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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Oct 14. 2021

코시국 속 대범함

어제 놀러 왔던 친구는 오늘 아침 나쁜 소식을 알려왔다. 친구의 남자 친구 아버지가 오늘 코로나 확진이 나왔고 내 친구는 나를 만나러 오기 전날 남자 친구를 만났다고 그래서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한다고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어제 놀러 와서 손목이 아픈 나 대신 내 아이를 정성스레 재우던 친구 모습이 순간 떠올랐다. 아찔했다. 친구의 남자 친구 아버지면 한 다리 멀리 있는 것 같아 괜찮을 거 같다가도 가족 사이 감염은 빈번하고 그 빈번한 위험에 노출된 사람을 내 친구가 만났고 그 친구는 우리 집에 왔다. 미안하다고 이야기하는 친구에게 괜찮다고 그리고 괜찮을 거라고 말하고는 복잡한 머리를 움켜쥐었다. 바깥 노출이 많은 주변인들은 코를 몇 번씩이나 쑤심을 당하며 코로나 시대를 실감하며 살고 있었지만 난 아이와 함께 노출을 최대한 삼가며 숨어 살고 있었기에 이 정도의 접근은 꽤 충격적이었다. 무엇보다도 아이가 있기에 나의 심장은 더욱 쪼그라들었다. 결론은 음성. 내 친구도 남자 친구도 음성이 나왔다. 꼬박 만 하루를 기다려서 얻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난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하루 동안 ‘대범할 거다’라는 내 다짐과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인생엔 종종 마음 졸이며 기다려야 하는 시간들이 있다. 이렇게 코로나 검사라든지, 건강검진, 시험 발표 등 양성, 음성 혹은 좋고, 나쁨으로 나뉘는 일들에는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난 (부끄럽지만) 그 기다림의 시간이 있을 때마다 일어나지도 않은 수많은 걱정들을 하며 절망의 구렁텅이로 나를 밀어 넣는다.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고 미리 고민한다. 마치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생각하는 게 큰 도움이 되는냥 최선을 다해 미리 걱정해둔다. 생각의 속도는 어찌나 빠른지 검사 결과 기다리다 남편 새장가 계획까지 간다. 이렇게 불려놓은 걱정에 온몸이 눌려 해야 할 일을 못하고 절망, 원망, 노희망에 빠져 어쩔 줄 모르다가 잠을 휙 자버린다. 이번 일에도 이 루틴을 성실하게 이행했다.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런 내 모습을 아이가 보고 있다는 것. 수심 가득 가짜 웃음으로 까꿍을 해보았지만 아이는 달라진 내 표정과 기분을 바로 알아채곤 나를 빤히 쳐다본다. 아뿔싸. 나 어제부터 대범하기로 했지.   


타인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거리를 쏟아내면 난 항상 이야기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지 마. 시간 아까워. 그때 생각해. 그래도 늦지 않아. 지금을 살아.” 난 정답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막상 내 일이 되니 저렇게 잘만 이야기하던 아이는 사라지고 세상 모든 슬픔과 걱정을 짊어진 아이만 남았다. 


남 일은 쉬운데 오대범은 참 어렵다. 하겠다고 써놓자마자 이런다. 원래 하던 대로 미리 걱정하며 시간을 날릴 것인가, 아니면 걱정은 일이 일어나면 하기로 하고 현명하게 오늘을 살아낼 것인가. 정답은 정해져 있고 내 실천만 남았다. 사람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기에 오늘까지만 더 걱정하고 내일부터 대범하려 했는데 오대범으로 써둔 글 때문인지 마음이 찔려 자리에서 일어난다. 걱정에 눌려 천근만근 무거워진 몸을 일으켜 설거지를 시작한다. 남 일보듯 마음의 생각들을 덜어낸다. 그렇게 오늘도 겨우 오대범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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