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숨 빗소리 Jun 12. 2024

부다와 페스트

11

부다와 페스트



 시린 손가락들이 잠든 다뉴브는 그 어둠조차 강물의 입김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

 얼마나 많은 뜨거움들이 캄캄한 물결 너머 안개를 피웠는지


 왜 보고 싶은 것들은 그렇게 늘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


 분명히 한 장의 페이지인데 꼭 두 장이 붙어있는 듯

 억지로 떼어 꺼내보려 하면 구겨지는 종이,

 처럼 검은 강물은 흐르고


 안개는 내리고, 부다와 페스트 사이, 그들과 나 사이, 너와 나 사이로, 불빛들은 출렁이고, 유람선들이 느린 눈동자처럼 깜박여


 그림 위 덧칠을 하고 다시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면, 그 사이로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영혼의 물결들이 흐르지


 부다와 페스트를 지나며 너와 헤어졌다가 너와 다시 만나면, 그때 우리 사이로도 캄캄한 강물이 흘러갔다고 생각했지


 그런 평범한 영혼들과 수세기가 이 강물의 손가락이 그리는 덧칠 같지, 덧칠 속에 잠든 안타까운 겨울의 숨들이 이 짙은 안개를 강물 위 띄운다고


 모든 것이 그렇게 짧고 영원히 스쳐간다고

 영혼의 흔적은 저토록 희고 차고 축축하다고

 고민했지, 떠났지





* 보고 싶던 것들은 언제나 잘 보이지 않던 밤의 시간들. 걷힐 것 같지 않았던 안개의 시절처럼.

이전 11화 도쿄호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