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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Oct 13. 2021

오늘부터 대범합니다.

근심만 깊어진 어느 밤. 세상 걱정 없는 얼굴로 잠든 아이를 보며 생각했다. 이 거친 세상에 태어나게 했는데 어떻게 지켜주나. 당연히 평생 끼고 살 순 없어서 벌써부터 이런 걱정이 된다. 참고로 아이는 이제 인생 7개월 차. 가는 건 순서 없고 이 세상엔 변수가 넘쳐나지만 단순한 계산만으로 생각해보면 이 아이를 마흔 넘어 낳았으니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내어도 함께할 시간이 남들보다 적다 싶다. 그러다 보니 마음만 급해진다. 함께 있을 누군가가 있으면 의지가 되려나 하는 생각에 일어날 수 없는 일도 생각해봤다. 동생을 낳아주는 일. 하지만 어차피 그럴 수 있는 독수리 오난자 (**참고: https://brunch.co.kr/@amy-at-home/7)가 남아있지 않고 주변 친척들 및 지인들은 초등학생을 키우고 있거나 아직 싱글 라이프를 누리고 있으니 주변 또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도 어려워졌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아이가 이 무서운 세상에서 혼자여도 잘 지낼 수 있을까. 그렇게 고민으로 휩싸이던 밤들 속에 떠오른 단어가 바로 ‘대범’이다. 


네이버 사전을 보면 대범이란 성격이나 태도가 사소한 것에 얽매이지 않으며 너그럽다고 나온다. 영어사전엔 너그럽다 (broad minded)와 자신있다 (bold)로 설명하고 반대말로는 소심하다 옹졸하다가 유의어로는 대담하다 담대하다가 있다. 바로 이거다. 이 아이가 나 없이도 이 세상을 잘 살아낼 비법. 대범함. 어려움이 생겼을 때 '괜찮아, 별일 아니야'라고 자신을 다독일 수 있는 담대함이, 하고픈 일을 생각만으로 포기하기보단 해보고 포기해도 괜찮다는 자신감이 그리고 사소한 일에 얽매어 잠 못 이루는 밤들 대신 마음 넉넉히 풀어내는 한낮 같은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그럼 내가 곁에 없어도 조금은 안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대범한 성격은 타고 나는 게 제일 빠르겠지만 남들 한 두 번 생각할 때 열두 번 생각하는 남편과 큰 일 앞두고는 화장실을 열두 번 가는 나 사이에선 대범한 아이가 나올 확률은 코끼리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희박하다. 그렇다면 선천적으로 탑재되지 않은 대범함을 어떻게 심어줄 수 있을까. 매우 자연스럽게 말이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는 아빠 덕분에 수용소 속 비참한 생활도 재미있게 지낸 꼬마가 있다. 아빠 귀도는 아이에게 수용소 생활을 게임이라고 하며 천 점을 얻어 승리자가 되면 탱크를 선물로 받는다고 설명한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절실하게 아들을 지키려던 귀도와 아빠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며 수용소에서의 삶을 즐겁게 살아가는 아들 조슈아. 귀도는 결국 죽으러 가는 마지막 순간에도 우스꽝스러운 걸음을 걸으며 조슈아에게 웃음을 선물하는데 이게 바로 내가 찾은 비법 전수 방법이다. 아이에게 대범이란 걸 '직접' 보여주는 것. 수용소 생활을 긍정적으로 보여준 귀도처럼 내가 먼저 담대하고 용감하게 세상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를 보고 자란 아이는 이 세상 대범하게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우스꽝스러운 걸음였을지라도 앞으로 내딘 내 발자국을 기억한다면 이 세상 살아가는데 힘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난 오늘부터 대범하려 한다. 담대하게 어려움을 직면하고, 원하는 일에 자신감 있게 도전하고, 끙끙 고민했던 일을 넉넉한 마음으로 마주하며 내가 먼저 대범하게 살아봐야겠다. 그렇게 이 아이에게 세상  이길 비법을 선물해야겠다. 오-늘부터 대범해보겠습니다. 아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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