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주차에 발행되는 이창호 작가의 글은 (작가의) 새로운 소설 구상 시간이 필요하여 새해에 다시 돌아올 예정입니다.
시화로 전하는 한 편의 시
내 가슴은 파도 아래에 잠겨 있고
내 눈은 파도 위에서 당신을 바라보고 있고
당신과 마주 앉은 이 긴 테이블
이처럼 큼직하고 깊고 출렁이는 바다의 내부, 바다의 만리
우리는 서로를 건너편 끝에 앉혀놓고 테이블 위에 많은 것을 올려놓지
주름 잡힌 푸른 치마와 흰 셔츠, 지구본, 항로와 갈매기, 물보라, 차가운 걱정과 부풀려진 돛, 외로운 저녁별을
- 문태준 시 '수평선' 전문
지난 주말엔 오랜 연인과 아주 오랜만(?)에 사소한 말다툼을 했습니다. 저녁의 수평선 같은 긴 테이블 위에 마주 앉아서.
서로의 대화 속에서 간극이 생길 때, 우리는 그 순간만큼은 아득한 수평선 너머의 존재.
우리는 서로를 건너편 끝에 앉혀놓고, 테이블 위 먹다 만 포도주, 출렁이는 잔, 흘러내린 물방울, 서로만의 생각들을 잔뜩 올려놓은 채
그렇게 파도 위에서 서로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지요.
잠시 거센 파도가 일렁일 뻔했지만, 그러나 우리를 다시 가깝게 이끌었던 건
파도 아래 잠겨 보이지 않았던, 서로의 무한한 가슴들. 큼직하고 깊고 출렁이는 우리의 내부, 당신의 만리.
눈앞에 보이는 파도가 아니라, 그 아래 잠겨 서로를 향해 갈망하던
새들의 발장구와 피톨 같은 정어리떼의 두근거림을 잊지 않아서.
<숨 빗소리_ 11월_시화로 전하는 한 편의 시>
숨 빗소리 - 발행인 겸 편집장. 스쳐가는 장소에서 건져 올린 시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세상과 사랑에 대한 생각과 느낌들을 시와 산문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용 시집 - 문태준 <아침은 생각한다> 창비, 2022
문태준 시인 - 1994년 <문예중앙> 등단.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등 수상. 시집 <맨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