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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 Dec 17. 2022

 떡볶이

작약꽃 모양의 눈이 쏟아지는 광경을 보고 있다.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다. 그게 살갗 위로 일어난 낯섦인지 소리 없는 것을 보고 들려오는 음악인지를 헤아려보다가 맛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새빨갛지 않은 귤빛 보다 조금 붉은빛을 띠고 있는 그런 맛. 물엿을 자박하게 넣어서 끈 덕하 게 보이는 그런 떡볶이 떡을 입안에 넣고 돌돌 굴려 먹는 상상을 함박눈 속에서 해본다. 혀끝에 베이는 달큼한 맛이 좋다.


뜨겁고 매운 것을 먹는 것에 서툴다. 할머니는 나를 그렇게 키웠다. 김치는 씻어서 찢어 얹어주고 매운 라면은 물에 담가 주었는데 그래서인지 여즉 나는 매운 음식은 진땀을 빼며 먹어야 한다. 그럼에도 떡볶이가 좋다 하며 먹는 이유는 학교 앞 떡볶이만큼 먹기 적당한 매운 음식이 없었다.


 그때 나는 퇴근 후에 떡볶이 한 접시를 시켜서 먹고 또 하나는 포장해서 어딘가에 가져갈 생각이었다. 가게 앞에 주정차를 해놓고 다리를 오들 거리며  서있었다. 들어와 먹고 가라는 분식집 아주머니의 친절에도 꿋꿋하게 서서 이쑤시개 하나를 들고 자리를 차지했다. 어묵탕에서 김이 피어오르는 모양이 나의 삿된 행동을 가려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거기 있었다. 나는 관람객을 자청했다.


 길 건너 맞은편에 교복 입은 남학생이 담배를 피우며 꽃다발을 들고 서있었기 때문이었는데 꽃다발의 주인이 궁금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등장했다. 으레 남자가 꽃을 들고 거리를 방황케 하는 용기는 오직 여자를 위한 것이라는 내 믿음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여학생의 등장에 담배를 급히 발로 뭉개는 모습에 나는 미소했다.


이 진부한 서사의 클라이맥스는 꽃을 든 남자가 아닌 꽃을 든 여자에게 있었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으와 이게 무어 아야야, 와 아아아 아."


또는 꾸어억 일까 아니면 우어억 인지. 뭐 이런 비슷한. 그런 알아들을 수 없는 비슷한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다.


사방에 있는 사람들 따위야 어찌 되었든 그 기쁨의 함량을 뿜어내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모습으로 소리를 뱉는 소녀를 보며 깨달았다.


애티 흐르는 소년과 소녀를 주연으로 한 극은 관람객이 필요 없었다는 것과 나는 그들에게 처음부터 이름도 없는 유령이었다는 것을.


말캉이는 떡을 이쑤시개로 푹푹 찔러 입에 녹여먹다 알았다.


관람객이 필요하지 않은 극과 지나는 이방인들을 개의치 않는 소야곡, 그리고 서로의 존재로 세상이 넉넉하다고 믿을 수 있는 순간의 광경은 맵거나 자극적이지 않은 그런 맛이라는 것을.


입안에서 몽글이며 달큼한 맛을 내는 중독적인 맛이라는 것을 알았다. 맵고 뜨거워 혓바닥 위로 잠깐 대고 목구멍으로 넘겨버리는 맛이라기보다는  꾸덕하고 잘 근하게 그리고 조금은 끈질기게 씹어 넘길 수 있는 맛.


그런 맛에는 천진함 들어있다.


그저 별거 없어 보이는 장면들 속에서도 시선을 고정시킬 수 있는 이유는 천진함이 있다.


그리고 그 천진함은 나를 혼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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