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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뮤직 Apr 30. 2016

미지의 음악

여대생 미지(혹은 이자혜)의 음악적 취향


얼마 전에 특집 썼다가 까였다. 웹진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웹진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물어보았다. “우리 웹진 정체성이 뭐예요?”

대답은 “쿨하고 힙한 것.”이었다. 망했다. 내가 제일 못하는 두 가지다. 게다가 힙은 유동적이다. 더 새로운, 더 멋진 스타일을 먼저 획득하는 것이 힙한 것이기 때문이다. ‘힙’은 ‘힙’이라고 불리며 확산되는 순간 그 위상을 잃는다. 힙스터 패션이던 테니스 스커트가 대학가에서 99999명 볼 수 있는 시스 젠더 헤테로 여성 패션으로 바뀌며 힙스터들이 피하게 된 것이 한 예이다.

그렇다면 새롭고 멋지지만, 그 위상을 잃지 않을만한 것, 힙하지만 빠르게 확산하지는 않을 만한 것을 다뤄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는 레진코믹스에서 매주 금요일에 연재되고 있는 <미지의 세계>가 그렇다.

<미지의 세계> 작가 이자혜는 중학교 때부터 겸디갹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상에서 유명했다. 현재는 3대 힙스터 대학* 중 하나인 홍익대학교, 그중에서 제일 힙한 과인 예술학과를 다니고 있다(오혁 나부랭이도 홍대 예술학과이다). 경력 또한 힙하다. 무대륙, 인사 미술 공간, 커먼 센터, 유어마인드, 세종 문화 회관, 일민 미술관, 한잔의 룰루랄라, 서울 시립 미술관. 이자혜가 참여했던 행사는 주로 힙스터의 사랑을 받는 공간에서 열렸다. 바로 홍대의 소규모 문화 공간들과 미술관이다. 특히 힙스터 대잔치였던 서울 시립 미술관의 <서울 바벨>에서는 이자혜의 굿즈가 품절되어 재입고되기도 했다. 이런 정보들을 종합해 볼 때 이자혜는 두말할 것도 없이 힙의 여왕이다. 그러나 이자혜가 힙스터인 것은 아니다. 수많은 힙스터와 예술 종자들이 이자혜를 추앙할 뿐이다.

<미지의 세계> 또한 힙하지 않다. <미지의 세계>는 힙하기엔 너무 솔직하고 과격하다. 주인공인 조미지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미지는 못생기고 찐따이고 무엇보다 가난하다. 하지만 미지는 홍대로 추정되는 인서울 4년제 대학을 다니며 학교 음악 동아리 회원이다. 아이팟 클래식을 들고 다니고 해외 음악, 그중에서도 브릿팝을 많이 듣는다. 인디 밴드들의 뒤풀이에 참석하곤 하고 원나잇도 종종한다. 친구들과 독립 잡지를 만든 경력이 있으며 트위터를 즐긴다. 무엇보다도 미지는 고급 취향과 문화, 예술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요컨대 미지는 힙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췄다. 거기에 미지는 그런 조건 때문에 힙스터와 예술 종자를 쉽게 접한다. 아마 이것이 힙스터들이 미지의 세계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앞으로 연재될 이 글은 그런 미지(혹은 이자혜)의 취향을 다루고자 한다. 그중에서도 음악적 취향에 대해서 말이다. 다행히도 미지의 음악적 취향은 꽤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에피소드 제목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직접 언급되기도 하며, 미지가 부르기도 한다. 그럼 이제부터 <미지의 세계>에 등장하는 음악을 하나하나 소개하겠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3화: 오! 그대여 춤추자

그가 너를 쳐다본다

넌 꿩처럼 건강하다

하지만 사랑은 가끔은 방해가 된다

방해는 이처럼 다양하다

가끔은 사랑이란 갈비처럼 달콤하다

다른 때는 사랑이란 우유처럼 맛을 낸다

삶이란 가끔은 집을 짓는 어떤 돌처럼 힘들다

이따금 쉬울 때도 있다

(오! 그대여 춤추자 오! 그대여 춤추자

오! HAPPY 춤 YEAH)


<미지의 세계> 3화 제목은 “꿩처럼 건강하다.”이다. 그리고 이 구절은 2009년에 미국 HBO에서 방영한 뮤지컬 코미디 <Flight of the Conchords> 시즌2 에피소드 7에서 등장한다. 이 코미디는 동명의 밴드 이야기로, 뮤지컬 코미디답게 중간중간 노래를 부른다. “오! 그대여 춤추자” 또한 Flight of the Conchords 멤버 Bret이 부른 노래 중 하나다. ‘꿩처럼 건강하다’는 이 노래의 가사다.

미지를 좋아하는 건 ‘어리고 멍청한 쓰레기들’뿐이다. 미지가 사랑하는 남자들은 미지를 사랑하지 않는다. 미지는 매번 차인다. 차여놓고 ‘그래야 내가 좋아하는 남자지.’라고 생각한다. 미지의 사랑은 우유처럼 맛을 내기 때문일까…. 그건 모르겠지만, 미지의 삶이란 가끔은 집을 짓는 어떤 돌처럼 힘들어 보인다. 다양한 방해를 받는, 꿩처럼 건강한 미지는 자기를 찬 남자의 게이 섹스를 상상하며 자위를 한다.


5화: The Smiths - This Charming man

Punctured bicycle

on a hillside desolate

will Nature make a man of me yet?

When in this charming car

this charming man

Why pamper life's complexities

when the leather runs smooth on the passenger seat?

I would go out tonight

but I haven't got a stitch to wear

this man said "It's gruesome

that someone so handsome should care"

A jumped-up pantry boy

who never knew his place

he said "return the rings"

he knows so much about these things

he knows so much about these things

I would go out tonight

but I haven't got a stitch to wear

this man said "It's gruesome

that someone so handsome should care"

This charming man

this charming man

A jumped-up pantry boy

who never knew his place

he said "return the ring"

he knows so much about these things

he knows so much about these things

he knows so much about these things


“디스촤밍맨”은 5화 제목이자 The Smiths의 두 번째 싱글 제목이다. 이 노래가 성 소수자의 이야기인 것은 <미지의 세계>에서 별로 중요치 않아 보인다. 5화는 그저 촤밍맨(Charming man)이었을지도 모르는 오리온에 관한 이야기다. 미지와 오리온은 <거룹과 진저>, 쿵프로그램(밴드 “쾅 프로그램” 패러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다. 영화가 어쩌구 미장센이 어쩌구 딜레탕트가 어쩌구 라깡이 어쩌구… 이 작가는 저쩌구 이 감독은 저쩌구……. 둘은 온갖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미지는 오리온과 취향이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정말로 미지에게 오리온은 촤밍맨이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미지가 오리온의 성기가 작다는 걸 알게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오리온이 2분 59초 만에 사정을 하기 전까지는, 이후에 미지의 친구와 지랄 맞은 연애를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9화: Suede - Chemistry Between Us

And maybe we're just kids who've grown, and maybe not,

And maybe when we're on our own, we don't have much,

But oh, we are young and not tired of it,

Oh, we are young and easily lead,

Oh, with all the kids getting out of their heads.

Oh, Class A, Class B, is that the only chemistry?

Oh, Class A, Class B, is that the only chemistry between us?

And maybe were just Streatham trash, and maybe not,

And maybe we're just capital flash in a stupid love,

But oh, we are young and not tired of it,

Oh we are young and easily lead,

Oh, by all the kids getting out of our heads.

Oh, Class A, Class B, is that the only chemistry?

Oh, Class A, Class B, is that the only chemistry between us?


분명히 9화 제목은 “케미스트리 비트윈 어스”인데 케미스트리가 0인 남자애가 등장한다. 미지가 너무나 좋아하는 문 패트롤 사단 회고전을 다 보지 않고 나온 윤초시. 멍청하고 소심한 윤초시. 그 애가 미지에게 고백을 해도 미지가 느끼는 감정은 “어쩌라고 더 해봐.”일뿐이다. 심지어 윤초시는 카톡으로 고백한 뒤 몇 분 만에 단념해버린다. 너는 왜 더 노력해보지 않는 거야? 오 클래스 A, 클래스 B, 우리 사이의 화학 작용은 고작 그것뿐이야(Oh, Class A, Class B, is that the only chemistry between us)?


14화: Erasure - Ship of Fools

Spinning, spinning

I can't believe what is happening to me

My head is spinning

He was the baby of the class, you know

He really didn't know that one and one was two

Two and two were four

He was the baby of the class, you know

He really didn't know that, really didn't know

Oh, what a poor soul

Ooh, do we not sail on a ship of fools?

Ooh, why is life so precious and so cruel?

Ooh, do we not sail on a ship of fools?

Ooh, why is life so precious and so cruel?


Erasure의 Ship of Fools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믿을 수 없어(I can’t believe what is happening to me)’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14화의 미지도 비슷한 상황이다. 미지는 귀갓길에 장애인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1 더하기 1이 2이고 2 더하기 2가 4라는 것도 모를 것 같은(He really didn't know that one and one was two, two and two were four) 장애인 남자에게. 미지는 당황해서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도망친다.


14화: Thee Oh Sees - The River Rushes (To Screw MD Over)

Expertly, the river flows

Eventually, it takes me home

The weeping willows upon the shore

Are memories of lovers gone

And I don't think these things are real

They might be hints of used to be

Like lovers lusting on the breeze

Or fuckers burning out their knees

Waiting as themes are freed

From cages in a memory

I can say "ain't it silly"

For remembering what used to be


성추행을 당하기 전, 미지가 길을 걸으며 부르던 노래다. 2009년에 발매된 Thee Oh Sees의 “Dog Poison”의 1번 트랙으로, 단순한 리프의 중독성 있는 개러지 락이다. 훌륭하게도 강은 흐르고(Expertly, the river flows) 결국에는 나를 집으로 데려다준다(Eventually, it takes me home). 미지의 귀가는 강물이 흐르듯 순탄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결국, 집에 다다르기는 하지만 미지의 귀로는 이후에도 순탄치 못하다.


- 다음에 계속


*3대 힙스터 대학: 계원예술대학교, 한국예술 종합학교, 홍익대학교. 예술계열 대학생들이 하는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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