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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만나요

VOL.32 / 2025. 9월호. 시의 노래_1

by 숨 빗소리

서점에서 만나요



한 사람 사연을 듣게 되면

나도 무언가를 말하게 돼요

한 문장이 끝나면

또 한 문장이 끝없이 이어지는

한 편의 기나긴 글처럼

마르지 않는 강물처럼

함께 듣는 사람들과

함께 말하는 사람을

그곳에서 만나게 되었어요

이후부터 무언가 만들고 싶어졌지요

당신의 시를 그 서점에서 듣고 난 후

나는 무엇인가를 쓰게 됐고

그건 사람들과 나에게 들려주고픈

나이면서 내가 아닌 이야기들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다른 사람이 돼가고 있어요

조금 더 내가 돼가고 있어요

당신이 읽고 내가 처음 들을 때

우리는 어쩌면 흔들리고 있었나요

바람은 멈추지 않고 흔들리고 있었지요

그리웠던 자리가 하나둘 사라질 때마다

기억처럼 그 서점을 찾았어요

어쩌면 자리는 그대로인데

세워져 있던 존재들만

무너지고 헤어지는 것인지

오래전 품었었던 집을, 건물을

그 사람들을 기억할까요

그런 것들이 궁금해질 때마다

그날의 낭독회, 서점에 갔어요

시는 흘러갔던 자리를 기억할까요

글자들은 그대로인데

시의 음성은 자신이 흘러갔던 입술과

사람들의 귓가, 나뭇가지, 바람의 손가락들

기억할까요

그런 것들이 못 견디게 궁금한 날엔

그 오래된 자리에 방문한답니다

같은 의자에 앉아봐요

서점은 우리가 함께 앉았던

자신의 미래를 기억할까요

그 시를, 시의 미래들을

그런 것들이 궁금해져서 오늘도 글을 쓰고

당신을 읽으려 서점엘 갑니다

서점에서 만나요





허민 – 2015년 웹진 『시인광장』 신인상으로 시를, 2024년 계간 『황해문화』 창작공모제를 통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시집 『누군가를 위한 문장』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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