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나이롱 주방장”

시즌 ⌜2⌟ 사막의 품에서, 우쓰마니아 캠프

by 아문선

당신은 오늘도 작열하는 열사 위에다 태극기를 꽂아 놓고, 보석보다 더 값진 땀방울을 흘리며 작업에 열중하고 계십니다.

-밀물|1984년 1월호|해외건설 역군들에게|최미나|여류작가-



쥐포도 요리가 된다

중동 건설 붐이 시작되던 1970년 후반, 근로자들의 식자재는 현지에서 조달했었다. 인원이 많아지고 한국음식에 대한 근로자들의 요청에 따라, 고춧가루, 고추장, 된장, 간장등 한식에 필요한 식자재는 본사에서 화물로 선적된다. 신선도가 필요한, 채소류, 육류, 생선, 쌀등은 현지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쌀은 경기미이지만, 원산지는 미국 캘리포니아이다.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김치는, 양배추로 만든 김치였다.


한 번은, 본사에서 현장 노무자들을 위한 추석 선물이 실린 40피트 컨테어너가 도착한다. 중동 건설 노동자들의 고향의 추억이 깃든 짭조름한 쥐포가, 40피트짜리 컨테이너 하나를 가득 채웠다. 그날 각 숙소마다 간식으로 쥐포가 배포되고, 양 어금니가 아프도록 쥐포를 뜯었다. 주방장도 신이 났다. 쥐포 무침, 쥐포 볶음, 쥐포 튀김, 한국인의 창의적인 상상력을 동원하여 만들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메뉴가 등장한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온 현장이며 숙소에 쥐포냄새다.

"주방장님 제발 쥐포 좀 그만 줘요!"

"쥐포 냄새만 맡아도 토할 것 같아요."


잘 나왔다. 그래 잘 나왔다 어쩔래

명절이나 특별히 기념할만한 날엔 특식이다. 특식은 소갈비나 양갈비 구이, 때로는 삼계탕 같은 음식이 제공된다. 특식이나 맛있는 요리가 제공되는 날엔, 배식창구는 주방 근무자와 노동자 간 긴장 전선이 형성되기도 한다.


“어째 남정네 손이 그라고 쪼끄매서야.”

원주에서 오신 박 반장님 한마디 하신다.

“털긴 뭐 털어~, 그냥 푹 집어가꼬 올려 주지잉~”

대식가인 용접공 장 씨는 거의 주방이 들리도록 투덜거린다. 현장에서 힘들게 일한 노동자를 생각해서 가능한 주방사람들은 대꾸를 하지 않는 편이다.


배식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밥을 제외한 모든 음식을 주방에서 배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현장인원이 많지 않으면, 4명이 함께 먹는 식탁에 반찬을 미리 배식해 놓고 밥과 국만 가져가는 모둠배식 방법을 택하기도 하다. 어느 경우든 반찬이 모라자면 빈 그릇을 배식창구에 가져가면 더 내어준다. 그러나 인기 메뉴인 경우는,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


"아재~ 고기 좀 더 주이소!"

오늘도 대식가 장 씨가 세컨드 라운드 탐색 중이다

"고기가 모자란 당게."

"더 주이소."


그냥 물러날 분위기 아니다

"쪼까~ 안되는디요."

"잘 나왔다!"

끝내 장 씨는 찬그릇을 내동냉이 친다. 참다못한 주방 보조인 잡부 여씨가 하얀 위생복 팔을 걷어 부친다.


"그래 잘 나왔다." "어쩔래!"

사우디 아라비아 건설 현장에서 언쟁의 말미, 꼭 등장하는 대사이다.

"잘 나왔다!"

"그래 어쩔래!"


사막에서 배추를?

사우디 사막 한가운데서 기적의 야채 농장을 일군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있다. (前) 사우디 영농 김용복 대표이다. 그는 60만 평의 사막을 3년여 각고 끝에 사철 싱싱한 채소가 자라는 옥토로 바꾸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간 건 1975년 4월 미국인 용역회사 기능공으로서 이다. 2년 계약기간 완료 후, 한국 기능인력이 몰려오고 식자재 수요를 예측한 그는 채소류 재배를 결정한다.


농업인력 송출허가를 받아 1978년 9월 고향인 전남 강진군 농부 9명을 데려온다. 시작은 삽 5자루와 2만 평의 모래땅이다. 방풍림을 만들고, 한국에서 가져간 채소의 씨앗을 뿌린다. 각고의 노력으로 그해 1979년 4월, K기업에 100만 원 상당의 야채 5백 kg을 첫 출하한다. "그날밤, 우리 10명의 농부는 부둥켜 앉고 엉엉 울었습니다." 1년에 4번 수확하면서 농장은 계속 늘어나 1981년 3월엔 40만 평짜리 제2 농장을 계약한다.


1982년 5월 한국인 38명, 현지인 42명 등 80여 명으로 농장은 규모가 커진다. 1981년 1월 김치공장도 차려 년간 5백 톤의 김치와 깍두기 생산 한다. 그의 성공소식으로 사우디 농수산부장관, 필리핀 농림장과, 호주 부수상 등 외국 귀빈 방문 코스로 소개되기도 한다. 월 3백75달러를 받던 기능공이 3년 만에 펼치는 꿈같은 성공담이다.


나이롱 주방장 입니다

젯다 현장 노무관리 담당으로 일하던 시기다. 저녁 무렵 신규 배치된 주방장이 찾아왔다. 그간 인원이 많지 않아, 발주처 식당을 공동 사용하다가, 한식을 제공하기 위해 파견된 주방장이라 기대가 켰다. 40대 후반인 그는 왠지 주방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인상이다. 얼굴은 쭈굴쭈굴하고, 삐쩍 마른 체구라 제대로 멀 먹고 산 것 같지 않다.


우물쭈물 인사 몇 마디 건네더니 그리고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는 고백을 한다.

"나이롱 주방장입니다."


한식조리사 자격증이 있으나 나이롱이라는 것이다. 당장 내일부터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데 난감한 표정이다. 우선 식재료 구매 및 조달하는 김 씨와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세웠다. 공급 가능한 식자재를 찾아보고, 당장 다음날 점심과 저녁 메뉴를 만들었다.


터질게 터졌다.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에 들뜬 현장 노동자들에게 나이롱 주방장과 공고생¨의 머리로 준비한 음식이 성에 찰리가 없다.

"국이 짜다."

"맛이 없다."

"김치에 붙어있는 고춧가루가 날아다닌다."

"반찬에 돌과 모래가 씹힌다."

"국물에 기름기가 떠 있어 먹을 수가 없다."

"밥은 발로 했냐! 다 설었다."

200여 명의 노동자들의 한마디 한마디에 나이롱 주방장은 거의 죽음에 이르렀다.

¨공고생: D산업이 전국 8개 공업고등학교에 위탁 교육 후 채용한 근로자


한식 명장의 시그니처 메뉴

캠프장을 겸하고 있는 "한 주임"에게 상황을 보고하고, 한국에서 내자재와 함께 선적된 비상용 불고기 양념과 쌈장을 사용하기로 결정을 한다. 점심은 소불고기와 양배추쌈을 메뉴로 올렸다. 나이롱 손맛으로 만든 소불고기가 다소 밋밋하지만 쌈장이 맛을 끌어올린다. 그리고 한국인의 식성은 쌈에 아주 약하다.


삶은 양배추에다 불고기 그리고 밥한술 얹어 쌈장을 더하니 입이 쩍 벌어진다.

“어메, 한식 요리사 자격증 있는 주방장이 해주니께, 요게 참말로 꿀맛이여~”


부식 조달 박 씨의 추천에 따라 다음날 저녁은 소꼬리탕으로 승부를 걸었다. 사우디 현지인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천대를 받는 옥스 테일은 구하기도 쉽다. 젖소인지, 미국산인지, 호주산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국물 뽀얗게 삶어 국물을 내고 미원 좀 확 뿌리고 식탁에 올린다. 여기저기 수군거린다.

“주방장이 한식 명장이라 카던데, 맞나?”


나이롱 주방장이라는 진실을 무덤까지 가져가기로 약속한 부식 담당 김 씨와 공고생은 멀리서 흐뭇한 표정으로 나이롱 주방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럭저럭 일 년 계약기간이 끝날 무렵에는 나이롱 주방님의 시그니처 메뉴는 양배추 쌈과 소불고기 와 꼬리곰탕이었다. 이분, 저분 미식가 현장 노동자들 사이엔, 한식 명장인 "주방장" 귀국하면, 누가 식당을 맡을지 걱정이 많다.




참고 문헌 정보는 머리글에 게시하였습니다.

◧김용복대표 성공담은 해건협이 발간한 "밀물" 1982년 5월호, 열사의 채소농장 편을 참고하였습니다.

◧"나이롱"이라는 표현은 합성 섬유인 "나일론(Nylon)"에서 유래. 비유적 표현으로 “겉보기만 그럴듯하고 실제로는 약하거나 가짜 같은 사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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