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

VOL.36 / 2026. 1월호. 이창호 소설_제3화

by 숨 빗소리

OB

- 이창호



제3화


특전사 OB 예비군훈련은 2023년에도 진행됐다. 2022년보다 하루 더 늘어 대테러와 실탄사격을 중점적으로 훈련했다.

훈련이 끝나고 며칠 뒤, 면수가 해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 야, 해수야. 요즘 '서울의 봄' 영화 난리던데, 우리도 한번 볼까?

- 안 그래도 궁금하긴 한데, 어차피 아는 얘기고 보면 찜찜하지 않겠냐?

- 한 번 보자, 언제 볼래?

해수의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면수도 그걸 눈치챘지만 말을 이었다.

- 내일 저녁 어때? 송우리 CGV에서 7시.

- 알았어.

다음날 저녁, 두 사람은 극장 앞에서 만났다. 평일 저녁인데도 극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팝콘을 사들고 상영관에 들어선 해수와 면수는 뒷자리에 앉았다.

영화가 시작되자 두 사람은 말없이 스크린을 응시했다. 전두환이 보안사령관 시절 부하들을 모으는 장면, 정승화를 체포하러 가는 장면,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이 저항하는 장면, 총소리가 울릴 때마다 해수의 손이 떨렸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자 1979년 12월 12일 밤의 긴박한 상황이 펼쳐졌다. 탱크가 서울 거리를 달리고, 군인들이 충돌하고 총성이 울렸다. 해수는 그날 밤 자신이 어디 있었는지 떠올렸다. 훈련소에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자고 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갔다. 극장을 나서는 관객들 사이로 해수와 면수도 천천히 걸어 나왔다. 밖으로 나오자 찬 공기가 얼굴을 스쳤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 술이나 한 잔 하자.

- 그래.

근처 포장마차에 자리를 잡은 두 사람은 소주를 시켰다. 첫 잔을 비운 뒤에야 해수가 입을 열었다.

- 12.12가 우리 공수훈련받을 때지?

- 맞아. 우린 아무것도 몰랐지.

- 그러고 나서 5개월 뒤에...

해수의 말이 끊겼다. 면수가 술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 5.17. 비상계엄 확대. 그날 밤 기억나냐? 갑자기 집합 걸리고, 우리한테 실탄 지급하고.

- 기억나지. 대학 정문 앞에 서 있을 때, 학생들 눈빛이 아직도 생생해.

해수는 소주잔을 들었다 내려놨다.

- 우리는 그래도 서울이었잖아. 제인이는...

- 광주로 내려갔지.

두 사람은 다시 침묵했다. 포장마차 안 TV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서울의 봄이 1천만 관객을 기록하면 윤석열 지지율이 추락한다는 내용이었다. 또 야권 인사들이 단체 관람을 한다고 나왔다. 해수가 TV를 보다가 말했다.

- 면수야, 지난번 훈련 때 제인이가 한 말 기억나지?

- 비상계엄 선포되면 우리한테도 역할이 부여될 수 있다고?

- 그게 무슨 뜻일까.

- 설마... 또?

면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해수는 주먹을 쥐었다.

- 1980년 그날, 우리가 뭘 했는지 알잖아. 총 들고 국민 앞에 서있었어. 명령이라며, 나라를 지키는 거라면서. 그렇게 강요당한 거지만...

- 해수야.

- 제인이는 광주에서 뭘 봤는지 몰라도, 평생 그 죄책감 안고 살았어. 우리도 마찬가지야. 대학생들 앞에서 총을 들었던 그날이 악몽처럼 남아있다고.

해수의 눈이 붉어졌다. 면수도 고개를 숙였다.

- 근데 지금, 2023년에 또 그런 일이 생긴다고? 50 넘은 우리한테 군복 입히고, 훈련시키고 실탄사격까지 시키는 게...

- 말도 안 돼. 말이 안 된다고.

면수가 테이블을 쳤다. 주변 사람들이 돌아봤지만 두 사람은 신경 쓰지 않았다.

- 영화 봤잖아. 12.12 때도 그랬어. 군인들끼리 총 겨눴잖아. 그러고 나서 5개월 뒤에 광주에서... 그리고 추미애가 계엄령 얘기하고, 우리한테 훈련받게 하고.

해수는 소주를 한 모금 마셨다.

- 1980년 5월 17일 밤. 그날 밤 우리가 느꼈던 공포 기억나냐? 뭔지도 모르고 총 들고 거리로 나갔을 때.

- 기억나지.

- 난 그날 밤부터 자주 악몽을 꿔. 내가 학생들과 뒤엉켜 방아쇠가 당겨지는 꿈, 제인이처럼 광주 간 게 아닌데도 죄책감에 시달려.

면수가 해수의 어깨를 잡았다.

- 해수야, 우리 어떻게 해야 돼?

- 모르겠어. 그냥... 다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하는데.

두 사람은 밤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해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1980년 5월의 그 밤하늘처럼 어두웠다.

집에 도착한 해수는 작은방에 들어가 군복을 꺼냈다. 포천시에서 지급받은 전투복. 손으로 쓰다듬으며 해수는 생각했다.

'이걸 또 입어야 하나. 43년 전처럼. 또 국민 앞에서 총을 들어야 하나.'

해수는 군복을 꼭 껴안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1980년 5월 17일 밤, 비상계엄이 선포되던 그날의 공포가 되살아났다. 실탄을 장전하고 대학 정문 앞에 섰던 순간. 학생들의 외침. "군인들아, 총 내려놔!" 그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다음화에 계속)

<숨 빗소리_ 이창호 소설>


이창호 - 현직 기자. 저서로 소설 <미필적 고의>, 공저 <그래도 가보겠습니다>와 <독립언론, 함께 홀로서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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