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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31 / 2025. 8월호. 이창호 신작소설_제1화

by 숨 빗소리

OB

- 이창호



제1화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을 열고 들어가려던, 해수는 잠시 멈췄다. 혹시 누가 감시하는 것은 아닌지,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인기척은 없었다. 현관으로 들어선 뒤에도 해수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신발을 벗고 현관 옆 작은방에 고개를 넣어 안을 살폈다. 그리고 화장실과 안방을 살핀 뒤 갈아입을 옷을 가지러 작은방에 들어갔다. 옷을 꺼내던 해수의 시선이 군복에 멈췄다. 해수는 잠시 회상에 잠겼다.

6년 전쯤 포천시에서 지급한 군복이다. 당시 나이 50 넘은 예비군에게 군복을 지급한대서, 해수뿐 아니라 동기들 모두 놀랐다. 이해 11월 18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이 국민과 싸우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라며 "최종적으로 계엄령까지 준비한다는 말도 나온다"라고 말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빨리 검찰 조사를 받으라는 국민 여론을 외면하고 인사권을 행사할 때였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박 대통령이 벼랑 끝에 몰리자 ‘최후의 수단’으로 계엄령 선포 가능성을 예측했다. 이때 해수는 특전사 전투복 지급이 의아했었다. 50이 넘은 올드보이(OB)에게 훈련을 시키다니, 혹시 ‘계엄’과 관련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반신욕을 하던 해수는 군입대 시절이 떠올랐다. 1979년 남동생이 있던 해수는 현역 입대를 자원했고, 자연스럽게 해수의 동생은 방위로 빠졌다. 당시에는 형제가 둘인 집은 한 명만 현역 입대하고 나머지는 방위로 배치했다. 40∼50명 정도가 포천 읍내에 모여, 서울을 거쳐 논산훈련소까지 갔다. 이중 30명이 특전사로 자대 배치받았다. 포천부터 특전사 자대까지 해수와 함께한 동기가 면수다. 제인은 자대에서 만난 동기였다.

1980년 5월 17일 오후 서울 2공수여단에는 임무가 하달됐다. 같은 중대인 해수와 면수는 서울 주요 대학 정문을 지켰고 옆 중대인 제인은 광주로 내려가게 됐다. 해수는 광주로 가는 동기들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처연해 보였다. 이날 비상계엄이 서울에서 전국으로 확대됐고 다음날인 5월 18일부터 광주에서는 대학살이 일어났다.

회상에 잠긴 사이 전화가 울렸다. 급하게 몸을 닦고 전화를 받았다. 면수였다.

- 야 뭐 하냐?

- 씻고 나왔어.

- 저녁 안 먹었으면 나와, 오랜만에 영권이 온대.

- 그래? 걔도 통지서 받았다냐?

- 그렇대, 아무튼 나와 소주 한 잔 하게.

- 알았어.

주먹고깃집에 모인 세 사람은 기분 좋게 건배를 했다. 세 사람은 허기졌는지 술과 고기를 연거푸 먹었다. 해수와 면수는 자주 보지만 영권은 상계동에 살고 있어 가끔 만난다. 영권은 개인택시 영업을 하고 있다. 해수도 젊은 시절 영권과 함께 상계동에 살며 택시 운전을 했다. 면수도 제대 후 서울에서 화물차를 운전했으나 자리 잡지 못했다. 셋 중 제일 빨리 포천으로 돌아왔다. 면수보다 해수가 10년 더 타향살이를 했다. 군대 제대 후 생활전선에 뛰어든 셋은 사는 게 팍팍했다. 영권이 먼저 말을 꺼냈다.

- 야, 우리 제대하고 그냥 경찰이나 할 걸 그랬어. 그럼 지금쯤 말똥(경위) 하나는 달았겠지?

- 네가 그런 말할 자격이 있냐? 택시기사 돈 많이 번다 그래서 너랑 같이 회사택시 한 거 아냐? 그때 마음만 먹으면 경찰이나 소방관도 특채 됐어.

- 그래도 돈은 잘 벌었잖아?

- 잘 벌면 뭐 하냐? 겉멋 들어서 젊을 때 돈 다 쓰고 남은 게 없는데.

면수도 한 마디 거들었다.

- 그래도 너는 서울에서 조합장도 하고 잘 나갔잖아.

- 그게 언제 적 얘기냐? 술이나 마셔. 괜히 짭새 얘기는 왜 꺼내서…

셋은 술잔을 부딪히다 서로들 눈이 마주쳤다. 각자 하고 싶은 말은 따로 있다는 눈빛이었다.

- 영권이 너도 예비군훈련 갈 거냐? 면수랑 나는 가볼까 한다.

- 나도 그거 상의하러 왔지, 솔직히 이 나이에 훈련받아서 어디에 쓰냐 근데?

- 그게 궁금하니까 가보려는 거지, 그리고 김제인이가 온다니까. 그때 광주 내려간 뒤 못 봤지? 영권이 너랑 같은 내무실 아니냐?

- 맞아, 내가 더 궁금하긴 한데. 이 나이에 예비군 간다 그러면 누가 믿을까? 가보자!


(다음호에 계속)


<숨 빗소리_ 이창호 소설>


이창호 - 현직 기자. 저서로 소설 <미필적 고의>, 공동에세이 <그래도 가보겠습니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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