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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ugae일공오 May 19. 2022

다들 한 번쯤은 겪어봤을

아니면 말구


회사 문을 나서자마자 바로 치킨을 시켰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먹으면 그나마 소화가 더 잘 되려나.

내가 조금이라도 더 늦게 도착해 치킨이 식으면 어떻게 하지? 입술을 잘근 깨문다.

'주문량이 폭주하여 가게에서 주문을 취소하였습니다.'

아뿔싸, 배달 앱에서 치킨집을 대상으로 어떤 행사를 진행 중인가 보다.

다른 음식을 배달시키려 이리저리 앱을 뒤져보지만, 나의 몸은 이미 치킨으로 세팅되어 있다.

치킨이 아닌 다른 것은 목구멍으로 넘어가도 그저 그런 만족감을 줄 것이다.


아니야, 차분히 다른 음식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 치킨이랑 비슷한 닭갈비는 어때? 같은 닭이잖아. 그런데 밤에 먹기에는 조금 맵지 않을까. 그러면 맵지 않은 다코야키는? 다코야키는 뭔가 밀가루가 많아서 소화가 잘 안될 것 같아. 아휴, 그러면 회? 회는 어떻지! 근데 뭔가 회는 안 끌리는데.


이렇게 머릿속에 있는 모든 음식의 리스트를 한 번 다 훑고 나니 어느새 집에 도착.

결국 나는 어떠한 음식도 배달을 시키지 못한 채, 침대에 누웠다.


'아, 출출하다.'


하지만 먹지 않기로 결정한다. 이미 배달 시키기엔 너무 늦은 시간이고 지금 먹으면 살도 찌고, 소화도 잘되지 않아 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땐 꽉 막힌 배를 문지르며 과거의 나를 책망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치킨 생각을 떨치기 위해 출근 전, 예약을 걸어놓아 세탁이 완료된 세탁물들을 건조기에 넣으러 세탁기 앞으로 간다. 수건과 옷가지들을 한 움큼 집어 건조기 안에 던져놓고는 버튼을 눌러 작동시킨다. 다시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메일함도 들어가 보고, 쇼핑앱에서 패스트 패션를 대표하는 옷과 잡화들을 구경한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도무지 집에서는 흥미가 안 생긴다. 이런 건 직장에서 짬 내서해야 가장 재밌는데,라고 생각하며 핸드폰을 던지곤 천장으로 눈을 돌린다.


'조명으로 물든 천장 색이 참 아늑하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지금 이렇게 배고프면 새벽 3시에 뭐라도 시킬 것 같은데, 차라리 1분이라도 빨리 시키는 게 이득 아닐까? 그럼 1분이라도 더 빨리 소화시키고 잘 수 있을 텐데.'


나는 배달 앱을 켜 참치회를 시킨다. '참치회는 단백질이야.' 읊조리며 1분이라도 빨리 배달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참치 회가 오기 전, 왜인지 뭐라도 하지 않으면 차마 회가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 같지가 않아 괜히 바닥에 내버려 둔 옷가지를 정리한다. 그렇게 하기 싫었던 설거지는 갑자기 나의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경감시켜줄 훌륭한 수단으로 변모한다. 설거지를 이제 막 하려는데


'띵동'


경쾌한 초인종 소리가 고막을 흔든다. 배달기사분이 완전히 떠날 때까지 약 3분 정도의 여유를 둔 후, 살그머니 문을 열어 참치회 봉투를 낚아채왔다. 정신없이 포장을 뜯었는데, 엥, 막상 참치회를 보니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만 혹시 모르니 은은히 레몬향이 나는 간장에 회를 찍고 참기름에 한 번 더 찍은 후, 고추냉이를 올려 입에 넣었다. 갑자기 식욕이 머리끝까지 솟구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는 김을 5봉투나 주네.’ 참치회를 입에 넣으며 넷플릭스를 켠다.


밥 먹는 동안, 넷플릭스에서 어떤 콘텐츠를 볼지 고르는 작업은 내겐 아주 중요하다. 맛있는 밥을 먹는 동안, 흥미롭고 재밌는 콘텐츠로 뇌를 자극해 혀뿐만 아니라 내 뇌도 같이 도파민에 절여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의 신중한 자세라는 건 그저 나의 feel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슬프게도 보통은 feel이 잘 오지 않는다. '이건 전부터 보고 싶긴 했는데, 왠지 지금은 아니야.'하며 쌓아둔 콘텐츠만 해도 태산. 넷플릭스에 이런 것들도 있구나, 하며 20~30개 정도의 콘텐츠의 강에서 방황하지만, 결국엔 이미 봤지만 재밌어서 다시 봐도 상관없는, 재미가 보장된 콘텐츠를 다시 켜고 마는 것이다. 오늘 고른 콘텐츠는 미드 '설국열차'. 하지만 막상 켜고 조금 지나지 않아 나의 참치회는 바닥나버린다. 그럼 난 다시 열차에서 내려 침대에 벌러덩 눕는다.


'역시 먹고 눕는 게 최고야.' 그러곤 조악한 유튜브 영상들을 계속 보다 언제 잠든 지도 모르게 스르르 숙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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