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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Jun 05. 2024

도쿄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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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호텔



 창밖으로 차가운 투명이 내렸다, 지금 막 태어난 슬프고 뜨거운 물방울의 감정


 오목한 자리마다 고였으므로 비오는 날엔 서로를 더 잘 볼 수 있다고 믿으며 도쿄호텔, 어디에도 없는 가장 작은 창 너머를 내려다보면서


 지붕이 낮은 먼 집들은 미처 다 읽지 못한, 지구상에 가장 슬픈 문장들이라 여기는 우린 도시의 가장 좁고 낡은 방에서 사랑을


 도망칠 수 있는 곳은 없어 그래서 도망갈 수밖에 적극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잡히지 않는 영원이라 믿으며 포개진 그림자의 덜컹거림을 따라 낡은 건물의 흔들리는 첫 경험을


 질주, 아주 느리고 빠르게, 질주

 빗길을 달리는 눈썹이 까만 자동차가 드디어 공중 위로 솟구치고 그 젖은 불꽃을 함께 바라보며 창가의 테이블 곁에서 기어코

 쨍그랑

 붉은 와인 잔을 부딪치지


 너였어, 당신이었어

 필요 없는 말들을 삼킨 채 대신 하얗고 가난하고 투명한 시트 위에 붉은 와인을 방울방울 쏟아놓고서 서로의 살이 찢어지고 타들어가는 냄새를 맡으며 또 한 번의 절정을


 사랑을 나눌 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표정들처럼 도쿄에 없는 도쿄호텔의 제일 꼭대기 층에서 한 번도 뛰어내리지 않으면서 이 사람과 함께 죽고 싶다는 편지를 쓰기로 하고 쓰지 않는다


 도쿄호텔은 도쿄가 아닌 이곳에 있고

 그토록 좁고 가난한 방에 머물렀으므로 그 계절의 마지막 비가 내렸다고


 믿을 것이다,

 붉은 포도주의 잔을 깨뜨리는


 입술을 찢으며 달아나는 가장 먼, 먼 유리조각들처럼

 사라지면서 없는, 없으면서

 어딘가 반짝이는

 끝없이




* 막 태어난 슬프고 뜨거운 감정들. 사랑이 시작할 때, 왜 그런 투명들이 마음의 창에 흘러 내리는지. 그러나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끝없이 질주. 그렇게 우리는 영원히 달려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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