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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Jul 10. 2024

주름진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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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진 상처




 계단을 시작할 때 드는 예감 같은 것


 지금 듣고 있는 음악이 머지않아 곧 끝날 것이라는 흔한 아쉬움을 생각하며


 목제계단 한가운데 앉아 그때 나는 어떤 감정과 표정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하는 목메임 같은 것


 이것은 여행을 떠났던 한 남자가 전망대를 향하는 나무계단에서 바라본 텅 빈 바다 주름 같은 이야기다


 오래된 침대처럼 삐걱거리는 나뭇결 계단은,

 공중의 피부를 차곡차곡 잘 접어놓은

 주름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한껏 부풀었다 꺼져버린

 사랑하는 이가 과거를 잉태하고 그 지나간 것의 흔적을 내가 슬픈 눈으로 쓸어 만지는

 흔한 밤, 같은 것


 연주는 곧 끝날 것이다

 이 계단의 관람시간은 여기까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고통이 이 길의 진짜 이유였다는

 초라한 사실을 찾기 위해

 정상에 잠시만 머물다 사라지는 사람들,

 구름의 노을들


 막연한 상실감에 젖어 누군가를 그리워하던 어린 시절 아픔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 계단이 끝나갈 때, 구름들이 다시 각자로 돌아가야 할 때


 시작부터 이미 끝날 것을 염려하는

 여행지에 새겨진 낙서처럼

 아파서 좋았다, 이게 진짜


 상처라서

 그래서 오래도록 목이 멜 것이므로, 좋다, 좋았다

 저녁을 닮아가는 무수한 계단

 그들의 목 쉰 노래가


 주름진 하늘이 견뎌야만 하는

 긴 문장, 붉은 온점의 어두워지는

 여운들이

 흔한 매일의 마지막 칠흑들이




* 무엇을 쓰는지도 모른 채 슬퍼하던 때. 모든 사랑이 끝사랑 같이 느껴지던 그때의 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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