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5 / 2025. 12월호. 이창호 소설_제2화
- 이창호
서울시 강서구 제2공수특전여단. OB들이 하나 둘 입소하고 있다. 지역별로 가까운 군부대를 통해 특전사 전투복은 이미 지급된 상태. 해수와 면수가 멋지게 군복을 차려입고 등장한다. 50이 넘었지만 아직 특전사다운 몸매를 유지하고 있다. 뒤에서 영권이 뛰어오며 부른다.
- 야, 같이 가. 해수 아직 살아있네!
- 하드웨어야 그렇다 쳐도, 소프트웨어가 맛이 갔잖아.
세 친구는 여단 운동장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운동장에는 각 지역별 팻말이 꽂혀 있었다. 서울인천, 경기강원, 부산경남, 대구경북, 대전충청, 광주전라제주 등 여섯 조로 나뉘었다.
해수와 면수는 젊은 시절 5군단에서 예비군 훈련을 받아, 지역별로 조를 짜는 게 생소했다. 영권은 2공수여단에서 훈련을 받긴 했으나 조를 짤 정도로 예비군이 많은 적은 없었다.
- 영권아, 2공수는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오냐?
- 아니, 나도 이렇게 지역별로 조 짜는 건 처음 봤어.
세 친구가 의아한 표정으로 줄을 서 있는데, 조교들이 인솔하러 나왔다.
- 선배님들 각 조별 조교들 따라서 강당으로 이동하시면 됩니다.
- 서울인천 조부터 광주전라제주 조까지 순서대로 1, 2, 3, 4, 5, 6조로 부르겠습니다.
1조와 2조는 20여 명, 3조부터 6조까지는 10여 명씩 약 100명 정도가 강당에 앉았다. 잠시 뒤 교관이 강단으로 올라왔다. 교관은 입소 첫 일정으로 정신교육을 한다며, 강의할 사람을 소개했다.
- 안녕하십니까. 소령 서사원입니다. 오늘 강연은 1980년 광주 현장에 투입된 김제인 전우가 진행할 겁니다.
강당 맨 앞에 앉아있던 제인이 단상으로 올라왔다. 세 친구는 '김제인'이라는 이름을 듣고 벌써 놀라있었다. 제인이 훈련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정신교육 강사로 나올지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 안녕하십니까. 소개받은 79년 입대한 특전사 예비군 김제인입니다. 여기 저처럼 1980년 작전에 투입된 분들 계십니까?
말을 꺼내면서 제인은 세 친구를 바라봤다. 마치 손을 들라는 것처럼. 손을 들지 않자, 제인은 수업을 이어갔다.
- 아마 작전 투입된 분들도 있고, 아닌 분들도 있을 겁니다. 광주에 내려간 분들도 있을 거고, 서울에서 작전 수행한 분들도 있을 거예요. 당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영상 하나 보고 이어갈까요.
영상은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발언한 것을 비롯해 정치권에서 불거진 '계엄령'과 관련한 내용이었다. 짧은 영상이 끝난 뒤 제인은 충격적 발언을 했다.
- 지금 야당이 제기한 의혹들이 실제 문서로도 돌아다닙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우리 OB들에게도 역할이 부여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년 OB들을 대상으로 훈련을 진행하고 유사시 추가 교육훈련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강당에 있는 예비군들은 '역할 부여'라는 말을 듣고 웅성거렸다. 해수는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면수와 영권은 서로 얼굴을 바라본 뒤 동시에 동시에 쳐다봤다. 서 소령의 눈빛도 예사롭지 않게 변했다. 강당이 시끄러워지자 제인은 급히 목소리를 키웠다.
- 자, 자. 여러분 지금 말씀드린 건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 우리 젊었을 때처럼 훈련에 열심히 임하자는 뜻을 전하려다 보니, 조금 과격했던 것 같아요. 저도 오늘부터 여러분들과 함께 훈련에 참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제인이 강단에서 내려오고, 서 소령이 훈련일정을 소개했고 쉬는 시간이 주어졌다. 세 친구는 제인을 찾아갔다. 다가오는 동기들을 본 제인이 먼저 아는 척했다.
- 이야, 너네들 반갑다. 오랜만이다!
- 반갑긴 한데, 너 아까 그거 무슨 소리냐?
- 얼마 만인데, 반가워부터 하면 안 되냐?
면수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해수 말을 끊었다. 면수가 먼저 제인과 악수했고, 영권과 제인 다음 해수도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넷은 미소를 머금었다. 마치 옛날 내무실에서 어울리던 때 같았다. 해수도 의심을 풀었다.
- 우린 제인이 너 온다고 해서 훈련 나온 거야, 잘 지냈냐? 너 광주 가고 나서 만나지 못했잖아.
- 말도 마라, 광주 투입됐다는 이유로 평생 욕먹어가면서 살았잖아.
- 너도 사는 게 만만하지 않았겠네. 그래도 아까 그 얘기는 뭐냐?
- 야야야! 그 얘긴 나중에 하고 일단 훈련부터 받자.
해수가 제인에게 질문하자, 면수와 영권이 말렸다. 제인은 경기강원 조였다. 이들은 20년 넘게 받지 않던 공수훈련과 실탄사격, 각자 주특기훈련을 받았다. 같은 조에서 총을 쏘고 나온 면수와 영권을 해수가 기다렸다. 해수의 손에는 땀이 나기 시작했다. 심각한 표정을 지은 해수가 말했다.
- 아무래도 불안하다, 제인이 아까 강단에서 눈빛을 봤을 때 괜히 한 소리가 아닌 것 같다. OB들을 부른다면 우리가 그 공포를 또 겪어야 한다는 건데.
면수와 영권도 불안한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다음화에 계속)
<숨 빗소리_ 이창호 소설>
이창호 - 현직 기자. 저서로 소설 <미필적 고의>, 공저 <그래도 가보겠습니다>와 <독립언론, 함께 홀로서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