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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뮤직 Apr 15. 2016

애연가(愛煙家)를 위한 애연가(愛煙歌)

간접세를 꼬박꼬박 내고 있는 충실한 납세자인 나와, 당신을 위하여 준비한


노래는 계절을 탄다. 또 듣는 이의 감성도 탄다. 그래서 그런지 세상엔 '어떤 특별한 환경에 어울리는 음악 리스트'가 넘쳐 난다. 봄노래, 가을 노래와 같은 계절 노래들부터 애주가, 자장가, 출근 송, 드라이브 송 등. 이러한 추천 곡 리스트들은 인터넷에도 널려 있고, 또 음원 사이트의 추천 리스트에도 널려 있다. 하지만 그 많고 많은 리스트 들 중에도 없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담배 피울 때 어울리는 노래'이다. 그래서 필자가 직접 준비했다. 


올해도 간접세를 꼬박꼬박 내고 있는 충실한 납세자인 나와, 당신을 위하여 준비한 

애연가(愛煙家)를 위한 애연가(愛煙歌)!             

*아무리 담뱃값이 인상되고, 흡연자들이 거리 밖으로 밀려나도 애연가들은 죽지 않는다, 다만 구석 어딘가로 사라질 뿐이다. 


1. Mac DeMarco - Ode To Viceroy       

대표적인 골초 뮤지션이자, 또 대표적인 힙스터 인디 뮤지션인 맥 드마르코(Mac DeMarco)의 ‘Ode To Viceroy’이다. Viceroy는 (아마도 Mac Demarco가 피우는) 담배 이름이다. 그러니 노래 제목은 ‘Viceroy를 위한 시가, 송가’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담배를 위한 노래이다. 뮤직비디오를 재생해보자. 처음부터 끝까지 주구장창 담배만 피워댄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모닝 담배, TV 보면서 담배, 운전하면서 담배, 그리고 기타 치면서 담배. 근데 참 맛있게도 핀다.
맥 드마르코 특유의 게으름뱅이 같은 보컬에 축축 쳐지고 또 늘어지면서 동시에 발랄한 듯한 일렉 기타가 더해지니 노래는 한없이 태평해진다. 뭐가 그렇게 태평한지는 잘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가만히 넋 놓고, 아주 편안하게 듣고 있게 된다. 이 곡을 들으며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사람처럼 담배를 한 대 피워보자. 담배 맛이 아주 꿀맛일 테니. 

Oh, don’t let me see you crying  네가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cause, oh honey, I’ll smoke you ‘til I’m dying  왜냐면 난 죽을 때까지 담배를 필 거니까 

세상에 이런 가사가 있다니, 담배를 끊으라고 난리 피우는 여자친구나 지인들 혹은 부모님께 이 가사로 맞받아 쳐보자. 하지만 그들이 받을 상처나 당신에게 돌아올 그들의 공격은 책임지지 않는다. 

경고: 담배를 피우며 뒤에 나오는 기타 솔로를 듣고 있노라면 음악에 심취해서 약간 “high”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당신은 마약에 취한 것이 아니라, 음악에 취한 것뿐이다.


2. Oasis - Cigarettes and Alcohol        

Q. 중년인데 몸 관리 비법은 무엇인가요?

A. “고기 많이 먹고, 담배 자주 피우고, 맥주 많이 마시고, 늦게 자면 된다.” 

브릿팝의 큰 형님이자 오아시스의 프런트 맨이었던 노엘 갤러거의 몸 관리 비법이다. ‘이것이 진정한 락스타의 삶의 태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잠깐 그런데 ‘고기 많이 먹고, 담배 자주 피우고, 맥주 많이 마시고, 늦게 자는 것’ 이거 완전히 내 얘기인데… 그렇다. 우리네 삶은 사실 락스타들의 삶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붙인 다음 이 노래를 풀 볼륨으로 재생해보자. 이 화끈한 Rock N Roll 트랙을 풀 볼륨으로 들으며 담배를 피우고 있노라면 마치 스스로가 락스타가 된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화끈한 기타 리프와 리암의 목소리에 심취해 락스타라도 된 듯이 멋있게 담배를 한 모금 빨아보자. (술까지 있다면 금상첨화)


오아시스가 피우는 담배나, 우리가 피우는 담배나 크게 다를 것은 없지 않겠는가?   

To find yourself a job when there's nothing worth working for? 
It's a crazy situation
But all I need are cigarettes and alcohol! 

아무런 일 할 가치가 없는 곳에서 일 하고 있는 너 자신을 봐.
이건 미친 상황이 분명해!
그래 내게 필요한 건 담배와 술이 전부야! 

*그렇다. 술과 담배는 이 미친 세상을 살아가기에 꼭 필요한 필수 아이템이다.


3. Blur - Jets       

쉬고 싶다. 쉬고 싶다. 쉬고 싶다.
세상은 아주 바쁘게 돌아간다. 학생이나 직장인이나 뭐가 그렇게 바쁜 건지 하루에도 몇 번씩 바쁘게 뛰어다닌다. 그런데 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흘린 땀과 노력에 대한 보상은 미미한 것 같다. 내가 노력한 만큼의 보상이라도 받으면 그럭저럭 살 맛이 날 것 같은데 받아 보는 성적표나, 월급이나 그렇게 만족스럽진 않다. 그래도 바쁘게 살지 않으면,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인 것 같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다 아등바등 살아가는 거 보니 바쁘게 살아가는 게 아주 정상 인 것 같다. 그런 우리를 위해 필요한 것은 휴식이다. 빠르게 돌아가던 것들을 잠시 멈추자. 하던 일도 멈추고 담배를 하나 꺼내 물자. 그리고 이 노래를 재생한 뒤 천천히 피워보자. 담배 연기가 느릿느릿, 스멀스멀 퍼져나가 듯, 이 노래도 느릿느릿하게 퍼져 나온다. 단조로운 드럼 비트 위에 더해지는 일렉 기타, 그리고 간간이 울리는 베이스에 더해지는 각종 악기들의 소리는 당신의 휴식을 좀 더 즐겁게 해줄 것이다.


4. Beenzino - If I Die Tomorrow  &  Primary - 독 (Feat. E SENS)      

담배는 우리에게 휴식이기도 하고 일탈이기도 하지만 또 고독이기도 하고 고민이기도 하다. 군대에 갔다 온 대부분의 (흡연자인) 군필자들은 아마 공감할 것이다. 보이지 않는, 멀게만 느껴지는 전역 날을 생각하면 담배 생각이 나고, 선임한테 별것도 아닌 걸로 갈굼을 당하면 또 담배 생각이 나고, 집에 있는 가족 생각하면 담배 생각이 나고, 밖에서 뭐하고 있을지 모르는 여자친구 생각을 하면 또 담배 생각이 난다. 언제부턴가 고민을 하고 있노라면 손에는 담배가 끼워져 있다. 내뿜은 담배연기에 고민이라도 실어 내보내고 싶은 마음인지, 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담배는 항상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고독한 우리에게 좋은 친구임에는 분명하다.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두 힙합 트랙을 들으며 담배를 피워보자. 어쩌면 한 개비를 더 피게 될지도 모르겠다. 

‘붙잡아야지 잃어가던 것’


5. Bob Dylan - Like A Rolling Stone             

긴말하지 않겠다. 인생사 유아독존(唯我獨尊)이다. 밥 딜런의 이 곡은 제목 그대로 굴러가는 돌에 인생을 비유한다. 갈 곳도 없고, 방향도 없고, 잊혀진 채로, 가려진 채로 굴러가는 돌은 어쩌면 우리의 인생과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진다. 그 시간, 밥 딜런의 노래와 담배로 위로해보는 건 어떨까? 무엇보다 밥 딜런의 맹랑한 보컬과 곡의 탄탄한 멜로디는 흥겹기 그지없고, 또 포크 락(Folk Rock)이라는 게 담배랑 여간 잘 어울리는 게 아니다. 

Now you don't talk so loud
Now you don't seem so proud


6. 장기하와 얼굴들 - 싸구려 커피       

<'싸구려 커피'로 인디계의 서태지가 된 장기하와 얼굴들, 뮤직 비디오는 당연히 없다.>

 아무리 담뱃값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담배는 여전히 서민들을 위로하는 값싼 기호식품임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그 값싼 기호식품은 자판기에서 뽑아먹을 수 있는 300원짜리 싸구려 커피와도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수입담배 기준으로 담배가 지금 한 갑에 4500원이니 한 개비는 225원 꼴이다. 여기에 싸구려 자판기 커피는 보통 300원 정도이니 우리는 525원으로 사치 아닌 사치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525원이 내는 최고의 시너지가 아닐까 싶다. 싸구려 커피와 담배 한 개비, 비록 넘치지는 못하더라도 전혀 부족한 것은 없다. 아니 사실 언제나 매우 만족스럽다. 그리고 그 호사의 배경음악으로는 퀴퀴한 냄새가 나는 이 노래 만한 것도 없다.


7. 구남과 여 라이딩 스텔라 - 젊은이     

술 취한 밤, 택시를 타고 집 앞까지 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주머니 사정은 그렇게 넉넉하지 않다. 지하철 혹은 버스를 타고 집 근처에서 내려 5분 내지 10분 길게는 20분 정도를 걸어야 집이 나온다. 당신이 흡연자라면, 술 취한 밤 집으로 향하는 그 길에 담배가 꼭 빠지지 않을 것이다. 평소에는 길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늦은 밤이라 길에는 사람도 없고, 또 어디서 피었다 가기에는 너무 피곤하다. 그래서 그냥 ‘길빵’(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걸어가는 무례한 행위)을 하면서 집으로 향한다. 술에 취해 집으로 걷다 보면 이런저런 기분이 되기도 하고, 또 이런저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신나기도 하고, 또 갑자기 슬퍼지기도 하고 또 우울해지기도 하는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들 때 이 노래를 들으며 집으로 가보자. 뿅뿅 거리는 건반 소리에 신이 나 춤을 추고 싶기도 하고, 또 갑자기 축축 쳐지는 조웅의 기타 소리에 마음이 애잔해지기도 할 것이다. 

술 취한 밤 사는 게 무거워 마신 술이 더 무거워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는 후회를 해 본다
술 취한 밤 사는 게 무거워 마신 술이 더 무거워
피우지 말라는 담배도 한 가치 물고 하늘 보고 누웠다 

내 맘은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깨져버린 잔
여기에 나 있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별 

그 와중에 가사가 술에 취한 당신을 웃기고, 울릴지도 모른다.
어쨌든 담배 맛은 좋을 것이다.


8. The Chemical Brothers - Go         

 사실 담배 피우는 이유를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냥 계속 피지 않고 있으면 피고 싶어 지는 거고, 그럴 때 안 피면 짜증도 나고 하니까 피는 거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피게 되고, 또 안 피고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아서 피게 되니 담배라는 것은 정말 무서운 것이 맞긴 맞는 것 같다. 어쨌든 여러 이유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담배가 피고 싶으니 그냥 담배 피우러 ‘Go’하자. 빠른 속도로 쏟아지는 비트와 그 위에 더해지는 Q-Tip의 랩을 듣고 있으면 흡연구역으로 가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빨리 담배 피우러 ‘Go’하자.”  




마치며. 

담배라는 게 참 무섭다. 끊기는 힘들고 또 돈은 돈대로 들고, 고약한 냄새도 나는 데다가 요즘에는 필 곳을 찾기도 힘들고, 잘못 폈다가 욕까지 먹는다. 그러다 보니 어릴 적 ‘담배라는 것은 아예 배울 생각을 말아라’라고 말씀하시던 (35년째 흡연자인) 아버지의 말씀이 뇌리를 스친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담배를 이미 배우고만 것을.


그러니 비흡연자들은 당신의 건강과 돈을 위해서 앞으로도 담배 없는 삶을 잘 살기를 기원한다. 하지만 나와 같은 흡연자들은 이왕 피고 사는 것, 조금이라도 맛있게 피면서 살아가 보자. 

아직 담배가 남았다면?

Beck의 Loser, Kasabian의 L.S.F, Pixies의 Where is my mind? 도 담배와 썩 잘 어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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