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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May 28. 2024

끝나지 않은

8

끝나지 않은



 겨울이,


 흘러가는 기차의 차창에 입술을 대고 투명한 휘파람소리를 내는 밤이다 그 소리를 좁은 대합실 너머로 오래 앉아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낫지 않았다, 어젯밤 너무 빠른 기차가 나를 스쳐가 홀로 역 플랫폼에 남겨졌다는 외로운 상처가


 그때,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음악을 연주하는 거대한 금관악기처럼 겨울의 기나긴 뒷모습은 고독하고 아름다운 바람의 숨결소리로 덜커덩 덜커덩거렸지


 여러 명의 사람이 타고 있었어, 언제나 함께 간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침대칸에서 사랑을 나누는 소리를 따라

 차창 밖 별빛들이 입김 같은 하얀 신음을 검은 오선지에 토해낸다는 착각만큼 매력적인 생이 또 있을까


 그런 생에서 떨어져 나와

 불협(不協)의 한 음처럼 나는 오래 외로웠으므로


 도저히 탈 수 없는 기차를 대신하여 텅 빈 대합실 나무의자에 앉아 두꺼운 수첩 위 버려진 연필처럼 기나긴 철로의 악보를 홀로 그리네


 멀어지는

 너의 긴 머리카락,

 깊어지는 시, 기차의 문장

 혹은 그것을 끝없이 부정하는 지우개 가루처럼 흩날리는 흰 눈을 한참 동안 맞으며


 - 당신에게 실망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당신이 아닌 것을 그대에게 바라는 내게


 실망하는 것이라고,

 그리하여 열차에서 나를 떠민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다,

 숨겨진 화물칸의 어떤

 이탈 음처럼 -


 이라는,

 아직 끝나지 않은 문장을

 네게 남긴다




* 설원 속 달리는 열차가 그대로 한편의 음악이 되던 밤들. 서로가 쉽게 겹쳐지지 않음에 쓸쓸해지던, 계절의 시린 휘파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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