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2⌟ 사막의 품에서, 우쓰마니아 캠프
밀물|1985년 8월호|해외건설 역군들에게|이인숙|KBS 프로듀서-
▬천연가스도 있습니다
우쓰마니아|Uthmaniyah|는 사우디아라비아 동부 지역에 위치한 대규모 가스 처리 산업 단지이다.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Saudi Aramco|가 운영하는 핵심 에너지 인프라 중 하나이다. 이 지역은 천연가스 생산과 정제, 액화 처리를 담당하는 전략적 거점이다. D산업은 미국 Fluor사의 하청으로 천연가스액화 공장과 미국 Parsons 사의 하청으로 탈황 플랜트 건설 2개의 프로젝트 건설 작업을 수행하였다.
천연가스 액화는 천연가스를 약 –162°C까지 냉각해 기체를 액체로 만드는 과정을 말한다. 이 액화된 형태를 일반적으로 LNG|Liquefied Natural Gas|라고 부른다. 액화 상태의 가스는 부피가 약 600분의 1로 줄어들어 저장 및 운송에 유리 해진다. 천연가스는 액화 전 탈황 철리를 한다. 천연가스 탈황은 천연가스 내에 포함된 황 화합물을 제거하는 공정으로, 환경 보호와 촉매 보호를 위해서다.
사우디의 총 천연가스 매장량은 세계 8위 정도로 약 6조 입방미터이다. 생산량은 하루 120억 입방미터로 세계 생산량의 약 3%에 지나지 않는다. 전량 사우디아라비아 자체 소비된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중심의 경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천연가스 기반의 LNG 수출과 블루 수소 생산을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블루 수소는 천연가스를 개질해 수소를 생산하고, 이산화탄소를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기술로 포집해 탄소 배출을 줄이는 방식이다.
▬발주처 캠프 "좋아요" 꾸욱
우쓰마니아 캠프는 발주처인 아람코가 직접 운영하는 캠프로, D산업이 임시로 가설한 캠프와는 큰 차이가 있다. 지상으로부터 약 1미터 높이의 H빔 프레임 위에 설치된 이 건물은 반영구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모래바람이 심한 우쓰마니아 지역이지만, 복도 출입문과 숙소문이 이중으로 설치되어 있어 ‘할라스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다.
복도를 따라 양쪽 2열로 배치된 숙소는 4인실이며, 철제 2층 침대가 두 줄로 놓여 있고, 큼지막한 철제 캐비닛도 1인당 하나씩 배정된다. 정기적으로 세탁되는 침구류는 홍콩의 5성급 호텔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1년 내내 세탁 없이 사용하는 라히마 캠프의 모포와 비교하면 수준 차이가 확연하다. 당시의 차이는 마치 ‘아메리칸 스탠더드’와 ‘코리안 스탠더드’의 격차만큼이나 컸다.
무엇보다도 숙소, 샤워장, 화장실이 한 건물 안에 세트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빤스 바람으로 뛰어다닐 일은 없다. 샤워장에는 남성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한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단열 처리가 잘된 외벽 덕분에 실내는 시원하고 쾌적하다.
발주처가 운영하는 식당에서는 인터내셔널 메뉴가 제공된다. 캠프 내에는 다양한 국적의 근로자들이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한식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소고기, 닭고기, 양고기 등 육류와 기름진 음식이 주 메뉴이며, 쌀밥은 항상 제공된다. 아침에는 큼직한 오렌지와 바나나 등 과일을 먹을 수 있고, 가끔은 양배추를 절여 만든 김치도 제공된다.
캠프에는 수영장, 당구장, 공연장, 테니스 코트, 축구장, 탁구장 등이 갖추어져 있다. 수영장은 약 8개의 레인을 갖추고 있으며 길이는 약 30미터로, 바닥은 블루스카이 컬러의 고무로 마감 처리되어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멘트로 만들어진 4면의 테니스 코트는 야간 경기도 가능하다. 남자 테니스의 영원한 라이벌인 비욘 보그와 지미 코너스, 여성 테니스의 대표 선수인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와 크리스 에버트로 상징되는 테니스 열풍이 사우디에도 불어왔다. 퇴근 후 테니스 코트를 차지하기 위해 테니스에 진심인 한국, 필리핀, 인도 노동자들은 모두 달려야만 했다.
▬총각마을
공고생¨ 중에도 연세가 있는 분이 계신다. 공고생은 19세 시작해서, 나이가 20대 초반이지만, 용운이 형은 20대 후반이다. 전주공고에는 야간반이 있었다. 형은 중학교를 마치고 여기저기 잡일로 십 대를 보내고, 군 제대 후 25세에 공업고등학교 야간반에 진학한 만학도였다. 작달막한 키, 다부진 눈과 입 그리고 조용함은 그가 헤쳐온 굴곡진 삶을 말하고 있었다. 그가 우쓰마니아 현장 동기 이자 같은 숙소를 쓰는 한방 식구가 되었다.
¨공고생: D산업이 전국 8개 공고에 훈련 위탁 후 채용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기능공
숙소에는 두 분이 더 계신다. 정통 건설 현장 노동자로 숙련된 평택에서 온 배관공 박 씨 형과 울산에서 온 비계공 허 씨 형님이 있었다. 나이는 두 분 다 20대 후반이고 미혼이다. 미혼인 20대 4명이 한방을 쓰는 것이다.
배관공 박 씨 형은 중간키에 좀 게으른 성격이다. 퇴근 후에도 작업복을 입고 잠을 자기 일쑤다. 용운이 형의 핀잔에 마지못해 샤워를 하거나 정리정돈에 신경을 쓴다.
허 씨 형은 경상도 사투리가 심하고, 중간 키에 체격이 좋은 분이다. 말이 없는 용운이 형을 부담스러워하며 늘 깍듯하게 대한다. 말이 많은 허 씨 형은 종종 용운이 형을 "공고생"이라 부르는 실수를 한다. 아차 하는 순간 숙소는 언성이 높아지는 험악한 상황으로 돌변한다. 용운이 형은 ‘공고생’이라는 말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 말은 나이가 어리고 아직 비숙련공으로 취급받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눈만 뜨면 눈이 마주치는 거리였지만, 리히마 캠프와 달리, 휴일이나 퇴근 후에는 대화의 소재가 없었다. 용운이 형의 썰렁한 분위기 속에 섞이지 못한 박 형과 허 형은 당구나 탁구를 치러 나갔고, 용운이 형은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는 편이었다. 삼십여 년 만에 다시 만난 용운이 형은 자신보다 체격이 좋은 형수님과 결혼했고, 농구선수처럼 키가 큰 아들을 두고 있었다. 안양에 거주하며 작은 회사의 관리자로 근무 중이라고 했다.
▬반쪽 기사와 반쪽 감독
우쓰마니아 LNG 플랜트 건설 현장은 대형 건설사업이라, 총괄본부가 있고, 하부 조직으로 10개의 현장 사이트|Site|가 있었다. 공고생은 타 사이트에 비해 작은 규모의 유틸리티 사이트에 배치되었다. 유틸리티 설비란 LNG 공정에 필요한 고압의 산소 나 스팀등을 생산하는 공정이다.
유틸리티 사이트는 현장 사무소와 4개의 작업조로 구성되어 있다. 현장 책임자는 기사급이며, 작업반장이 4개 작업조를 총괄한다. 각 작업조는 조장을 중심으로 4~5명의 조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1조와 2조는 배관공과 용접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3조는 제관공, 4조는 비계공으로 구성된다. 현장 사무소에는 자재 및 공무를 담당하는 2명의 공고생이 배치되어 기사 업무를 보좌한다.
통상적으로 "기사"는 건설사의 정직원이다. 하지만 작은 현장의 경우, 사우디 현지에서 발탁된 반장이나 총반장이 임시직 기사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무늬만 기사인 "반쪽 기사"인 것이다. 유틸리티 사이트의 책임자인 김 기사는 임시직으로, 현장 소장인 고수삼 부장의 대학 친구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개인 사업을 하다 실패한 뒤, 40대 초반에 D산업 건설 현장에 반쪽 기사로 취업하게 되었다.
고*삼 현장 소장의 별명은 고추삼이다. 작은 키에 왜소한 체구이지만 똑 부러지는 현장관리에 고추삼이란 별명이 붙은 것이다. 그는 종종 유틸리티 현장 사무소를 방문한다. 혹시라도 대학 친구가 정직원 기사나 억센 총 반장들에게 하대를 받을까 봐, 힘을 실어주려는 일종의 과시용 방문이다.
김 기사는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고추삼 소장이 친구임을 은근히 내비치며 상황을 모면하곤 한다. 자재 운반용 트레일러나 크레인 등 중장비 지원을 받거나, 긴급 자재를 신청해야 할 순간마다 "반쪽 기사"라는 핸디캡을 현장 소장의 끗발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현장 사무소에는 배관담당 안양 공고생 그리고 제관담당 전주 공고생, 반쪽 기사 이렇게 3명이 상주한다. 사이트마다 지급 운영하는 도요타 0.5톤 픽업이 김기사의 자존심이다. 아쉽게도 숙소는 일반 기능공 숙소를 사용하지만, 도요타 픽업이 있어 정직원 모드로 지낼 수 있다. 시간만 나면 닦고 조이고 기름칠한 픽업을 몰고 이곳저곳 현장을 드라이브한다.
현장 사무소에는 상시 출근하는 한 분이 더 있다. 원청사 감독 John이다. 반쪽짜리 김기사님 만큼이나 중량감이 떨어지는 Supervisor로 알려졌다. 왜소한 체격과 사교성이 떨어지는 성격 때문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사실은 "스코틀랜드" 출신이라서 그렇다. 미국이나 잉글랜드인이 대부분인 원청사 직원 중에서 스코틀랜드는 아웃사이더이다. 그래서 그도 반쪽 감독이라 불린다.
하지만 현장 공정 진척률이나 감독업무에는 열성적이었다. 현장 사무소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미국계 그리고 잉글랜드계 감독과 달리 그는 현장 사무소에 매일 출근한다. 그는 좋은 사무실을 놔두고, 대부분의 시간을 컨테이너 사무실 보조 의자에서 보낸다. 그리고 십 분 간격으로 묻는다.
“Any problems?”
식초 냄새가 나는 청사진¨ 도면을 새로 뽑아주고, 발주처 자재가 부족하면 직접 Stock Control에 요청한다. 틈틈이 한국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도 한다. 휴가 차 스코틀랜드를 다녀온 뒤, 사이트 사무소 직원 모두에게 준비한 선물이 인상적이었다. “Scotland to Korea”라는 문구가 디자인된 하얀색 티셔츠였다. 왜 England가 아니라 Scotland냐는 질문에 그는 빙긋이 웃기만 했다.
¨청사진: 원도면을 반투명 용지에 그린 뒤, 푸른색 배경에 흰 선으로 인화하는 도면 복사 기술
▬반쪽의 행복
친구인 고추삼 소장이 나타나면 안절부절 두서가 없지만, 황군아~ 김 군아~ 유머스럽고 부드러운 반쪽 김기사님 덕분에, 소탈하고 친절한 반쪽 감독 Mr. John 덕에 그리고 반쪽 공고생 용운이 형 덕에 우쓰마니아에서 1년은 참기름만큼이나 고소했다.
"김기사님~고백할 게 있어요."
"사실은 김기사님의 자존심~ 도요타 픽업 백밀러를 제가 해 먹었어요."
혹시라도 지금도 지구상에 계신다면 서면으로 용서를 구할게요!■
◧참고 문헌 정보는 머리글에 게시하였습니다.
◧현장 조직이나 직급은 D산업의 중동 오일 플랜트를 중심으로 서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