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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뮤직 Mar 31. 2016

아직도 닮은 뒷모습을 쫓는 당신에게

잊지 못한 자신을 탓하게 되는 밤이라면

<출처 - tumblr>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 일 것이었다가

   황지우 – 너를 기다리는 동안 中」 


어설프게 감정을 배워가던 시기, 수첩 한 구석을 떠나지 않던 시의 한 구절이었다. 시에서 화자는 문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며 ‘너’ 일 것이라 기대하고, 실망하고 다시 또 기대하다 결국 오지 않는 ‘너’를 향한 발걸음을 뗀다. 하지만 소심한 성격 탓 인지, 기다림 끝에 ‘너’에게 가기로 한 결심보다 계속해서 ‘너’이길 바라는 화자의 기대가 더 근사하게 보였다. 그 구절을 따라 쓰고, 외우고, 적어 다니기까지 한 것은, 지금에서야 깨달았지만 엄청난 실수였다.

왜 실수냐 하면, 그 동경을 굳이 보답해주려는지 요즘 모두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한다. 항상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던 목 뒤, 동그랗게 귀를 판 찰랑거리던 검은색 머리, 길게 늘어뜨리지 않고 허리 위에 고정되어 있던 백팩, 가늘고 긴 손가락. 어느 하나 비슷하기라도 하면 네가 아닌 것을 확인할 때까지 눈으로 뒷모습을 쫓는다. 잔뜩 긴장해서 머리가 삐죽 서고, 걸음도 느려지고, 무슨 표정으로 마주 해야 하는지, 어떤 말을 건네야 하는지, 두서없는 고민들을 하면서. 결국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뒷모습이 너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말이다.


설익은 감정들이라고 생각했는데, 혹은 모두 끝난 줄 알았는데, 또 혹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었다 단념했는데 아직도 ‘너’를 닮은 뒷모습을 쫓고 있을 누군가에게. 위로 혹은 더 큰 공허함이 되어줄 한 곡을 전하려 한다.   


디어 클라우드(Dear Cloud) – 늦은 혼잣말

‘내게서 떠나가

이제 그만 내 곁을 맴돌아

슬프지도 않던 행복할 새도 없던

짧은 만남 속에 니가 커져버려

초라하지도 않게 넉넉하지도 못하게

나는 혼잣말로 너를 불러봐’ 

   

‘디어 클라우드(Dear Cloud)’는 현재 보컬 나인, 기타 용린, 베이스 이랑, 드럼 토근으로 구성된 4인조 모던 록 밴드이다. 소개하는 곡은 키보디스트 정아가 탈퇴하기 전인 2008년, 2집 앨범 <Grey>에 수록된 곡으로, 섬세한 키보드 멜로디로 진행된다. 그를 뒤따르는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느낌의 기타 사운드와, 투명하지만 중성적인 음색의 보컬은 듣는 이로 하여금 감성에 푹 젖을 수 있게 하면서도 쉬이 질리지 않는 중독성을 만들어낸다. 나인의 보컬과 키보드로만 진행되는 도입부와 다르게 풍성한 사운드로 광활한 몽환을 선사하는 후반부 역시 과하지 않은 풍부함으로 재생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생각에 빠져있도록 도와준다.   

          

<보컬 ‘나인’ / 출처 - dreamong.net>

이렇게 까지 ‘초라하지도 않게, 넉넉하지도 못하게’ 잘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그 정도로 좋다. 투박하게 던지듯 그러나 깔끔한 가사에, 그것을 방해하지 않을 만큼만 건네주는 멜로디로, 절절하지만 과하지 않은 창법에, 편안한 호흡과 저절로 눈을 감고 듣게 만드는 목소리로, 또 한 번의 네 뒷모습 쫓기를 한 날엔 습관처럼 재생하게 된다. 노래의 마무리처럼, 끊어내어지지 않는 생각들이 아득해지면서 잠들 수 있으니, 혹시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 자신을 탓하게 되는 밤이라면 함께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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