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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Nov 11. 2023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VOL.10 / 2023. 11월호. 시로 쓴 이야기_1

*  '쉽게 씌어진 시' 시리즈를 브런치북(짧은 소설 같은 긴 시) 발행과 함께 종료하고, 짧은 소설과 기발표시로 구성된 '시로 쓴 이야기'를 새롭게 시작합니다.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1


 오후 늦게 제주에 도착하자마자 방문한 제주 4·3 평화기념관엔 4·3의 역사적 비극을 다룬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90년대 초 다수의 희생자 유해가 발견된 다랑쉬굴은 물론이고, 좁디좁은 공간에 삼십 명 넘는 사람들을 투옥했던 당시 비인권적인 감옥도 재현되어 있었다. 4·3으로 희생된 제주도민들을 특유의 화법으로 스케치한 강요배 화백의 그림을 비롯해, 사건의 잔인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설치미술 작품, 벽면을 빼곡하게 장식한 희생자들의 흑백사진 또한 눈에 띄었다.

 평화기념관 내부를 천천히 관람하고 나서 그는 밖으로 나와 위령탑을 지나 평화공원을 거닐었다. 서늘한 시월의 바람이 공원 나무들의 잎사귀를 조금씩 흔들었다. 그는 잠시 멈춰 서서 제주의 저물어가는 가을하늘을 올려다봤다. 붉게 물든 구름조각들이 천천히 흘러가는 하늘. 그는 생각했다, 왜 지금 이곳에 홀로 와 있는가.

 이곳은 연희와 그가 언젠가 제주도에 함께 여행 온다면 꼭 같이 와보자고 했던 장소였다. 연희 덕분에 그는 제주 4·3을 알게 됐다. 몇 년 전 연희는 자신이 근무하던 교육회사의 한 독서토론 교재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현길언 작가의 ‘그때 나는 열한 살이었다’라는 소설을 재편집한 교재였다. 길지 않은 내용이어서 단숨에 읽을 수 있었는데, 제주도에서 일제강점기 해방을 맞이한 어린이의 눈을 통해 4·3의 역사를 조명한 작품이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재였기에 사건의 실체를 깊이 파악하기는 어려웠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이런 비극이 같은 나라의 제주 섬 안에서 일어났었다는 걸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그가 중고등학교 시절 역사 시간에도 배운 적 없는 현대사의 비극이었다.   

          

 그러나 평화기념관에서 제주 4·3의 상처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도, 평화공원을 걷고 있으면서도, 그는 그때까지 자신을 괴롭히고 있던 그 자신의 슬픔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제주 4·3과는 무관한, 지금 현재 자신의 슬픔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고. 연희와 헤어지고 나서 깊은 절망에 휩싸인 시간들. 오히려 이 장소는 더 독이 된 기분이었다. 자신의 어두운 마음을 더한 슬픔으로 위로받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것은 아니었는지. 어쩐지 이런 내면이 이 섬에 묻힌 많은 사람들에게 용서받기 힘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혼자가 아니라 그녀와 함께 이곳을 방문했어야 했다. 서로에게 깊은 상처만을 준 채 벌써 두 계절이 지나가고 있었다. 처음으로 돌아가 둘이 함께 이 장소를 찾아와야 했었지만, 지금 이곳엔 아무도 없었다. 연희도, 반드시 함께 이곳을 찾아오자고 말하던 환한 표정의 그때의 그도. 관람시간이 모두 끝난 평화기념관 주변으로는, 핏빛으로 물든 시월 저녁 하늘만이 어둠을 기다리며 곁에서 천천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다.



 2


 호텔 숙소에 도착하고 보니 창밖엔 이미 얕은 어둠이 내려앉은 후였다. 유리창 너머로 자그마한 광장이 내려다보이고 오른편엔 바다로 이어지는 긴 방파제가 있었다. 그는 밤바다의 서늘한 공기를 느껴보고 싶었으나, 평화기념관을 관람하며 제법 걸은 탓인지 살짝 피로가 밀려왔다. 외투만 벗어둔 채 그대로 침대 위에 누워 보았다. 저녁식사 전이었지만 조금의 허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잠깐만 잘까? 그러나 십여 분을 뒤척여도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몸은 분명 피곤함을 느끼는데, 정신은 계속 캄캄한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는 누운 채로 핸드폰을 켰다. 스팸 메시지 알람을 제외하고는 오래도록 기능을 상실한 듯한 고요한 핸드폰. 유튜브 앱에 들어가 검색창에 '제주 4·3'을 쳐보았다. 십분 안팎 분량으로 업로드된 제주 4·3 관련 영상들이 화면에 나타났다. 그중 ‘제주 할머니가 물고기를 드시지 않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손수건을 든 채 울고 있는 한 할머니의 썸네일이 가장 눈에 띄었다. 할머니 옆으로는 젊은 여성의 작은 이미지가 한 프레임 안에 나란히 있었는데, 썸네일 이미지가 선명하지 않은 탓도 있었겠지만 왠지 그 분위기가 연희와 비슷해 보였다. 분명 제주 4·3과 관련된 영상 자료였다. 그는 그대로 누워 일어설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무심코 영상을 재생했다.   


 그것은 2018년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 영상이었다. 다수의 참석자들이 행사 무대 맞은편에 앉아 있고, 무대 위에선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검은 양장 차림의 여성이 조심스레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제주에 거주하는 대학생이라는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자, 예상보다 그녀가 연희와 너무 닮아서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물론 그녀가 자신의 신분과 이름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확실히 연희가 아님을 확인했지만, 마치 쌍둥이 자매인 것은 아닌지 의심이 될 정도로 비슷한 외모와 분위기였다.

 무대 위 그녀는 제주 4·3을 겪은 자신의 할머니를 향해 직접 쓴 글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팔십이 가까워 보이는 그녀의 할머니는 검은색 저고리 차림으로 무대 가까운 자리에 앉아 손녀의 낭독을 담담히 듣고 있었다.  

 “저는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우리 고우신 할머니가 글을 쓸 줄 모르신다는 것, 할머니의 머리에 움푹 파인 상처가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손녀의 글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우리 할머니는 제주 4·3 후유 장애인이십니다.”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제주 4·3을 겪은 할머니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여덟 살 때 그 사건을 직접 겪었다는 것,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셨고, 열 살 때까지는 신발도 구하지 못해 늘 맨발이셨다는 것, 늘 곱고 밝기만 한 할머니에게 그런 아픈 상처가 있다는 것을 몇 년 전에야 알게 됐다는 것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지금까지도 물고기를 못 드십니다."

 그 대목에 이르자 무대 맞은편 그녀의 할머니는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글을 읽는 그녀 또한 천천히 울먹이기 시작했다.

 "할머니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들이 모두 그때 강제로 바다에 던져졌고, 물고기들에게 모두 뜯겨 먹혔을 거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때 우리 할머니는 겨우 여덟 살이셨습니다. "

 낭독을 듣던 할머니는 죽은 가족들이 모두 기억에서 되살아났는지, 그때의 아픈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았는지, 거의 통곡하다시피 울음을 터트렸다. 손녀의 목소리가 점점 더 자세히 그때의 비극을 들려줄 때마다, 추념식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의 눈시울도 할머니를 따라 모두 붉어지는 듯 보였다.

 할머니는 바닷가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볼 때마다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가 자신을 안아주기 위해 달려오고 있다는 착각을 자주 했었다고,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바닷물에 들어갈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손녀에게 전해주었다고 한다.


 낭독이 끝남과 동시에 추념식 영상은 마무리되었다. 그는 핸드폰 화면을 끄고 천천히 침대를 빠져나와 바다가 보이는 창가로 걸어갔다. 연희 또래의 그 여자. 영상의 내용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그와 다투던 연희의 울먹이는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연희가 이 영상을 함께 보았다면 그에게 어떤 말을 해 주었을까. 창밖으론 이미 짙은 어둠이 내려 파도에 부딪치는 잿빛 테트라포드만 눈에 들어올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저너머 형체 없는 무한한 어둠이 바다라는 사실은 바다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비록 어둠이 내린 밤이지만 저 방파제를 따라 걸어간다면 지금껏 바라보지 못한 바다의 또 다른 무언가를 바라볼 수 있을까. 캄캄한 풍경과 그의 눈동자 사이를 가로막고 선 유리창으로 눈이 퉁퉁 부은 얼굴 하나가 보였다. 언제부터 눈물을 흘리고 있었던가. 침대에 누운 채로 영상을 보다가 조금씩 침대 시트에 눈물방울이 떨어지고 있음을 알았지만, 어느 시점에서, 어떤 이유에서 울고 있었는지 그는 쉽게 알 수가 없었다.

 할머니의 통곡이 너무 가슴 아파서 울었는가, 비극을 위로하는 손녀의 마음에 감동을 받았는가. 아니다. 아니다. 잠잠히 말라있던 그의 물결은 제주도의 슬픈 사연과, 어쩔 수 없이 떠오른 연희의 얼굴, 그리고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이 모든 것들을 함께 출렁이게 한 어떤 끈으로부터 시작됐다. 캄캄한 파도 곁 한데 묶여 있는, 저 어둠 너머 서로의 흔들림을 말없이 바라보는 텅 빈 선박들과도 같이. 모두가 떠난 밤 아무도 모르게 또 새롭게 쓰이고 지워지는 모래와 파도, 그들이 쓰는 낯선 문장들의 시작과 끝처럼.


  

 

 3


 로비가 있는 일층 가장자리에 호텔 식당이 있었고, 식당 입구에서는 투숙객들을 위한 저렴한 와인을 식사와 별도로 판매하고 있었다. 따로 끼니를 챙겨 먹을 생각도, 함께 식사를 할 일행도 없었으므로 그는 저녁 대신 방에서 간단한 안주를 곁들여 와인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간단히 와인 값을 지불하고 근처 편의점에서 치즈 스틱 몇 개를 사들고 방으로 돌아온 그는, 유리잔 하나를 챙겨 침대 옆 테이블 위에 놓았다. 술을 마시기 전 닫혀있던 창을 조금 열어보았는데, 찬 공기와 더불어 익숙한 바다냄새가 밀려왔다. 그리고 들려오는 어떤 알 수 없는 소리들. 자동차 소리, 밤거리에 나와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의 말소리, 들릴 듯 말 듯 어쩌면 그의 상상이 만들어낸 어두운 바다의 아련한 속삭임 같은 것들도.  

 와인오프너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것을 그는 뒤늦게 깨달았다. 로비층에서 와인을 판매하는 것을 보면 각 방마다 오프너 하나씩은 어딘가 구비돼 있는 것은 아닐까. 그는 객실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스탠드 조명이 놓인 작은 탁의 서랍도 열어보았다. 오프너는 보이지 않고 웬 얇은 책 한 권이 들어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짙은 녹색 표지를 두른 시집이었다. 시집 표지 안쪽에는 작가의 친필 서명이 있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너와 나를 위해_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읽어줄, 이름 모를 나그네를 위해_ 2023년 10월 29일'이라는, 작가가 직접 쓴 듯한 메모와 더불어.

 


 4


 시간이 다소 늦어서인지 방파제 옆 횟집거리는 사람들 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와인 한 병을 모두 마시고 바람을 쐬러 호텔 밖으로 나온 그는 바다로 이어지는 서부두길을 따라 걸어갔다. 오른편엔 각종 횟집들이 늘어서 있고, 왼편으론 테트라포드들과 좁다란 방파제길이 나란히 이어져있었다. 찬 바닷바람이 불어왔지만, 술을 제법 마셔서인지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서부두길 끝에는 갈림길이 있었는데, 오른쪽은 각종 선박들이 묶여 있는 부두로 가는 길이었고, 왼쪽은 방파제길이 더 한참 바다로 이어지는 곳이었다.

 그는 아무도 없는 방파제길을 따라 마치 바다 위를 가르듯 천천히 더 나아가기로 했다. 가까이서 바닷물 소리가 들려오니 기분이 상쾌했다. 앞이 다소 캄캄했지만 어두운 물결 가운데로 이어지는 회색빛 콘크리트길의 윤곽만은 선명히 구별할 수 있었다.

 방파제 위를 걸어갈수록 왠지 이 길이 바다 위에 누워있는 커다란 비(碑)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 들렀던 제주 4·3 평화기념관에서 많은 것을 보았지만,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평화기념관 초입에 놓여있던 '백비(白碑)'였다.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채 누워있는 커다란 비석은 그 모습 그대로 제주 4·3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2003년에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되었지만 그 성격 규정은 미룬 채 여전히 4·3은 ‘이름 짓지 못한 역사’로 남아 있다고 했다. 국가의 탄압인지, 민중의 항쟁인지, 무고한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학살인지, 저마다의 입장 차이로 인해 아직 채 이름을 갖지 못한, 일어서지 못한 슬픈 비석.

 그는 백비처럼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회색빛 바닷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 자신이 하나의 이름이 되어, 낯선 단어가 되어, 천천히 다시 쓰이기 시작하는 문장이 되어. 새로운 시간들은 조금씩 다시 쓰일 수 있을까. 지금 그가 딛고 있는 발자국의 문장들은 어떤 길을 향해 닿아 있는지. 그때, 캄캄한 방파제의 막다른 끝에서 어떤 사람 형체 하나가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는 늦은 밤, 바다와 가장 가깝고 깊이 만나는 지점에 서 있는 저 자는 누구일까. 취객인지 사람인지 귀신인지. 그는 다소 겁이 나기도 했다.

 술에 취해 헛것을 보았나 싶어서 두 눈을 잠시 비벼보았다. 여전히 그 형체는 자신의 가벼운 치맛자락을 바닷바람에 흩날리며 방파제 끝에 서 있었다. 바다 위에 누워있던 기다란 백비의 마침표처럼 한 여자가 우뚝 멈춰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가 사변을 감싸고 있는 어둠 속에서 그는 천천히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여자는 저녁에 핸드폰 영상으로 보았던,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 속 그 여자였다. 연희와 꼭 닮았다고 생각했던, 할머니의 상처를 공감하고 함께 눈물 흘리며 낭독을 하던 제주도 여인. 그는 더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 "이 시간에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그러나 여자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려 제주의 캄캄한 밤바다만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러자 그 옆모습은 곧 자신이 사랑했던, 그러나 지금은 만날 수 없는 그리운 연희의 옆얼굴로 바뀌었다. 연희가 왜 지금 여기에? 그는 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연희야.” 그가 불렀다. 여자가 다시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다시 연희에서, 추념식의 사연 속 4·3을 겪었던 할머니의 얼굴로 바뀌었다. 할머니는 찬 바닷바람 속에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를 바라보며 말없이 미소짓고 있었다.   



 5


 여전히 취기가 가시지 않은 그였지만, 숙소로 돌아온 그는 곧장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연희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무슨 내용을 쓰는지도 모른 채 마음이 불러주는 대로, 아니 그 무엇도 의식하지 않은 채 손이 가는 대로, 그러나 새로운, 낯설기만 한 문장들을 연희를 향해 써나갔다. 이 편지가 연희에게 닿을지, 그대로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이 섬에 묻혀 유해처럼 잠들어갈지, 그런 것들은 지금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흰 노트에 새로운 마음들을 써 나간다는 것, 그것이 중요했다. 파도처럼 문장은 쓰이고 지워지고, 그러나 모든 것이 전부 사라진 흰모래밭 위에 다시 새로운 물결이 밀려온다. 연희에게 하는 말인지, 자기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아니면 처음 방문한 이 낯설기만 한 섬 제주와, 이곳에서 희생당한, 혹은 그들을 희생시킨 그 모든 이에게 들려주는 문장인지도 모르는 출렁이는 물결들을.

 마지막으로 그는 방파제로 나가기 전 읽었던 서랍 속 시집에서, 페이지 한 귀퉁이를 접어두었던 시 한 편을 필사해 추신으로 남겼다. 바다의 신이 있다면 이런 그에게 어떤 말을 해주었을까. 아까 그가 방파제에서 만난 여인은 파도가 만든 신기루였을까, 바다의 귀신이었을까, 섬을 지키는 붉은 등대, 혹은 결코 이곳을 떠나지 않는 지난 누군가의 어머니였을까.

 여전히 이름 짓지 못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그래서 여전히 살아가야 할 까닭들이 섬 곳곳에서, 그가 잃어버렸던 마음의 부락 구석구석에서 태어났다. 걸어가야 할 길, 눈에 보이는 끝이 결코 끝이 아니라는 것. 그것을 알려주는 섬의 기나긴 외침이, 어두운 방파제 너머로 끝없이, 끝없이 물결치고 있었다.




<추신>


신의 물방울*


아무런 연락도 없이 지내다

너무 오랜만에

마주 앉았지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서로는

바로 이 탁자 위,

깊고 눈부신

한 병의 포도주를 나눠 마셨는데


지금은 각자의 병에 스스로의 영혼만을 가득 채운 채

검은 포도알 같은 눈동자를

어디로 둘지 모르는

어색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우리에겐 참을 수 없는

서로의 단 하나가 있었다,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을 지탱한 고유한 향기임을 망각한 채

맹렬히 술잔을 깨부수었었지


신께서는 뒤늦게

우리의 영혼을 기울여

테이블 위 서로의 물방울을 쏟게 하셨다


한참을

흔들리며 흔들리며

우리는 비로소 텅 빈 병


너와 나의 병 속으로

서로의 물결이 천천히 바뀌어

흘러 들어갔다




* 시집 <누군가를 위한 문장>에서




허민- 시 쓰는 사람. 시집 <누군가를 위한 문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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