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기 전 오랜만에 아빠와 통화를 했다. 술에 취한 목소리로 나를 응원한다고 했다. 나는 덩달아 울음을 삼키며 올해까지가 나에겐 삼재였대. 올해가 날삼재였대. 원래 날삼재가 제일 힘들대. 라고 말했다. 그, 삼재에서 말하는 해는 동짓날에 바뀌는 거야. 아빠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면 12월 22일까지가 내 삼재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해의 마지막 날에 코펜하겐을 여행 중이었던 것이라 그 기억에 낭만이 조금 더해졌다. 점심을 먹어야 한다고 둘러대고 전화를 끊었다. 끊기 전 아빠는 세번이나 반복해서 말했다.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2024년을 돌이켜보면 사실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국내와 해외를 합쳐 여행도 여러 번 다녀왔고 돈을 흥청망청 쓴 것도 아니고 크게 아픈 곳이 없었으며 잘된 일도 잘 안된 일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많은 것을 경험했다. 새로운 취미를 찾았고 잃어버린 취미들을 되찾았다. 그런데도 나는 매달 매주 매일 매시간 매분 매초, 시종일관 불안했다.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고 그렇게까지 불안할 이유는 없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 모든 때에 내 불안에는 이유가 있었다. 합당하거나 합리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간 이유가 있기는 있었다. 다만 불안의 이유는 지금도 있고, 내일도 있을 것이며, 사실 언제나 있다. 불안한 채로 몸을 일으키고 불안한 채로 점심을 만들어 먹고 불안한 채로 장을 보고 불안한 채로 사람들을 만나 웃고 불안한 채로 아껴뒀던 영화를 보며 배달음식을 시켜먹는 법을 알게 되었다. 불안을 없애는 법은 영영 터득할 수 없겠지만 불안을 누르는 법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는 찬바람을 좋아해서 늘 외투가 필요하다. 불안은 꼭 겨울 외투 같은 것이다. 겨울을 사랑하는 사람이 외투 없이 살아갈 순 없지만 365 24/7 입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듯. 때로는 그 불안을 잘 벗어 고이 개켜 한쪽에 접어두고 할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마음껏 웃고 맛있는 걸 먹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눌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나는 그걸 깨닫는 중이다.
너무 힘들어하지 마.
크리스마스 직전부터 새해까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이 기간제 평화가 달가우면서도 두려웠던 것 같다. 휴가를 내고 떠난 환상적인 여행엔 반드시 끝이 찾아오고 다시 일상에 복귀할 때는 꼭 즐거웠던 만큼이나 커다란 비참함이 스치고 지나가듯이, 365일마다 새로운 달력을 뜯기로 사회적 합의를 이룬 전세계의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이 휴가 끝에도 비슷한 감정이 찾아올 것임을 지난 인생의 경험으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문제라면 1월 2일에 도달하기도 전에 이미, 그 휴가 기간에 이미 그 감정들을 걱정하면서 불필요하게 한번 더 겪고 만다는 것이고. 강박과 허무, 초조함과 외로움, 공포와 슬픔, 쓸쓸함과 막막함이 번갈아가며 내 어깨를 짚고 지나간 연휴였다. 그래도 맛있는 걸 먹었고, 재밌는 것을 봤고, 열심히 뜨개질을 했다. 연휴 시작 전 바랐던 대로 어느 정도의 마음정리도 마친 것 같다. 그렇다면 이제 나는 비로소 새해 다짐을 써내려갈 준비가 됐나?
너무 힘들어하지 마.
솔직히, 12월 31일과 1월 1일을 가르기로 결정한 건 다 인간의 필요 때문이 아닌가. 시간은 상대적이고 시간의 흐름도 상대적이며 시간의 범위도 상대적인데 꼭 365일마다 꼭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처럼 구는 것은, 그러기로 전세계가 약속하고 합의했기 때문이 아닌가. 지난한 삶을 일정 기간 견디고 나면 쉼이 필요하니까. 모든 것에 끝이 있다는 걸 재확인해야 하니까. 365일 동안 힘든 일을 단 하나도 겪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으므로, 어쩌면 여전히 현재진행중일 것이므로, 그 어떤 힘든 일이라 해도 끝이 존재할 것이라는 자기암시가 필요하니까. 그리고 또 새로운 시작이 필요하니까. 어딘가 조금씩은 다 고장나고 부서진 삶을 계속 살아가는 방법은 그저 고치고 또 일으키고 또 메운 . 채, 그대로 걸어가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했거나, 알고 있어도 외면하고 싶으니까. 인간의 가장 오래된 욕망 중 하나인 환생에 대한 갈망을 벗어던지지 못했으니까. 우리는 31일 11시 59분 59초에 눈을 깜빡이는 순간 환생한다고 믿고 싶어하는 거야 그래서. 새로운 시간이, 삶이, 무언가가, 아무튼 그게 뭔지는 잘 모르지만 잘 모르기에 좋기만 할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마는 무언가가 시작될 거라고... 우리는 그렇게 믿고 싶어하는 거야. 하지만 난 이제 그런 걸 믿지 않는다. 1월 1일이 되어도 해는 똑같이 뜨고 물은 똑같이 흘러가며 나는 여전히 그대로이다. 새로운 삶은 시작되지 않는다. 리뉴얼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12월 31일에서 하루 더 자고 일어난 나일 뿐이다. 나는 완전히 다른 삶을 바라는가? 아니, 나는 그런 걸 바라지 않는다. 나는 다른 삶을 바라지 않는다. 나는 다른 나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나를 갉아먹는 불안을 덮어줄 평온과 더 잦은 위안들을 원한다. 이런 나라도 새해 다짐이란 걸 적어봐야 할까?
너무 힘들어하지 마.
흥미로운 영어 아티클을 보면 스크랩해두었다가 번역해보는 취미가 생겼다. 읽기도 할 수 있고 번역도 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1월 1일에 처음으로 읽은 것은 영국 가디언지의 <압도되지 않기 위한 빠르고 간단한 방법 15가지15 quick, simple ways to avoid overwhelm> 였다. Overwhelmed는 너무나 많은 생각과 걱정과 감정이 산사태처럼, 해일처럼, 구덩이로 밀려드는 사막의 모래처럼 나를 덮치는 느낌이다. 작년의 365일 중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은 날은 결단코 단 하루도 없을 거다. 현명한 영국의 누군가가 내게 답을 주기를 소망하며 번역을 마치고 리스트를 정리해 보았다. < 생산적인 걱정을 위한 시간을 따로 두기 | 찬물에서 수영하기, 역도, 그리고 자유롭게 발언하는 밤 | 멈추고, 숨쉬고, 존재하기 | 바닥에 얼굴을 붙이고 누워있기 | 적게 그리고 자주 하기 | 관점을 바꾸기 | 의사결정 줄이기 | 할일 목록을 재정비하기 | 혼란에 굴복하기 |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 | 조용한 시간 갖기 | 일기 써보기 | 자연을 완충구역으로 이용하기 | 내 몸 알아가기 | 높은 곳에 오르기 > 이 중 몇 가지는 이미 하고 있는 것이고, 다른 몇 가지는 이미 알고 있던 것이고, 또 남은 몇 가지는 꽤나 흥미로운 것들이다. 그래. 누군가가 내 2025 새해 다짐이 뭐냐고 묻는다면. 잔뜩 냉소적인 척을 하고 새해 같은 게 다 뭐냐고 비웃은 주제에 그 좋은 핑계로 12월 31일 저녁에 배달음식을 시켜 먹은 나에게. 그날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에 풍선처럼 들뜨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집 근처 불꽃놀이 구경 뷰포인트로 뛰쳐나가고 만 내게, 누군가가, 네 새해 다짐이 그래서 뭐냐고 묻는다면... 결국 그거다. 생각과 걱정과 문제들에 압도되거나 매몰되지 않는 거. 그러니까, 우리 아빠가 나에게 바라는 그거.
너무 힘들어하지 않는 거.
그게 다다. 생각해보면 늘 관건은 빠져나오는 거였다. 구덩이 밖에서 모든 것을 차분히 멀리서 바라볼 때 실타래를 풀어내고 고장난 것을 고치고 계단을 오를 힘이 분명히 나에게 있으니까.
오늘은 1월 2일이고, 들썩이는 마음과 밀려드는 고독을 달래려고 도서관에 왔다. 텍스트를 읽고, 커피를 마시고, 영어를 내 언어로 번역하고, 음악을 듣고, 머릿속에 떠돌아다니는 생각들을 잡아다 글을 쓰는 일. 이런 일이 없다면 매일 불안이 1인치 이상씩을 갉아먹는 내 영혼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2024년에 내가 자랑스러워하는 일이 있다면 바로 이 깨달음일 거다. 나는 이제 행복해지는 방법을 안다. 너무 힘들어하지만 않을 수 있다면 더 자주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 삶의 궁극적 목표가 행복이라면 나는 꽤 괜찮은 새해 목표를 세웠는지도 모른다.
아참. 공휴일을 즐기고 덩어리진 시간에 끝과 시작의 선을 긋고 환생을 위한 자기암시를 거는 것 외에도 새해의 의의가 딱 하나 더 있지. 모두가 조금 얼룩진 희망에 가득 찬 얼굴로 웃으며 이렇게 외칠 수 있는 시기란 거.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