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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Mar 16. 2024

슬픔의 완성

VOL.14 / 2024. 3월호. 시로 쓴 이야기_5

슬픔의 완성         



 나는 6년 전 군대에서 그를 만났다. 그렇다고 그와 내가 군대 동기라거나 선후임 관계라는 건 아니다. 나는 정말 보기 드문 사건으로 그를 처음 알게 됐고, 작년 봄 어느 유명 유튜버의 소개로 그를 다시 만났다. 그 후론 문학에 몸 담고 있다는 공통점으로 친분을 쌓아 지금껏 그 인연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두해 전 어느 지방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나와 동갑내기로, 황해도 연백군에서부터 강화도 위쪽 바다까지 맨몸으로 무려 6시간을 헤엄쳐서 귀순한 북한 출신 청년이었다. 6년 전 그가 강화 교동도 바닷가 초소에 처음 포착됐을 때, 우리 군은 그야말로 초비상이었다. 나는 그때 전역을 불과 몇 개월 앞둔 해병대 병장이었다. 거리가 6km쯤 되는 바다 저편에서 한 사람이 건너오고 있음을 초병이 발견한 이후, 초소에서는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그를 계속 예의주시했다. 중간쯤에 이르러 물이 다소 빠진 뻘에 이르자, 남쪽 초소를 향해 죽을힘을 다해 뛰어오는 그를 우리는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부터 해병대에서도 그를 향해 방송을 했는데, 후에 들어보니 너무 거리가 멀어서 무슨 내용인지 그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입고 있던 허름한 러닝을 벗어 한 손에 들고 공중을 항해 마구 흔들며 뛰어오고 있었다. 귀순 의사를 표시한 것이리라. 초소 앞에는 다시 바닷물이 밀려오고 있었다. 그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군에서는 그를 향해 탐조등을 비췄다.

 “남쪽에서 막 불을 비추니까, 혹시 쏠까 봐, 나도 살려고 내려온 거 아닙니까. 그때부터 옷을 벗어 들고 막 흔든 거죠. 항복의 표시처럼. 간첩 아니라고. 민간인이라고.”

 “형석 씨 때문에 전역 연기되는 줄 알았어요. 병장 때까지도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일이라.”

 “미안하게 됐네요.”

 는 북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오래됐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 이유 때문에 남쪽으로 내려온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적에도 까닭 모를 슬픔에 자주 휩싸였다고. 뜻 모를 그리움과 아픔이, 한참 빠졌다가 다시 밀려드는 바닷물처럼 어릴 적부터 반복됐다고 한다. 태생부터 지닌 슬픔의 유전자가 아닐까, 하고 그는 말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마을에서 가장 높은 산에 올라 남쪽을 자주 바라보았다. 남쪽이 그리워서가 아니라, 갈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하니까, 가서는 안 되는 곳이라고 하니까, 왠지 더 자주 바라보게 되었다고.

 그러던 중 강화도 본섬과 교동도를 잇는 교동대교 건설 현장을 멀리서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게 되었다. 인부는 몇 명 보이지도 않았는데, 가장자리부터 조금씩 세워지던 다리가 결국 얼마 안 가 완성되고, 곧 차들이 그 대교를 지나다니는 것을 보았다. 바로 그때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갈 수 없는 곳이 아니라, 가서는 안 되는 곳이 아니라, 가고자 하지 않는 자신의 마음이 세계를 그렇게 규정짓는 것뿐이라고. 그때부터 그는 불가능해 보이는 경계를 지나 자신의 그리움과 슬픔의 까닭을 찾고 싶었다.

 “민 씨는 슬픔의 완성이 뭐라고 생각해요? 슬픔의 원인을 찾는 것? 그 슬픔을 없애는 것?”

 “글쎄, 슬픔에도 완성이랄 게 있나요?”

 북한을 탈출하기로 마음먹고 준비기간은 석 달 정도 걸렸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결코 긴 시간이 아니지만, 여러 가지 치밀한 과정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고. 교대 근무하는 북한 군인들과 친분을 쌓아 감시가 덜한 시간을 알아내고, 물 때와 달이 뜨지 않는 시간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시점도 찾아내야 했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적절한 타이밍이 와서 바닷물에 처음 발을 담갔을 때, 그는 더 이상 물속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바다가 무서운 건 아니었다. 북에 남겨질 누나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자신이 거의 업어 키우다 시피한 귀여운 조카가 눈에 밟혔다. 남쪽으로 건너가면 언제 다시 그들을 만날 수 있을까. 영영 만나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렇게 망설이다가 그의 최초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몇 주 뒤에 결국 그는 강화도의 북쪽 바다를 맨몸으로 건너 대한민국 땅에 도착했다. 모든 힘이 빠져 결국 바다에서 죽는구나 생각했을 때, 고속정을 타고 등장한 대한민국 해병대가 바다 위에서 손을 내밀며 “잘 오셨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언제라도 총탄이 날아와 자신을 덮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긴장감에서 드디어 해방됐다고 한다.    

 “그래서 남쪽에 오니 슬픔과 그리움이 치유됐어요?”

 “웬 걸요. 그래도 마음을 옥죄어오던 답답함은 많이 사라졌죠. 적응하느라 시간은 걸렸지만, 아무래도 여긴 자유가 있으니까.”

 “근데 여전히 슬프다?”

 “그 이유가 도대체 뭘까요. 남쪽에 오니 이제 북쪽이 다시 갈 수 없는 땅이 되었죠. 그리고 북쪽에는 우리 누나들과 조카들이 있어요. 근데 잘 모르겠어요. 나는 지금 두고 온 가족들 때문에 슬프고 그리운 게 맞는 건지. 북쪽에 있을 땐, 대한민국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도 슬프고 그리워했잖아요.”

 이제 그는 슬픔의 원인을 찾으려고도, 또 무작정 없애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차가운 바닷물 같은 아련함과 고통이 달빛을 따라 마음에 천천히 밀려올 때, 고향 마을의 산 위에서 갈 수 없는 너머를 바라볼 때처럼 가만히 지켜본다고. 선명해지는 그 마음을 만지며, 그래, 또 왔구나, 그리움아. 잘 지냈니, 슬픔아. 그렇게 속엣말을 건네기도 하면서.

 이제는 그 이뤄질 수 없는 마음, 완성되지 않는 슬픔이 자신의 길을 만든다고 믿는단다. 그래서 지금처럼 시도 쓰게 됐고, 문단에 들어와 다양한 사람들도 만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고. 슬픔을 바라보지만 멈춰있지는 않을 거라고.

 끝내 완결되지 않을 그 선천성 슬픔의 힘으로 다른 사람들의 슬픔을 함께 바라보고 싶다고 했다. 그런 마음들이 조금씩, 조금씩 불가능한 것들을 바꾸는 힘이 됨을 생각한다고. 그런 문장을 쓰고 싶다고. 가능해 보이지 않던 섬과 섬 사이에 거대한 다리가 만들어지듯이. 이전의 그리움을 떠나 또 다른 그리움을 찾아 바다를 건넌 한 사내의 인생처럼. 그러면서 수줍게 어제 쓴 짧은 시 한 편을 보여주었다. 강화도 북녘에서 떠나 온 고향 마을을 아득히 다시 건너다보면서. 그러나 자신이 슬퍼하고 그리워한 건 남쪽도 아니고 북쪽도 아닌, 어쩌면 자기 자신. 평생이 지나도 완성되지 않을 것 같은 하나의 삶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저녁의 바람*     



 뒷산 누군가 어린 염소를 나무에 묶어 놓았나

 매애― 매애― 계속 처량하게

 울어보지만 숲에 가려져

 어디서 울고 있는지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노을의 둥근 나이테는

 붉은 나무줄기를 잘라놓은 그루터기처럼

 피 흘리고     


 그곳에 매여 있는

 그 잔잔한 떨림의 진원지가 어디인지     


 짙어오는 밤처럼 알 수가 없었다   

  

 마음속 찾을 수 없는 곳

 한 마리 짐승이 쓸쓸히 외롭고

 슬피 울듯이




* 시집 <누군가를 위한 문장>에서



<숨 빗소리_ 시로 쓴 이야기> _ 시로 쓴 이야기와 시는 4-5주 주기로 계속 업데이트됩니다.  


허민- 시 쓰는 사람. 시집 <누군가를 위한 문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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