 그래서 우리는 캔 하나를 둘이서 사이좋게 나눠먹는다.
이렇게 술도 모르는 내가 이 책을 탐닉하려 하는 이유는 수제 맥주의 호기심이 많아서다. TV에 종종 소개되는 다양한 맥주의 세계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잘 마시는 것과는 분명 관계없이 말이다. 책을 펼쳐든 지금 벌써 취기가 돈다.
맥주의 시초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수메르인에서부터 시작되고 제조법이 변화에 변화를 거쳐 현대에 이르러서는 쓴맛을 선호하는 것이 맥주의 기본처럼 여겨져 홉을 첨가하는 것이 세계 각지의 양조장에서 당연하게 사용된다거나 맥주의 기본 재료는 물, 맥아, 홉, 효모의 4가지이며, 이게 독일 라거 맥주로서 이후 영국과 벨기에 등 유럽에서 라거를 변형한 그루트 맥주를 양조하면서 맥주의 중흥을 일으켰다는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는 동안 맥주 해설사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친절하다.
이 책은 맥주를 양조하는데 필요한 재료나 제조법에 대한 설명부터 별도로 상식에 관한 내용을 꽤 광범위하고 자세하게 알려준다. 특히 맥주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 라거가 뭔지 에일이 뭔지 그루트가 뭐고 올 몰트가 뭔지 맛이 어떻게 다르고 그 맛을 다양한 홉이 결정한다는 것처럼 완전 알쓸신잡이 아닐 수 없다.
이 책 한 권 독파하면 어디 가도 맥주 좀 아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분명한 매직이 아닐 수 없다.
술을 잘 못 마신다는 이유는 2장에서 펼쳐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주들은 살짝 위축되기도 하지만 버드와이저나 밀러, 칭따오 등 좀 들어보거나 마셔본 브랜드가 나오면 어깨에 힘 좀 들어가면서 더 집중한다.
맥주를 양조하는 방식도 중요하지만 맥주를 담는 병도 중요하고 특히 유려한 곡선의 잔은 아무 맥주나 따라 마시는 게 아니라 바이젠 맥주를 마실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나온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저 그게 그렇게 잡기 편하고 취하면 인체의 곡선을 떠올리는 게 만드는 목적이 아니었다니.
가끔 마시던 기네스가 아일랜드 맥주였다니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마시기만 했구나. 아무튼 이 책을 통해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보틀 숍이란 유통 방식도 알게 되었다. 술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지 이렇게 많은 맥주 종류가 있었다는 게 신기하고 다양한 제조 방식 또한 홉이나 허브 외에 과일도 첨가된다니 흥미로웠다. 이 타이밍에 아무도 찾지 못하게 나를 방공호 위로 날아오르게 만들었던 레몬 소주가 생각나는 건 뭔지.
가볍고 재미있게 읽다가 뒤에 깨알 같은 크기로 참고 자료에 대한 부분에 식겁했다. 무슨 논문 수준을 넘어서는 방대한 자료 조사를 한 저자의 수고를 너무 쉽게 휘발시키는 것 같아 미안할 정도다. 맥주를 입이 아닌 눈으로 음미한 느낌이다.
이제부터라도 맥주 좀 마셔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