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를 향한 여정>은 호주에 정착한 한국 청년이 자신의 오랜 목표인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기 위한 다양한 준비과정, 실제 순례길 여행기를 매월 짧은 이야기 속에 담아 연재합니다.
56킬로미터 울트라마라톤의 출발선 앞에서
결전의 날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구나 알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몇 년 동안 꾸준히 자신을 담금질해 온 어른들도 많았습니다. 언뜻 보면 연로해 보이는 어른들(어르신들?)이 자신만의 길을 꾸준히 나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리스펙’을 되뇌었습니다. 겨우 6개월 남짓되는 저의 준비 기간이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느껴졌지만, 지난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준비해 왔다는 사실에는 성공이든 실패든후회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화장실을 여러 번 들르고, 자외선차단제도 충분히 바르고, 옷가지나 짐을 정리하는 등 이런저런 준비를 하다 보니 곧 마라톤을 시작한다는 확성기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출발선으로 걸어가는 마음은 시험장에 들어가는 수험생의 마음과 같습니다. 부상 없이 안전하게 마무리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친구와 함께 드디어 이 순간이 찾아왔다고, 꼭 성공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안내음성에 따라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 출발선 앞으로 모였습니다. 이 출발선에 서기까지의 지난 시간들이 생각나서 가슴이 벅차면서 두근두근했습니다. 주변 사람들과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며, 드디어 시작음과 함께 우리는 일제히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시작부터 뒤쳐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의도된 것입니다. 느린 페이스로 포기하지 않고 완주를 목표로, 우리가 연습해 온 것들을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점점 체력이 떨어지고, 호주의 ‘서머타임’ 시스템으로 인해 해가 얼마나 밝은지 천천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간에 멈추고 싶은 순간이나 결승선에 닿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이 계속되었습니다. 진통제를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증이 더 심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뒤쳐지면서 이미 하프 울트라마라톤을 뛰는 사람들(56km의 중간 지점에서 출발)이 저를 앞질러갔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만두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산티아고 여정을 위한 준비과정도 힘이 드는 순간, 중도에 바로 포기할 것만 같은 두려움들이 오히려 반대로 이를 더 악물게 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48km 지점에서 가장 가파른 Black Hill을 오를 때는 무릎을 펼 수 없어 등산 스틱에 의지하며 기어 올라갔습니다. 중턱에서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지친 몸을 쉬는 사람들, 혹은 컨디션 난조로 속을 게워내는 사람들, 우는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을 지나쳤습니다. 다리를 절뚝이는 제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정상에 오르고 나서야 '아, 내가 해내겠구나'생각했습니다. 결승선에 닿을 수 있다는 희망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종착점이 저 멀리 내려다 보입니다.
줄곧 하늘 가까이 달리면서 벌겋게 익은 몸으로 종착점에 다다를 때, 늘어진 그늘이 반가웠습니다. 마중 나온 여자친구에게 고맙고 미안해서인지, 아니면 지난 시간들이 떠올라서인지 울컥 눈물을 쏟을 뻔했습니다. 자신 없었지만, 그냥 계속해서 나아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마라톤을 잘 마무리해서 다행이었습니다. 끝나고 바로 일을 하는 내내 그리고 이후에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통증으로 고생했습니다. 절뚝거리면서 친구를 다시 만나서 서로 바보같이 웃었습니다. 어떻게든 한번 해냈는데,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곧 있을 진짜 산티아고 여정을 통해서도 무엇을 얻게 될지(알 수 없지만) 너무 기대가 됩니다.
드디어 제가 정말로 산티아고로 향합니다!! 비행기 티켓도 벌써 구매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산티아고 여정 ‘진짜 진짜’ 준비 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열한 번째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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