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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개 뮤직 May 12. 2016

Radiohead - A Moon Shaped Pool

라디오헤드 일대기의 마침표

-라디오헤드의 귀환

라디오헤드가 우주선이라면, 지난 20년간 지구 밖 우주를 향해 날아갔다고 할 수 있겠다. 그들은 1집 <Pablo Honey>의 기타 락 문법에서 벗어나 글리치(glitch), 일렉트로니카, 아트락 등 점점 새로운 영역에 뛰어들면서 지구인에게는 생소한 ‘우주음악’을 만들었다. 커리어 내내 시대에 뒤처지지 않고, 오히려 훨씬 더 앞서갈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그런데 영원히 우주로만 뻗어나갈 것만 같았던 그들이 놀랍게도 신보 <A Moon Shaped Pool>에서 귀환을 알린다.

첫인상은 어느 라디오헤드 앨범과 마찬가지로 신선 함이다. <Kid A>부터 본격적으로 일렉트로니카와 락의 경계를 넘나들기 시작한 라디오헤드는 이제 조니 그린우드(Johnny Greenwood, 리드 기타)가 바닥에 쭈그려서 모듈러 신디사이저를 만지작하는 모습이 그가 기타를 치는 것만큼이나 익숙해졌다. 그런데 이번 앨범에 그는 지휘봉을 잡았다. 때로는 신경을 곤두서게 할 정도로 날카롭고(“Burn The Witch”), 때로는 레드 제플린의 “Kashimir”처럼 동양적이고 신비롭기도 한(“The Numbers”) 그의 스트링 편곡은, 앨범 전반의 테마를 풀어내는 원동력이 되어주고, 기존 앨범들과는 차별화된 사운드를 들려준다.
             

 
물론 조니 그린우드는 영화 음악 작곡가로 솔로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오케스트라 편곡을 한 경력도 있고, 이미 과거 라디오헤드 곡에서도 스트링이 적지 않게 쓰였기에 그에게 완전히 새로운 도전은 아니다. 그러나 이처럼 라디오헤드 음반에서 관현악단과 합창단이 <A Moon Shaped Pool>처럼 앨범 전반에 걸쳐 주된 원동력이 된 적은 없었다. 그와 반대로 송라이팅 자체는 조금 더 클래식한, 3~7집 정도의 라디오헤드 스타일이다. 클래식 라디오헤드 스타일의 작곡과 화려한 오케스트라 편곡이 어우러져 놀랍도록 완벽학 조화를 이룬다. 단순히 기존 곡에 스트링을 덧붙인 느낌이 아닌, 원래부터 스트링이 주가 되는 노래처럼 들린다. 마치 처음부터 라디오헤드가 관현악단이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조니 그린우드의 스트링 편곡을 듣고 받은 충격이 가실 때쯤(필자에게는 한 대여섯 번 정주행 했을 때쯤부터였다) <A Moon Shaped Pool>이 담은 귀환의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다. 라디오헤드는 이 앨범으로 20여 년간의 우주탐사 임무를 마치고 드디어 그 결실을 들고 지구로 향하고 있음을 알린다. 지난 8장의 앨범은 <A Moon Shaped Pool>에 도달하기 위한 시행착오의 과정과 같이 느껴진다. 이 앨범이 라디오헤드 디스코그라피 중 가장 뛰어난 앨범이라는 말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커리어 내내 추구해온 음악과 메시지 그 자체를 담아낸 음반이지 않나 싶다.

라디오헤드는 1집부터 8집까지 불안함에 대한 노래를 불렀다. 특히 세상에 대한 불안증세, 세기말적 정서가 음악의 주된 테마를 이루었다. 라디오헤드가 이런 음악을 처음 만들었던 90년대와 비교했을 때 세상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냉전 종전 직후 오히려 희망적인 분위기를 품던 90년대 초와 비교했을 때 현재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의 몰락, 세계화의 부작용, 급속도의 기술 발전에 따른 국제적 아노미 현상 등 우리는 그 어떤 때보다도 상시 불안에 떨고 있다. 어쩌면 라디오헤드가 90년대부터 주문처럼 읊어온 불안의 메시지를 드디어 완전히 공감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게 아닌가 싶다(그다지 반갑지만은 않다).         

오프닝 트랙 “Burn The Witch”

아니나 다를까 그런 환경 속에서 그들이 들고 나온 <A Moon Shaped Pool>은 가사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불안하고 음침하게 들린다. 오프닝 트랙 “Burn The Witch”의 날카로운 스트링 소리가 나올 때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청취자는 없으리라 본다. 마치 정서불안 환자의 머릿속에 들어가 세상을 둘러보는 기분을 준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그 속에서도 절대 희망과 투쟁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참혹한 전쟁터에 한 송이의 꽃이 피듯이, 라디오헤드는 극도의 불안 및 절망 상태에 놓인 한 폭의 그림을 그려놓고 거기서 아름다움을 찾는다. 앨범의 어느 한 순간도 그들은 완전한 포기, 완전한 우울로 빠지지 않고 항상 긴장감을 유지한다. 절제되고 잔잔한 분위기 속에서 절망과 아름다움, 투쟁 사이의 줄다리기를 한다. 20여 년 동안 그들이 찾기 위해 우주를 돌아다녔던 황금비 같은 밸런스를 드디어 <A Moon Shaped Pool>에서 이룬 것이다.
             

 
그들이 추구하던 음악의 정점을 도달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분명해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이 앨범은 라디오헤드 일대기의 마침표처럼 느껴진다. 가사에서 그런 암시를 하지는 않지만, 앨범 전반에 걸쳐 결말의 분위기를 풍기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필자의 말이 틀렸으면 하지만, 여기서 그들이 음악적으로 더 나아갈 여지가 안 보인다. 이 앨범은 라디오헤드 그 자체이자 그들이 20여 년 동안 음악적 탐험을 하며 맺은 결실이다. 설사 다음 앨범이 있다 할지언정, 지금 그들의 작업 속도를 봤을 때 최소 5년은 걸릴 테니, 그동안 이 걸작을 곱씹을 시간은 충분히 있을 것 같다.




아티스트: RADIOHEAD

앨범 명: A Moon Shaped Pool

발매일:2016.05.09

길이: 00:52:31

수록 곡 목록

1. Burn The Witch

2. Daydreaming

3. Decks Dark

4. Desert Island Disk

5. Ful Stop

6. Glass Eyes

7. Identikit

8. The Numbers

9. Present Tense

10. Tinker Tailer Soldier Sailor Rich Man Poor Man Beggar Man Thief

11. True Love Wai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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