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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May 07. 2024

비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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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노래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지면


 서둘러 날개를 입고 집으로 돌아가는 새들처럼

 하나둘

 우산을 입었다

 지금도, 그 옛날에도


 그다지 진보하지도 퇴보하지도 않은 채

 가장 평범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빗물이 떨어지면


 아주 천천히 자신의 귓속으로 파고드는 여린 빗방울 소리를 위해

 조금씩 우산은 넓어지고

 우산의 안쪽은 왠지 사람의 귀를 닮았다는 생각

 젖은 산책로를 따라 조금은 다른 인생이 시작되고 싶을 때

 우산을 써도 젖어가는 한쪽 어깨, 사랑을 해도 한 구석쯤은 고독한 인간의 마음이란


 오랜 역사가 지나도 변하지 않는

 평범한 원리처럼,

 고전적인 빗물처럼

 젖은 새들의 날개가 아름답다는 생각 같은 것


 축축한 산책로에

 금세 지워질 이름으로 함께 음각의 문장을 새기고, 새기고


 영원할 길은, 영영 기억되는

 실패하지 않는 최초가 되는 것이라 믿으며

 비 오는 날 집으로 돌아와

 우리는 당신의 가장 보통의 방에서, 젖은 새가 날개를 입고 최선을 다해 그들의 둥지로 돌아가듯이, 사람들이 우산을 입고 지붕 밑 세상으로 들어가 잠들듯이


 너를 입었다, 당신의

 목과 어깨와 두 팔과 발목까지를 천천히

 내게 입히며


 비에 젖으며


 창밖으로 네가 지은 우산의 노래를 듣네,

 - 왜 아픔을 털어놓을수록 우리는 조금씩 더 외로워지는 걸까요


 우산은 매번 망가지고 잃어버려도 왜 불멸하는지


 평범한 사랑을 최초로 발명한 인간의 감정처럼

 더불어 완벽하게는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젖은 어깨처럼, 축축한

 날개처럼


 젖고 또 젖고 말라갈 것이다

 다시 젖고 젖어 들어 끝내 완벽하게 우리는

 사라질 것이다





* 9년 전 오월의 비. 젖은 새들의 날개를 구경하던 산책. 그리고 너의 집. 서로의 아픔을 털어놓으며 우리는 우리를 비운다. 텅 빈 마음이 되어, 쓸쓸한 빈집이 되어. 그러나 그곳에 조금씩 채워지던 새로운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이 있기에 내일은 어제를 나아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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