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싸기의 우울에 관하여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침대에서 이메일을 확인했다. 좀 없애고 싶은 습관인데,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보는 습관을 보지 않는 이상 없애기가 힘들 것 같다. 안 읽은 이메일의 수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는데, 그 숫자에서 하나라도 늘어난 것이 보이면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가장 먼저 읽은 이메일은 항공사에서 보낸 것이었다. 탑승일이 일주일 남았으니 짐을 싸기 시작하라는 친절한 리마인더였다. 사실 일주일 전 리마인더 자체가 목적이었겠고, 짐을 싸기 시작하라는 코멘트는 고객 관계 담당자의 따뜻한 반짝임이었겠지만 그래서인지 내 마음에 아주 잘 와닿았다. 바로 캐리어를 열어 펼쳐두고 당장 사용하지 않을 물건들을 던져넣었다. 정리를 하자면 또 한참 걸리겠지만 그 행위만으로도 어쩐지 정리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어쩐지 우울해졌다. 이런 우울함은 짐을 쌀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다. 생활의 기반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즐겁게 떠나는 휴가 차의 여행일 때에도 다르지 않다. 짐을 싸는 행위, 필요한 옷가지와 물건들을 고르고 정리하여 캐리어에 차곡차곡 개켜넣는 행위는 나에게 우울감을 준다. 이 우울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어디 끌려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 손으로 끊은 비행기표, 내가 스스로 선택한 목적지로 가기 위한 짐 싸기의 행위, 나의 물건들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맞고 올바르게 한정된 공간 안에 채워넣는 행위, 그러니까 정말 완전히 나의 통제 아래 있는 이 행위에 대체 어디에서 우울감의 빌미를 찾을 수가 있는 것일까? 나는 내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에 모든걸 다 바칠 수도 있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환기를 위해 커피를 사러 나갔다. 산책을 즐기게 된 것은 여기 와서 얻은 가장 귀중한 것 중 하나이다. 방구석에 가만히 앉아, 나가서 걷는다고 생각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아, 라고 생각하는 건 세상에서 가장 바보같은 짓이다. 진부한 말마따나 해보지 않고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나가서 걸으면 무조건 생각이 바뀐다. 아니면 다른 생각이 든다. 아니면 다른 관점을 얻는다. 어쨌든 달라진다. 확실히 달라진다. 커피를 사기 위해 걸으면서 나는 이 우울이 어떠한 방식의 변화에서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짐을 싸기 위해서는 물건을 본래 놓여 있던 자리에서 들어내야 한다. 내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또는 내게 필요한 방식으로, 둘다 아니어도 어쨌든 내게 익숙한 방식으로 진열하고 전시하고 정돈해 두었던 물건들을 모조리 꺼내어 아무리 차곡차곡 잘 쌓아넣는다고 해도 종국에는 그 질서를 다 잃어버릴 캐리어 안으로 던져 넣어야 한다. 공항으로 가기 위한 우버 안에서, 비행기 화물칸으로 가는 컨베이어 벨트 위와 카트 안에서, 화물칸 안에서 이리저리 뒤섞인 다른 캐리어들 옆, 앞, 위, 뒤에서, 그리고 다시 나의 발견을 기다리며 얌전히 따라나오는 짐 찾기 구역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그 캐리어가 이리저리 흔들릴 때마다 그 안에 든 물건들은 모든 질서와 순서와 차례를 잃고 아무렇게나 뒤엉킬 것이다. 집이든 임시 숙소든 여행지 호텔이든 내가 머물렀던 공간에 내가 기억하는 방식으로 위치했던 물건들은 영영 그 모습을 잃고 어딘가로 가게 될 것이다. 마치 지금 여기에 내가 가장 편안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내가 새로운 모험이든 영광스러운 귀환이든 쓸쓸한 되돌아감이든 기대에 부푼 도전이든 하여간 어떠한 경험을 겪어야 하고, 그 이후에는 지금의 이 편안하고 익숙한 모습을 다시는 되찾을 수 없듯이. 공항으로 가기 위한 우버 안에서, 비행기 탑승구 앞에서 애매하게 떠 버린 시간을 하릴없이 보내며, 환승지에서 백팩을 꼭 끌어안고 어린아이처럼 불안해하며, 비행기 안에서 이리저리 뒤섞인 다른 사람들 옆, 앞, 뒤에서, 그리고 마침내 착륙한 후 승무원을 얌전히 따라나오는 목적지의 공항에서, 이 모든 여정에서 나는 내가 만들었던 모든 질서와 순서와 차례를 잃고 아무렇게나 나를 내맡길 것이다. 그리고 그 여정이 끝나면 나는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이 되어 다른 모습으로 다른 질서에 의해 움직이게 되겠지.
그뿐인줄 아는가? 새로운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집어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용하고 있었던 물건을 집어드는 것은 그 물건에 대한 기억도 함께 꺼내는 것과 같다. 마치 인형뽑기 기계 안에 들어 있는 기계 팔이 내 뇌 속에서 바쁘게 움직여 깊숙히 파묻혀 있는 그 기억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 것처럼, 갑자기 쑥, 하고 내 머릿속 스크린에 상영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인데 아무리 즐거운 기억일지라도 회상과 반추에는 우울이 깃들 수밖에 없다. 그것이 과거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는 일은 그것이 아름다웠건 끔찍하도록 추악했건 간에 상관이 없이 무조건 우울한 일이다. 짐을 쌀 때에는 그 모든 물건을 만질 때마다 매번 그런 일을 겪어야 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왜 이렇게 우울한 거지? 하고 생각했던 것이 우스울 만큼 우울한 게 당연하게 느껴진다. 우울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겠군.
이 끔찍하거나 소소한 우울감을 어쨌든 끌어안고, 아니면 어떻게든 떨쳐내고, 둘 다 안 되면 어찌저찌 밀쳐두고, 그러니까 어쨌든 나는 짐을 싸야 한다. 짐을 싸고, 그 짐을 들고 공항에 가서 비행기를 탄 다음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Hopefully. 왜냐하면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우울하고 울적하고 어쨌든간 그래도 하기로 한 일은 해야 한다. 하기로 계획한 일은 해야 한다. 사실 인생이 원래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그래서 어쩔 수 없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리고 사실 정말 진짜의 이유는, 아무리 우울해도 어쨌든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취소가 안 되는 비행기표를 예매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