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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Jun 26. 2024

중독

13

중독




 그 모임에서 나는 나의 세계 속에 있었다


 당신들은 기타를 치고 술을 마시고 게임을 하며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상 속에 있었지, 외롭지 않기 위해 나는 분명 당신들과 모닥불을 피웠는데


 새벽이 가까워질수록 하나둘 잠드는 사람들과 길게 남아 이야기 나누는 이들


 별은 맑은 날이 아니라 오래 기다리는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대화를 들었지, 창가의 근처에서 나는 아직 잠들지 않고


 아니 잠들었는지도, 긴 모임의 소요와 고독 속에서 나의 기타 줄 하나는 오래전 그 팽팽한 현을 스스로 끊었는지도


 별의 긴 꼬리가 밤하늘의 동맥 하나를 부러 잘라냈듯이


 물들어가는 출혈이 창가 너머 바닷가로 차오르는 밤


 나는 그 세계 속에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그 세계의 백사장에 홀로 나와


 기다림을 걷고 있었지

 오래부터 아니 그전부터

 매 시절 기다림에 중독되었는지 몰라


 나와 똑같이

 새벽, 이 아침을 몰래 빠져나와

 모래밭의 세계를 걷고 있는 한 사람을


 그런 사람을 언젠가 만날 수 있으리라는 세계를 끌어안고


 계속 계속 써나가는 발자국의 문장

 끊어진 현 하나의 절벽으로 울려 퍼지는 한 마디 시처럼


 나는 그 세계에 홀로 나와 앞서 걷고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게 아니었는지도 몰라


 모임의 한 자리에서부터 오래 보아온

 오직 한 사람을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그가 어서 빨리 이 세계 속에 들어오기를, 한가득 외로운 가련함으로, 그렇게




* 누구를 그리워하는지도 모른 채 그리워하던 시절. 이제 그때의 이름들은 기억나지 않고. 이상한 결론이지만, 지나 보니 그때 그리워하던 건 그 시절의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스스로에게 중독되었던 목마른 계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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