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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 빗소리 May 30. 2024

비 오는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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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동물원



 힘든 그대와 가고 싶었다, 피할 수 있는 곳은 아무 데도 없어서

 수직 낙하하는 젖은 총알들을 그대로 받아먹고 있는

 동물원

 관람객이라곤 오지 않아 빗줄기 손님들만이 가득한

 동물원의 침묵 속을

 우산을 쓰고 걷다 보면 가끔씩

 흐르는 피를 닦지 않는 상처처럼

 우리에 들어가지도 않고 젖은 털을 마냥 내버려 둔 채

 무표정한 표정의 빗줄기 속

 자신을 멍하게 바라다보는 표범 한 마리

 빗줄기 감옥에 갇힌 한 마리 인간의 고독을 감상하듯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도 눈동자에 담지 않으면서

 심드렁한 표정의 세상과 거리를 둔 채

 오랑우탄의 지루한 하품과 홍학들의 추락만이 가득한

 선명하게 번져가는 보도블록을 밟고 있노라면

 희미했던 가슴 속 표정 하나만이

 빗물의 수면 위로 떠오를 뿐

 세상은 모두가 예외 없이 공평한 창살에 갇히고

 그런 시간에게 끊임없이 먹이를 주고 있는 빗줄기의 손가락,

 손가락들

 그렇게 그런 우리를

 고요한 창 너머로 구경하던

 비 내리는

 동물원




* 그들에게 갇힌 나를 바라보며 빗속을 걸었다. 비가 그쳐도 여전히 빗속에서 나오지 못하는 나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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