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편지”

시즌 ⌜2⌟ 사막의 품에서, 우쓰마니아 캠프

by 아문선

리가 먹고 있는 이 음식, 옷가지와 거처할 곳도 따지고 보면 당신들 덕분입니다. 그 고마운 마음 이 루 다 표현할 길 없습니다. ⌋

-밀물| 1986년 2월호|해외건설 역군들에게|노향림| 시인-



Bukra |부크라|¨ Inshallah |인샬라|¨

배관공 이 씨는 30대 초반의 새 신랑이다. 신혼 6개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새색시를 두고, 그는 중동 건설현장에 지원한다. 좀 늦은 결혼이 두 사람에게는 각별한 사랑이었나 보다. 일주일이면 1통씩 도착하는 편지는 모두의 부러움의 대상이다. 10개월쯤 지나 한동안 편지가 없었다. 내일이면 오겠지... 그러기를 또 일주일... 이제는 부러움이 아니라 안쓰러움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아내의 편지를 기다릴 수 없어, 노무 담당과 조기 귀국을 상담한다. 노무과에서 본사 가족고충 상담부서에 연락을 취하겠노라는 약속에, 힘없는 걸음으로 침상에 눞는다.


"인샬라|Inshallah|~" 다음날 편지가 도착한다. 익숙한 냄새, 낯익은 글씨, 그는 읽고 또 읽고, 편지를 끌어 앉고 잠을 잔다. 친정어머니의 낙상 사고로, 고향 영천에 내려가 2주 만에 올라온 사연이다. 늦게서야 편지를 쓸 수밖에 없는 미안함이 그에게는 웃음이 되었다.


"각시야 사랑해"

그의 부드러운 속삭임은, 페르시아만을 건너고, 인도양을 건너고, 서해바다를 건너뛰어 급하게, 급하게 새색시 품에 안긴다. 그래서 아랍인은 삶에 느긋함과 긍정의 혜안이 깃든 아랍어 "부크라" 그리고 "인샬라"를 잘 쓰나 보다.

¨부크라:느긋함과 시간 개념의 유연함이 내일이라는 아랍어

¨인샬라: 무슬림의 관용어구로 "신의 뜻대로" 희망적, 긍정적 의미


간절함으로 모두 침묵을 지킨다

편지가 배달되는 저녁시간에는, 간절함으로 모두 침묵을 지킨다. 퇴근 후 중동근로자의 일상은 저녁식사, 샤워 그리고 편지를 기다리는 순서이다. 동장의 "편지요" 하는 외침이 있기까지 샤워를 안 하고 버티는 분도 계신다. 설렁설렁 저녁식사를 마치고, 땀수건을 목에 두른 동장은 노무과에 들려, 동 주민 앞으로 온 편지를 수령한다. 보통은 다섯 통 미만의 편지를 받는 게 일상이지만, 편지를 한 아름 받는 날이면 그도 신이 난다.


"강 씨, 편집니다. 당첨"

"정 씨는 꽝"

큰 목소리로 던지는 "꽈~앙" 소리는 동장님의 미안함이다.


오늘도 도장공 김 씨는 말없이 돌아 눕는다. 모두가 편지를 기다리는 그 시간은 그에게는 허기가 찾아오는 시간이다. 그에게는 누군가 에게 자랑하고 싶은 아들 녀석의 대견함이나, 딸아이의 귀여움, 아내에 대한 애틋함도 박복한 모양이다.


"우리 마누라~ 편지 쓴 것 좀 보소! 어쩜 이렇게 잘쓴당가!"

당첨된 강 씨는 편지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읽고, 어떤 구절은 큰소리로 읽는다. 강 씨의 편지 속에서 뛰쳐나오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 그리고 고향의 냄새는 숙소에 있는 모두에게 공통의 감정이 되어 따뜻한 기쁨으로 번져간다.


아빠, 여보, 우리 딸, 우리 아들

다음은 중동 건설 노동자들에게 배포된 월간지 ⌜밀물⌟에 실린 가족 편지 중 일부로, 그들의 삶과 정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으로 부분 발취 소개한다.


"여보. 먼젓번 당신의 편지에 내가 매월 보내는 땀방울을 하나도 쓰지 않기 위해, 리어카를 사서 장사를 시작했다는 구절을 읽고, 그만 솟구치는 눈물을 억제할 수가 없었다오." "그리고 새삼 더욱 힘껏 노력해서 당신의 고생이 헛되이 지 않도록 해 애 한다는 각오를 단단히 했소."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이*구|D산업 사우디 아브케이 현장-


"아빠 무척 보고 싶어요. 아빠의 그 인상을 보고 싶어요. 정말 잊힐 것 같아 걱정이에요. 아직도 다섯 달 남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겠어요." 아빠 부디 아빠의 건강을 돌보셔요. 아빤 아빠 자신만 의 몸이 아니라 우리 가족을 우해 우리나라를 위해 꼭 있어야 할 분이어요. 오시는 그날까지 부디 건강하여요."

-아빠에게|김*자|K건설 사우디 현장 딸-


"불볕이 쨍쨍 내리쬐고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사막에서 그 찌는 듯한 그 더위에 아랑곳없이 오늘도 근무에 열중하시는 원일이 아빠! 얼마나 눈물겹도록 고생이 많으시겠어요."

"저도 아빠 못지않게 검소하게 생활하며 힘껏 저축하며 또한 어머님께 효도하고 , 원일이도 우량아로 기울 것을 약속합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서 줄입니다. 당신의 사랑하는 아내 구*제 올림"

-남편에게|구*제| J개발 카타르 현장|나*관 부인-


너무도 평범한 "건강하세요", "사랑하는 아내" 이런 말들이 편지 속에 넣어지면, 가족과 집이 그리운 중동건설 노동자들에게는 눈물이 된다.


사랑의 우체부

펜팔을 아시나요? 해외 노동자의 월간지 ⌜밀물⌟의 베스트 오프 베스트 코너는 "사랑의 우체부"라는 이름의 펜팔란이다. 지금의 데이팅 앱과 비슷한 기능을 했지만, 당시 제공되는 정보는 나이, 키, 몸무게, 직업, 취미 정도의 극히 제한적인 수준이었다. 먹고사는 문제가 팍팍했던 시절,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남성의 조건은 단연 안정된 직업과 경제력이다. 큰돈을 벌 수 있었던 중동 파견 노동자도 프리미엄이 붙은 후보군으로 여겨졌던 듯하다. 처음에는 단 한 페이지로 시작했지만, 펜들의 열화와 같은 요청에 힘입어, 개시 6개월 만에 두 페이지로 증면된다.


김*선(여. 25) 현모양처의 꿈을 꾸는 여성입니다. 사랑을 흠뻑 줄 남성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서울 마포구

한*숙 (여. 22) 고졸하이킹양장점162CM49KG도봉구 수유동

박*혜 (여 31) 어쩌다 혼기를 놓쳤어요. 성실하고 온화한 남성분과 결혼 희망, 서울 도봉구 미아동

변*수 (남. 27) 고졸회사원음악감상낚시170CM62KGH건설두바이

신*민 (남 24) 고졸음악감상170CM64KGM건설사우디아라비아

임*예 (여. 19) 중졸가사음악감상독서163CM59KG경북대구시 신천동

손*민(여 22) 중졸가사그림엽서수집165CM47KG전남 광주시 서구

이*화(여. 22) 고졸회사원음악감상독서162CM51KG경남 산청군 상장면


"사랑의 우체부 펜팔란이 생겨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우리 내무실에서 제일 어린 저에게 모든 분들이 권해서 용기를 내어 노크합니다." "안*근, 김*구, 정*하, 박*식 , 한*석 서*주 이상 6명은 같은 숙소의 동료입니다." H건설이라크 바스라김*호. 아예 숙소 인원 전체가 단체로 펜팔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 관심 있는 여성독자는 누구에게 편지를 보낼지 궁금하다. "가나다 순인가요?"


중동 건설 노동자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사랑의 우체부도, 1981년 12월 호를 마지막으로 사망 신고를 했다. 펜팔란을 독점하려는 일부 몰염치한 건설 노동자의 폐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너무 많은 중동 건설 노동자의 구애 편지에 기절한 여인의 절규였을까? 혹은,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고자 했던 ‘사회악 척결’의 일환이었을까? 20만 노동자의 아쉬움 속에 "사랑의 우체부"는 그렇게 떠나버렸다.


두통의 편지

뜻밖의 낯선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처음 받아본 여성의 편지였다. 향기 나는 편지지와 여성스러움이 묻어나는 단정한 필체.... 그때의 떨림과 설렘은 첫사랑처럼 지금도 내 안에 고스란히 숨어 있다. 조심스럽게 뜯어낸 편지봉투 안에는 분홍색 꽃무늬 편지지가 방긋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국세청에 근무하시던 숙부로부터 "불쌍한 조카"라 소개를 받은 사연과 안부 인사, 그리고 그녀의 소소한 일상이 두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녀는 딸 넷 중 장녀였고, 용산의 한 제과업체 노조 사무실에서 일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몇 차례 편지를 주고받은 뒤, 귀국 후 우리는 남영역 굴다리 근처 "고가|古家|"란 카페에서 만났다. 하얀 얼굴에 복스러운 인상, 그리고 예쁜 목소리는 편지 속 그녀와 꼭 닮아 있었다. 병역 특례 규정에 따라 공고생의 휴가는 고작 한 달뿐이었고, 서울과 지방이라는 거리감은 두 번째 만남의 걸림돌이 되었다. 결국 출국과 함께 편지는 뜸해졌고, 바쁜 일상 속에서 한걸음 한걸음, 뒷걸음치던 설렘은 멀어져 갔다.


또 한 통의 편지는 친구 "동일"이의 편지였다. 그가 편지를 보낼 일이 없었기에, 뜻밖의 편지를 받고 긴장되었다. 아버지의 부고였다. 아버지는 대학까지 다녔지만 6.25 난리통에 병역 기피자가 되었고, 그로 인해 취업을 할 수 없었다. 하던 작은 사업도 실패한다. 결국 술에 의지하며 살아갔다. 주량은 점점 늘었고, 가정폭력까지 더해졌다. 어른들의 세계가 낯설고 이해되지 않던 시절, 그때는 종종 "아버지만 없었더라면…"이라는 생각에 잠기곤 했다.


중동반에 지원해 건설 노동자로 떠난 것도, 어쩌면 그런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은 여전히 고단했지만, 3년 차에 모은 돈으로 작은 집을 마련해 가족이 함께 살 수는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편지 한 통으로 전해 진 것이다. 좋아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내 감정선은 애매한 그 중간에서 잠들지 못하는 밤이 되었다.


중동 건설 노동자의 노스탤지어

집을 떠나 오래 머물다 보면, 누구나 향수에 젖는 시기가 찾아온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모태 복귀 심리’라 한다. 중동 건설 현장의 노무자들이 저녁 시간에 쓰는 편지는, 가족과 집을 그리워하는 노스탤지어|Nostelgia|의 표현일 것이다. 손 편지는 느리고 불편한, 오래된 흔적일지도 모른다. 너무도 빨리 마음을 전하고, 너무도 빨리 식어버리는 지금은 초광속 시대지만— 중동 노동자들이 편지를 기다리는 시간, 그리고 편지를 열어보는 설렘은 카톡이나 이메일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따뜻한 사랑과 위로였다.■




참고 문헌 정보는 머리글에 게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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