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y Oct 19. 2021

나에게 운전이란?

곧 할 일! 


이렇게 말하고 다닌 지 20년이 지났다. 성질은 무지 급해서 면허증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땄지만 이는 장롱면허의 년수만 늘리는 꼴이 되었다. 매년 신년 다짐에 일등으로 운전을 적어두고선 매년 연말엔 죄책감에 시달린다. 노력을 안 해본 건 아니다. 연수도 받아봤고 고속도로도 달려봤다. 그런데 난 왜 아직까지 운전대를 잡지 않고 있는 걸까. 


“트라우마가 있어”라고 명함을 내밀만한 사건은 있었다. 초등학교쯤인가 어느 겨울날 외갓집을 가는 길에 아빠는 고속도로 빙판길에서 말 그대로 360도를 돌았다. 너무나도 부드럽게 차가 미끄러지는 느낌과 차를 바로 돌려세워 아무 일 없다는 듯 바로 출발하는 아빠의 태연한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누군가에게 무용담처럼 이야기해주고 싶은 이야기인 거 보면 이 일로 운전이 무서워졌다고 이야기하기엔 좀 어려울 것 같고. 


차 없이도 잘 살았다? 주차하기 힘들고 매일 시위가 있는 지역에서 일을 오래 해서 그랬는지 운전에 대한 필요성을 못 느꼈다. 일이 많을 때엔 오히려 버스 창문에 머리 박아가며 자는 그 시간이 필요했다. 출퇴근 시간 차가 막히면 막힐수록 잠잘 시간이 늘어나니 얼마나 좋은가. 덕분에 어떤 교통 앱보다 빠른 대중교통 루트가 머릿속에 있었고 버스 안 제일 좋아하는 자리도 생겼다. 하지만 아무리 대중교통이 좋아도 잘못된 타이밍에 걸려 시루 속 콩나물처럼 버스에 혹은 지하철에 촘촘히 박혀갈 땐 내일 당장 차를 사서 자차 운전자를 꿈꿨다. 몇 번이고 차 계약 코앞까지 가놓고도 원인 미상 미적거림과 오랜 대중교통생활이 독이 되어 차 보단 운동화와 더 가까운 삶을 살았다. 그리고 지금 마지노선. ‘아이 낳으면 운전해야지’ 요기까지 왔다. 먼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외쳤던 마지노선인데 바짝 코앞이다 못해 살짝 늦은 감도 있다. 추워진 날씨에 당장 병원을 데려가는 상황에 맞닥뜨리니 운전 못하는 마흔 넘은 몸뚱이가 부끄러울 지경이다. 근데 요즘 들어 운전이 더욱 간절해지는 이유는 아이를 태우고 다니는 일도 필요하지만 이제 운전대를 놓으실 아빠 때문이다. 부모님 모시고 장도 봐드리고 이곳저곳 모시고 다니며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병원도 모셔다 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운전이 무섭다고 징징대는 마흔 넘은 첫째 딸은 이러고 글만 쓰고 있다. 

 

운전을 두고 최소 20년 이상 끌어온 미적거림의 이유를 여러 가지로 생각해봤는데 결국 원인은 두려움이다. 요즘도 조수석에서 옆에서 빠르게 달려오는 차를 느낄 때마다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이런 내가 운전석에 앉는 다면 옆 차가 두려워 길 한복판에서 브레이크를 밟지 않을 수 있을까? (어후 생각만 해도 등에서 땀이 난다) 좁디좁은 주차 공간에 주차를 해야 하는데 뒤에서 차가 빵빵 거린다면? 그것도 한 대도 아니고 여러 대가? 나는 차를 버리고 도망갈 것인가 영원히 주차를 못할 것인가. 갑자기 오래전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에 한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도로연수를 받는 중에 직진밖에 할 줄 몰라 서울에서 부산까지 간다는 에피소드인데 그 당시에는 이 에피를 보고 엄청 웃었는데 지금은 안문숙 씨에 모습에 내가 오버랩되어 웃질 못한다. 나라고 차선 변경이 두려워 부산을 못 갈까. 

(**이 에피가 궁금하다면! https://www.youtube.com/watch?v=AUeHXUUnJtY)


이것저것 적다 보니 나의 운전에 대한 두려움은 게으름에서 기인한게 하닌가 싶다. 운전 또한 시간이 쌓이고 경험이 쌓여야 두려움이 적어지고 비로소 하게 되는 것일 텐데 그 ‘시간’이 쌓이는 시작을 매일 내일로 밀어낸다. 옆에서 차가 달리는 게 무서우면 운전석에서 안무서울 때까지 달리고, 주차가 걱정된다면 될 때까지 주차 연습을 하거나 뒤에서 아무리 빵빵거려도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는 얼굴 철판을 준비하면 될 것아닌가. 경험이란 실수하면서 하나 둘씩 쌓는 법인데 게으름이 두려움이란 이름 아래 깊게 숨어 있다. 자,어떻게 할 것인가. 오늘도 답은 이미 알고 있다. 엉덩이를 떼고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여라. 에효. 쓰고 있는 지금도 무인 자동차가 빨리 나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크지만 (헷) 움직여보자. 시동을 걸어보자. 그리고 두려움이 사라질 때까지 시간을 쌓아보자. 물론 좋은 도로연수 선생님부터 찾고 :)


PS 근데 남편이 액셀이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다시 묻는 나에게 새 차키를 넘겨줄까? 출근길에 이 글을 읽으면 생각이 많아지겠구만. 



이전 10화 코시국 속 대범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