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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뮤직 Apr 27. 2016

선의 안쪽에, 때로는 바깥에, 혹은 그 위에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하여

#0. 경계인       

나의 눈은 밝고 나의 귀는 항상 세상을 향해 열려 있으니

불안하지 않아 두렵지도 않아 언제나처럼 바람이 부는 이 곳에서

나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는 바로 그 길을 선택했으니

때론 끌어안고 때론 구별하며 나의 진심과 나의 균형을 노래할 수 있는 자유

 지루한 다툼 차가운 그늘 속에도 나의 진실은 여기 맴돌고 있으니

이젠 사라지길 부디

그러하길 너의 이름과 너의 기억들 다시 보게 되길

나를 달래 주던 제주의 바다 또 빛의 대지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1. 선긋기            

우리 모두는 유치했다. 실은 지금도 유치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유치하지 않은 척하면서 살아갈 줄은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런 것들을 배우면서 자라 왔을 테니까. 어쨌든 여전히 유치한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유치함은, 정말 드라마처럼 뻔하지만 책상에 가상의 선을 그은 것. 아주 옛날 영상물에 등장하듯 짝꿍끼리 하나의 책상을 쓰며 금을 그은 것은 아니지만, 각자의 책상이 맞붙는 경계를 중심으로 서로 넘어오지 말라던 그때의 기억. (사진 출처 - https://colettebaronreid.com)  


#2. 선-흔히 우리 ‘사이’라고 말하는 그 지점            

그 이후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그어져 있는, 보이지 않는 선을 의식하기 시작했던 건. 마치 동심원 같다고 해야 할까. 어차피 나의 운신의 폭은 정해져 있지만, 그 안에도 일종의 원이 있었다, 늘. 중학교 또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거나, 혹은 한 학년을 올라가 새로운 반에 갈 때마다 내 눈에 먼저 들어온 것은 누가 중심이 될 것인지, 그리고 누가 바깥에 버려진 찌질이가 될 것인지. (사진 - 영화 '바람')


#3. 선 안으로_담배            

찌질이가 되기 싫었다. 중학생 때였다. 어느 날 친구 하나가 골목으로 들어갔다. 담뱃갑을 딴에는 세련되게는 열고는 당시 내 눈에는 제법 멋있게 하나를 입에 물었다. 그리고는 담뱃갑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다시, 찌질이가 되기 싫었다. 그때부터 담배를 피웠다, 지금까지도. (사진 - 영화 '바람')  


#4. 선 안에서 

선천적으로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 선 밖에서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살던 내가, 대학 때문에 서울로 올라오면서, 누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선물은 이전의 기억과 단절될 수 있다는 것. 나는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신입생 MT를 가지 않았다. 어떠한 소모임이나 동아리도 들지 않았다. 선 밖에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진 - sticky monster lab)  


#6. 발을 걸치고

원심력이라는 건 생각보다 무서웠다. 거기에서 이탈하는 순간, 무한정 나가떨어진 것만 같았다. 차라리 마음을 비우고 원심력에 나를 기댔을 땐, 그것이 추동하는 힘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딴에는 균형을 잡겠다고 나는 선의 안과 밖에 모두 발을 걸치고 있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건 결코 평형의 상태가 아니었다. 시소 같은 거였다. 어릴 적 놀이터에서 시소의 좌우에 한 발씩 걸치고 균형을 잡으며 놀았던, 그때. 제법 균형을 잡으며 버티던 시간들도 있지만, 그 와중에도 내 몸은 좌우로 끊임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때마다 무게중심을 바꿔야만 그 균형이라는 것은 유지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끝내는 한쪽으로 모두 기울어져야만 끝나고 마는 놀이다, 그건.            


#7. 리트를 준비하다가 

미국 사회에서 아시안 아메리칸 학생들을 ‘모범적 소수 인종(model minority)’으로, 즉 미국의 교육체계 속에서 뚜렷하게 성공한 소수 인종의 전형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리고 그들은 성공적인 학교 생활을 통해 주류 사회에 동화되고 이것에 의해 사회적 삶에서 인종주의의 영향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아시안 아메리칸 학생들이 이러한 정형화된 이미지처럼 인종주의의 장벽을 넘어 미국 사회의 구성원으로 참여하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미국 사회에서 아시안 아메리칸 학생들의 인종적 정체성은 다수자인 ‘백인’이 가진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소수자인 아시아인이 가진 단점이라고 생각하는 것과의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에게 두 가지 보이지 않는 상처를 낳는다. 하나는 대부분의 아시안 아메리칸 학생들이 인종적인 차이에 대한 그들의 불만을 해소하고 인종 차이에서 발생하는 차별을 피하기 위하여 백인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학생들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아시아계 사람으로 연상하지 않도록 자신을 아시아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으로부터 이탈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범적 소수 인종으로서의 아시안 아메리칸 학생은 백인에 가까운 또는 아시아인에서 먼 ‘아메리칸’으로 성장할 위험 속에 있다.

이런 지문을 봤다. 그리고 생각났다, ‘경계인’이라는 단어가. 그러자, 노래가.  


#8’. 경계인’ 

이 노래를 처음 들은 건, 아마 내가 열여섯이나 열일곱 즈음이었을 거다. 막 ‘중2병’을 겨우 지나왔을 무렵이겠지. 그래서 이 노래에 끌렸던 것 같다. 그즈음 좋다, 좋다며 여러 번 돌려 듣기도 했지만, 몇 달 지나지 않아 금세 질려버려 거의 십 년 가깝게, 아니 이미 십 년간 머리 속에서 지운채 지내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미 말했듯, 나는 스스로 선 밖에 서있고자 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그 선 안에 나 역시 있기를 누구보다 바랐다. ‘때론 끌어안고 때론 구별하며 나의 진심과 나의 균형을’ 지킬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위의 지문을 읽으며, 이중의 부정도 가능하지만 이중의 긍정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같은 건데, 난 이중의 부정만을 하며 살았다. 그래서 이 노래가 떠올랐다.  


#9. 경계인으로 살아남기            

당신과 나 사이의 선, 그 선이 단순히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그어져 있다면, 그러니까 우리 눈에 보인다면 그 위에 서있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마치 줄타기하듯, 아슬아슬하게. 왜냐면 ‘우리의 눈은 밝고, 우리의 귀는 열려 있으니.’ 해보려고, 해보려고, 해보려고.


#10. 시소 

사실 시소의 가운데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발을 땅에 딛고 있으면 균형을 잡기란 무척이나 쉽다. 굳이 좌우로 발을 붙이고 애써가며 균형을 잡으려 노력하는 것보다는. 그래서 또 의문이 든다. 경계인이 되겠다는 것이, 결국 도망치고자 하는 게 아니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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