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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뮤직 Mar 31. 2016

[기억할 만한 지나침#1]

‘Adam at’ Tor Road


그다지 자랑할 것도 없는 인생이다. 유일하게 내세울 게 있다면 그저 남들보다 여행을 많이 다녔다는 것뿐. 누군가에게 자랑하려고 시작한 취미는 아니지만, 그건 어느 사이엔가 내게 자랑이 되어버렸다. 가끔은 주변에서, 여행이 취미라면 남들보다 돈이 많은가 보다, 라고들 얘기하곤 한다. 진심으로 그랬으면 싶다. 


그래도 하나만 말하자. 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술을 마시는 사람이기에, 종종 밖에서 한 잔 하고 집에 돌아올 때 그래도 술기운이 조금 아쉽다 싶으면 자연스레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길에 편의점으로 발이 간다. 편의점 냉장고 앞에 서면, 내 눈에 먼저 들어오는 건, 10,000원에 4캔 하는 수입맥주들. 분명 싼 건 확실한데, 차마 손이 가지 않는다. 결국 소주 한 병, 정말 알코올이 부족하다면 두 병, 그렇게 사서 집에 온다. 2L짜리 생수 한 통과 함께. 그래 봐야 5,000원 남짓하니까. 실은 그보다도 안 하니까. 당연히 지금도 그렇고, 그렇게 아끼고 아껴서 나는 그렇게 여행을 한다        

마찬가지로 그렇게 아끼고 아껴서 지난겨울에는 일본의 간사이 지방으로 놀러 갔다. 귀에 익숙할 지명으로는 오사카, 교토, 고베, 나라, 등등. 지금 하려는 얘기는 고베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고베는 그렇단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의 개항장이었고, 때문인지 조계지인지 거류지인지 아무튼 유럽인들이 몰려 살기 시작해서 유럽풍 건물이 모여있는 그런 곳이란다. 내 눈에도 그래 보였고. 그리고 또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오래된 베이커리, 카페들이 많고, 따라서 빵이나 스위츠 같은 것들도 유명하단다. 덕분에 빵돌이를 자처하는 나는 참 달달하게 걸어 다닐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집어 먹으면서. 

고베의 산노미야 지역의 토어 로드(Tor Road)라는 곳에서 우연한 마주침을 겼었다. 기형도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억할 만한 지나침’이라고 해야 하나. 상대적으로 저지대에 위치한 고베의 주요 역인 고베 산노미야 역에서 고베항을 내려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위치한 개항기 유럽풍 건물이 늘어선 키타노 지역을 잇는 약 800m가량의 언덕길이 바로 토어 로드다. 길을 가다가 우연히 한 가게를 발견했다. 감히, 어쩌면 건방지게도 그 가게의 이름은 ‘Amazing Bookstore’. 호기심을 자극하는 간판, 정확히는 상호에 이끌려서 ‘어디 한 번, 얼마나 어메이징 한가 보자’라는 마음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게 일본식 표현이었을까, 가게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그 서점은 ‘amazing’까지는 아니어도 충분히 ‘interesting’하기는 했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스타워즈와 관련한 책들이라면 스타워즈 피규어나 굿즈가 함께 있고. 미처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마블 코믹북과 함께 또 그들의 피규어가 있고. 재밌었지. 아마. 서점 곳곳 책장 사이사이로 LCD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고, 스크린에서는 여러 아티스트의 공연 실황이 재생되고 있었으며, 바로 그 아래 가판대에서는 그들의 앨범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지금 내가 포스팅하는 ‘Adam at’이라는 인스트루먼틀 밴드. 제목은 ‘Silent Hill’. 

처음엔 별생각 없이 돌아다니다가 어딘가 마음을 끄는 키보드 소리에 놀라서 LCD 스크린 앞으로 가버렸고, 다음엔 사진을 찍었지. 앨범이 바로 앞에 있었는데 잠깐 고민하다가 세상이 어느 땐데, 하며 사지 않았다. 여유가 있을 때 구매하자는 것, 그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국내의 음악 스펙트럼이 충분히 넓어져서, 한국에 와서도 쉽게 구하겠지 했지. 전혀 아니더라. 구글 재팬에 검색해도 그다지 정보가 많지 않은 밴드였기에 후회를 많이 했지. 그럴 줄 알았으면 사진이라도 제대로 찍어 놓을 걸 그랬다. 한국에 와서 제대로 들어봐야지 하고, 밴드 이름이나 기억해두려고 대충 찍어둔 사진이, 전부라니.            

여행을 거듭할수록 뼈저리게 느끼는 어느 누군가의 조언은, 마음에 드는 기념품이 있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사야만 한다는 것. 더 마음에 드는 것이 있겠지, 혹은 같은 기념품을 더 저렴하게 파는 것이 있겠지와 같은 생각에 구입을 미루게 되면 늘 귀국한 이후에야 후회하게 된다는 것. 매번 알고도 후회하는 실수이긴 한데, 내겐 지난 여행에서만큼은 ‘Adam at’의 앨범이 그랬다. 물론 지구 180도 반대편에 위치한 대륙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직구 할 수 있는 세상이긴 하지만. 한국은커녕 일본에서조차 접하기 쉬운 밴드는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면, 그 자리에서 앨범을 사 왔을 텐데. 그렇다면 허세를 부리기에 딱 좋았을 테니까. 

직접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YouTube에서도 정규 곡은 하나밖에 들을 수 없고, 그 밖에 30분 내외의 공연 실황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유일하게 공개된 곡의 제목은 그런데 다행히도 ‘Silent Hill’. 내가 잠깐 스크린 앞에 멍하니 서서 들었던 바로 그 곡이니까. 무슨 생각으로 제목을 저렇게 지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필 산노미야역에서 키타노로 가는 언덕길에 자리한 조금은 이상한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밴드의 노래 제목이 조용한, 또는 침묵의 ‘언덕’이라는 점은 술자리 어디서든 음악에 대해 같잖게 논할 때마다 하나의 자랑거리가 될 수 있겠지. 약간의 운명적인듯한 양념만 첨가하면. 

보통 언덕은 달가운 길이 아니다. 같은 거리를 걸어도 평지보다는 힘드니까. 조용한 언덕은 더 그럴지도. 입을 털면 힘들다고는 느끼지 않을 지도 모를 텐데. 반대로 숨이 차올라서 더 힘들지도. 그런데 ‘Adam at’은 신나게 달려간다. 적어도 ‘Silent Hill’만큼은. 정상을 향해, 일종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누구보다 속도감 있게. 나는 그런 속도로 언덕을 뛰어오를 줄 모른다. 

하지만 뛰어 내려오는 느낌은 알겠다. 처음엔 약간 무섭다가, 속도가 붙고 나서야 신나는 그 느낌. 그 느낌. 한 번 속도가 붙고 난 뒤에는 도저히 그 속도에 저항할 수 없는 바로 그 느낌 ‘Silent Hill’이 바로 그렇다. 신나서 뛰어오르는 게 아니라, 뛰어 내려가다 보니 다리가 저절로 움직이는 그 느낌. 마치 멈춰 서면 넘어질 것만 같은 그 느낌. 그런데 ‘Adam at’의 연주는 뛰어 올라가기를, 마치 뛰어 내려가듯 한다. 


*밴드의 공식 홈페이지: http://adamat.info/

**스트리밍 음원: http://www.soribada.com/music/artist/AJ007374

    -일본 아이튠즈나 아마존보다 저렴하다.

***포스팅한 ‘Silent Hill’이 수록된 <Silent Hill [EP]> CD를 아마존 재팬을 통해 구입했는데, 전반적으론 비디오 게임 ‘슈퍼마리오’와 어울린다는 인상이다. 기회가 되면 앨범도 리뷰해볼 듯?

****30여분 가량의 공연 실황 링크를 첨부한다. 관심 있다면 들어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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