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이란 무섭다.
유행이란 무섭다. 단순히 지하철 옆자리에 나와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앉기 때문이 아니다. 사람을 현혹시키는 속성 탓이다. 유행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수용자는 유행을 자기 몸에 맞추려 한다. 모양이 산다면 다행이지만 모두가 패셔니스타인 건 아니다. 분명 누군가는 체형이, 색상이, ‘느낌적인 느낌’이 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는 점원의 달콤한 속삭임과 화려한 조명에 넘어가지 않을 주관이 필요하다.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라는 주관이.
그런데 리처드 애쉬크로프트는 좀 다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 <These People>의 패착은 바로 거기에 있다. 현악기, 공간감을 잔뜩 머금은 기타 사운드, 각종 효과음까지. 온갖 좋은 것이 잔뜩 들어간 곡들은 음반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서로 엉겨 붙어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상당수의 곡은 반복적인 코드 진행과 명확하지 못한 선율 탓에 지루함이 느껴진다. 각각의 악기가 조화를 이루기보다는 자기 존재감 뽐내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중심을 잡아줄 선율, 악기 그 무엇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 리처드 애쉬크로프트의 개성 넘치는 보컬을 부각하는 결과를 낳았다. 능남과의 대결에서 손발이 맞지 않아 패배한 북산이 고교 농구 스타 서태웅만은 가져간 느낌이랄까.
훌륭한 곡도 분명 존재한다. 발칙한 매력의 ‘Out Of My Body’, 콜드플레이를 떠오르게 하는 건반 플레이의 ‘Hold On’ 등이 선율에 대한 갈증을 채워준다. 음반의 후반부에 위치한 ‘Ain’t The Future So Bright’ 또한 과거의 음반에서 들을 수 있던 서정성을 뽐내고 있다. 비록 나머지 곡의 무난함 탓에 곡 간 유기성이 발휘되지 않고 제각기 빛난다는 점이 흠이지만 말이다.
결과적으로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음반이었지만 실망보다는 아쉬운 마음이 크다.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채 흘러내린 음악가의 창작욕이 흔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애쉬크로프트의 음악에 목말라하는 이들의 목을 ‘잠시’ 축여줄 정도로 듣기에는 나쁘지 않다.
아티스트 : Richard Ashcroft
음반 : These People
발매일 : 2016.05.20.
수록곡
1. Out Of My Body
2. This Is How It Feels
3. They Don’t Own Me
4. Hold On
5. These People
6. Everybody Needs Somebody To Hurt
7. Picture Of You
8. Black Lines
9. Ain’t The Future So Bright
10. Songs Of Exper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