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등 뒤에 있는 사랑

VOL.2 / 2023. 3월호. 시화로 전하는 시_3

by 숨 빗소리

시화로 전하는 한 편의 시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 강은교 시, <사랑법> 전문





간디는 사회를 병들게 하는 일곱 가지 사회악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지식', '도덕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헌신 없는 신앙'이 그것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들을 그대로 이야기한 것 같습니다. 간디가 살았던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는 세상의 아픈 모습들. 저는 여기에 또 하나를 추가하고 싶습니다. '믿음 없는 사랑', 혹은 '성찰 없는 사랑'.


강은교 시인의 '사랑법'을 읽으며 오랜만에 다시 사랑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너무 가까운 사랑은 가까운 만큼 서로를 잘 볼 수 있지만, 반대로 너무 가까워 쉽게 닿는 손길로 그의 모습과 행동을 마음대로 바꾸려 한 것은 아닌지요. 떠날까 봐, 잠들까 봐 불안해하던 지난 사랑들이 내게도 있었고 당신에게도 있었습니다.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사랑의 진정한 가치는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그의 모습에서가 아니라, 사랑의 대상을 바라보는 고요한 내 안에 있음을. 그 고요를 감싸안는 등 뒤, 무한한 밤하늘에 있음을.




<숨 빗소리_ 3월_시화로 전하는 한 편의 시>

('시화로 전하는 한 편의 시'는 수시로 업데이트됩니다. )



숨 빗소리 - 발행인 겸 편집장. 스쳐가는 장소에서 건져올린 시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세상과 사랑에 대한 생각과 느낌들을 시와 산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용 시 - 강은교 <사랑법>

강은교 시인 - 1968년 사상계로 등단. 현대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시집 <아직 못 만져본 슬픔이 있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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