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시골 마을은 멀리서 바라보면 평온해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그를 생각하면 인간을 하나의 잣대로 규정한다는 것이 부질없는 것이란 생각이 지금도 든다.
동네마다 한 명씩 꼭 그런 사람이 있었다. 동네 바보형.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누구도 미워하지는 않는. 아니 그는 없어서는 안 될 마을의 감초 같은 역할을 담당한다. 일요일 아침 일찍 시작되는 동네 마을 청소 시간이면 제일 먼저 나와 있었던 사람. 학교 운동회날에는 계주로 달리는 아이보다 응원하면서 달리는 그가 더 빨라서 온 동네 사람들을 한바탕 크게 웃게 했던 사람. 그의 이름은 ‘상돈’이었다. 나이는 스물다섯쯤? 덩치도 좋고 인물 또한 나쁘지 않았지만, 그가 여덟아홉 살 아이의 지능이라는 것은 10초만 대화를 나눠 본다면 누구든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동네 꼬맹이 녀석들은 자기보다 적어도 10살에서 15살이 많은 그에게 형이라거나 삼촌이라는 호칭으로 부르는 대신 상돈~이라고 이름을 불렀고, 뭔가 일이 잘되지 않거나, 꼼꼼하지 못하게 일을 처리하면 ‘상돈이 동생 해라’ 하면서 핀잔을 주었다.
어느 날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놀다가 엄마가 사준 머리핀을 잃어버렸다. 근처 모든 곳을 찾아보았지만 허탕을 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초인종이 울려서 나가보니 상돈이 서 있었다. 말을 심하게 더듬는 특유의 말투로 “피... 핀 찾... 찾았다. 모... 모래 바... 밭에서” 그러면서 내가 고맙다는 말을 채 하기도 전에 그는 잃어버렸던 머리핀을 내 손에 올려두고 도망치듯 가 버렸다. 나는 그런 그가 삼촌처럼 푸근하고 좋았다.
아이들은 그를 놀려 먹으면서도 놀이에 끼워주곤 했다. 그러면서도 함부로 바닥까지는 대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그의 성정이 유순한 탓도 있었겠지만 알고 보면 그가 동네 제일 유지인 오사장댁 장남이었던 이유가 가장 컸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던 연립주택도 오사장이 지었으며, 동네의 대소사에 영향력을 끼치는 그는 지역의 알부자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 집의 장남이 동네 바보형이라니... 어릴 때 녹용을 넣은 보약을 너무 많이 먹여서 그 부작용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진실은 그가 바보라는 것, 그 하나뿐이었다. 처음에 나는 상돈에 대한 아이들의 행동이 버릇없다고 여겨 불편하게 느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 역시 그를 친구처럼 편하게 대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런 상돈이에게 일생일대의 중대한 사건이 생겼는데, 그건 그가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멀쩡한 사람도 결혼하기 쉽지 않은 마당에 누가 봐도 바보인 상돈이와 결혼을 할 여자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동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이기만 하면 상돈이 결혼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하더라고 그에게 쉽게 시집 올 여자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꼭 손주라도 안아보고 싶었던 오사장은 아는 사람을 수소문해서 상돈이보다는 상태가 괜찮지만 그래도 완전히 정상이라고 볼 수는 없는 처자를 찾아 많은 돈을 주고 며느리로 데려왔다고 했다. 상돈이의 결혼 날짜는 그렇게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결혼식은 식장에서 올리지만 마을 잔치는 자기 집 앞마당에서 피로연처럼 할 거라며 상돈이 엄마는 동네 여자들을 만날 때마다 꼭 오라고 당부를 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축하인사를 건네면서도 ‘바보도 돈 있으면 저렇게 떵떵거리게 장가보낼 수 있으니 돈이 좋기는 좋다’면서 뒷말을 했다. 동네 아저씨들은 상돈이를 불러다 놓고 첫날밤 치르는 법을 가르쳐 준다며 짓꿎은 농지거리들을 했다. 아저씨들은 “너 첫날밤에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어? 잘못하면 마누라 첫날밤에 도망간다. 자세히 가르쳐 줄 테니이리 와 봐라.” 하면서 싫다는 상돈이를 방으로 억지로 끌고 들어갔다. 잠시 후 뭐에 놀랐는지 벼락 맞은 개처럼 튀어나가는 상돈이의 모습에 아저씨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는방 안에서 그칠 줄을 몰랐다.
막상 결혼식 당일 집에서 열린 마을 잔치에서 상돈이 부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결혼식 중 사람들 앞에서 뭔가 망신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 잔치 자리에는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상돈이만 그 바보스런 발랄함을 주체 못 해서 눈 오는 날 강아지 마냥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있을 뿐이었다. 그 후로도 오사장네는 상돈이 아내의 집 밖 외출을 거의 하지 못하게 하여 그녀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데리고 와보니 정신 상태가 상돈이 보다 훨씬 안 좋다는 소문도 있었고 어디가 많이 아프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상돈이 자기 아내를 때린다는 소문이 돈 건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자기 막내 동생 같은 아이들이 놀리고 때려도 당하기만 하고 화 한번 안 내면서 그 수모를 다 견뎌냈던 상돈이었는데 자기 아내를 때린다니, 나는 믿을 수도 없었고 믿고 싶지도 않았다. 누군가를 때리는 상돈이는 상상이 되질 않았다.
상돈이네 집은 산아래 몇백 평 되는 대지 위에, 건축을 아무리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돈을 아주 많이 들였다는 느낌을 주는 2층 양옥집이었다. 마당을 안에 두고 삥 둘러 심은 소나무들은 그 집을 지키는 호위병처럼 느껴졌다. 그때 아이들 몇몇이 상돈이 부인이 마당에 나와서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아이들은 그녀를 보기 위해 담장 밖에 있는 큰 대추나무에 올라가 마당 안을 훔쳐보기로 했다. 평소 나무 타기를 잘 못하는 나였지만 뻗쳐오는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어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나무 위로 올라갔다. 햇살이 푸지게 쏟아지는 마당 한가운데의 평상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여자의 몸피는 한없이 작고 어깨는 좁디좁았다. 넋을 놓고 있다는 표현은 그녀를 위해 만들어진 말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동공엔 초점이 없었다. 그 거리에선 그녀의 동공이 분명 보이지 않았을 텐데, 난 왜 아직도 그녀의 초점 없는 동공이 분명하게 기억이 나는 걸까. 그때 상돈이 집안에서 나왔다. 그리곤 자기 아내에게 뭐라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때리진 않았지만 그의 태도는 가히 폭력 그 이상이었다. 그녀는 겁에 질려 구겨진 종잇장처럼 어깨를 접으며 집안으로 쫓겨 들어갔다. 상돈은 뭐에 화가 났는지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너무 놀라 나무에서 성급히 내려오다 발목을 접질렸다. 집에 돌아와 점점 부어오르는 발목보다 더 아팠던 건, 순하디 순한 한 사람의 이면을 본 충격받은 마음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인간은 언제나 자기보다 약자를 본능적으로 알아보고 그에게 얼마든지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걸 알턱이 없었다. (우리가 순한 양이라고 부르는 양의 본성이 사실은 전혀 순하지 않다는 것을 어느 책에선가 본 적이 있다. 하긴 양이 우리에게 자기가 순하다고 말한 적은 없으니. 우리가 그렇게 규정하고 믿었을 뿐...)
그 후 상돈이는 연년생으로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 오사장은 손주를 보겠다는 소원을 이루어 행복해했을까? 동네 아저씨들은 바보여도 할 건 다 한다고 그들 부부 생활을 안주거리로 삼았지만 난 그녀의 좁은 어깨와 텅 빈 동공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았다. 남편에게 그런 취급을 당하면서 아이를 셋이나 낳아야 했던 한 여자의 삶. 그리고 모두에겐 바보처럼 착했지만 자기의 아내에게만은 그러지 못했던 상돈의 삶을 보며 인간의 슬픈 본성에 대해 체념 아닌 체념을 하게 됐다.
상돈도 그의 아내도 이제 환갑 가까운 나이가 되었을 것이다. 부디 행복하게 잘 살고 있기를...
(열 번째 에세이 끝)
*‘유년의 뜰’ 제목은 오정희 선생님의 동명소설을 오마주하여 같은 제목을 썼음을 밝힙니다.
<숨 빗소리_ 신작원고_ 눈꽃의 에세이> _ 에세이는 4-5주 주기로 계속 업데이트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